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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Feb 13. 2024

런던이 부럽지 않은 통영 여자들의 5인 5색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가리소메노 행복>,

'헛된 행복', 혹은 '일시적 행복' 불란서 영화다.

-432p, 감이 소담스럽게




탈신분제 자본주의가 빠르게 진행된 통영,  곳의 여자들 중에서도 특히 시대를 앞서간 현실적인 여자 용숙과 일제강점기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과하지 않은 본연의 캐릭터에 충실한 엘리트 부르주아 신여성 용빈, 아름답고 정숙하지 못해 만국공통(?) 보바리즘에 희생되나 어미를 잡아먹고도 살아남은 용란, 뜻밖의 빌런인  영감이 두고두고 놀라자빠질 귀신으로의 미래가 기대되는 용옥, 아직 아무 스캔들(!) 없어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 용혜까지 다섯 자매의 이야기는 익숙한  새롭게 대하소설 덕후의 혼을 빼놓았다.


이십년 전 토지를 색깔별로(?) 모으다가 포기하고, 시간이 지나 교과서 작가인 박경리를 잊었다. 그 무렵 90년대에 데뷔한 여성 작가들이 1차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어서 동세대 작가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중학교때 찍먹하고 잊어버린 외국 작가들도 소환했다. 오스틴과 톨스토이에게는 큰 매력을 못 느끼고 플로베르는 무려 11년을 묵혔다 읽었지만 장편 대하소설 대신 장편 스릴러에 빠져들어 스릴러로 세계일주를 하다 영어책도 읽었는데.... 돌고 돌아 플로베르와 오스틴으로 돌아와보니 왜 핫플인지는 알겠다.


그게 2 전이었다.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국어자습서에 실린 박경리 프로필에서 본듯한 <김약국의 딸들> 오스틴과 플로베르보다 재미있고 지적이라는 것을. 굴국밥만 먹을  알았지, 통영이라는 해변도시에 이런 생명력이 있을 줄이야. 굳이 수능도 끝났는데 토지를 계속 읽었던 까닭은 당연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지만  기억은 너무도 흐릿하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끝없는 막장드라마의 활짝 열린 결말박경리의 다른 작품을 재촉한다는 것을.


박경리 컬렉션은 칭찬을 하지 않을  없다. 리커버의 강렬함에 망설임없이  책을 구입하고 읽는 동안 컬렉션이 불어나는 것을 보며 (심지어 토지 한정판도 나왔다!) 남모를 희열을 느꼈다. 시리즈를 수집하며 다음 책을 기다릴  있다니, 이렇게 좋을 수가.




말보다 느낌은 늦게 왔다. 고고한 파초의 모습은 김약국의 모습 같았고, 굳은 등 밑에 움츠리고 들어간 풍뎅이는 김약국의 마음 같았다. 매끄럽고 은은하고 그리고 어두운 빛깔의 풍뎅이 표피, 한실댁은 그 마음 위에 앉았다가 언제나 미끄러지고 마는 것이라 용빈은 생각했다. -112p, 파초


한실댁은 수척한 기두를 맞이했다. 두 사람의 눈이 부딪쳤을 때 그들은 다 같이 없어진 고사떡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은 동시에 상통되었다. -234p, 실종


나는 너처럼 이상주의자도 아니고 사회개혁론자도 아니다. 너처럼 허풍쟁이가 아니란 말이다. 실상 너는 사상이니 뭐니 하지만 자신은 지리멸렬이다. 모순덩어리다. 너의 이상이라는  자가당착의 표상이란 말이야. -239p, 형제


잿빛 박명(薄明)이 깔린 세병관 돌축대 한구석에 시커먼 지붕의 그늘이 덮이고 사용이 금지된 세병관 정문 옆에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밤은 고요하다. 아름드리 기둥에 옛날 비자(婢子)를 잡아넣었다는 전설이 있는, 그래서 밤이면 귀신이 난다 하여 이 근방을 사람들은 피한다. -265p, 결별


당신 집에는 잡귀가 우글우글하구마. 맞아 죽은 구신, 굶어 죽은 구신, 비상 묵은 구신, 물에 빠져 죽은 구신, 무당 구신, 모두 떳들었으니 집은 망하고 사람은 상하고 말리라. -341p, 점괘


외롭다는 말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냐고 되묻는 말은 상반된 대화다. 끄러나 용빈은 김약국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 외로움이 있다.' -424p, 감이 소담스럽게 


애국심이죠. 그것이 아름답게 학생들 가슴에 부푸는 겁니다. 일종의 영웅주의, 그런 거라고나 할까요. 따지고 보면 모호하고 그러나 신비스런 것에 들뜨지 않고서는 군중이 몰려가진 않습니다. 일종의 비장미 말입니다. -476p,  번째 대면




어디에든 스캔들과 종교와 뱃놈들과 혁명이 있지만  무엇도 질기디 질긴 인간의 삶을 지배하지 못한다. 일시적 행복 뜻밖의 순간에 찾아오고 얼마나 머무를지 모르니 그때 충분히 들이마셔야 한다. 박경리를 아껴읽을지 고민하는 것이 2024년을 지배하는 일시적 행복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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