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파과>, <파쇄>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하나의 존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혼이라는 게 빠져나갔는데도 육신이 더 무거워진다는 것은. -292p, 파과
구병모 작가의 최신작 중 하나인 '적개'를 방금 읽고도 '재고없음' 상태를 견디지 못해(단편 '적개'는 계간 <문학동네> 117호에 수록) 인덱스를 사러 간 서점에서 <파쇄>를 충동구매하고, 같은 날 옆 서점에서 <있을 법한 모든 것>과 <단 하나의 문장>까지 쓸어옴으로써 입문한지 반 년 만에, 최단기(?)로 소장권수 공동 2위(처분한 책/비동거책 제외, 현재 조앤 롤링과 정보라에 이어 공동 3위) 작가에 합류시켰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릴러'가 되는 강 건너 스캔들 구경하기조차 구병모의 손을 거치면 마법이 되고 지금 그 마법은 마약과 같은 환희를 선사하고 있다.
<파과>의 프리퀄인 <파쇄>로 연결되는 과거의 조각은 <핑거스미스>의 수 또는 <아가씨>의 숙희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면의 설렘을 관찰하는데 그 설렘은 평생 해소되지 않고 현재의 몸에 기억과 함께 남아있고 진작 갱년기도 지나버린 현재의 조각은 '무용'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노견과 함께 곧 무용해질 자신에 대한 연민을 다잡느라 혼신의 힘을 쓴다. 한편 조각 본인도 의아한 강박사에 대한 감정을 먼저 눈치채고 '어쩌다 보니' 그녀를 향해 그물을 조이던 그(의 이름은 스포일러)는 일생의 결투를 우회적으로 신청하는데,
의지할 데 없던 어린 시절의 조각과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천애고아가 된 그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고 조각은 인간병기로 훈련된만큼 끝까지 자기 본분에 충실하다. 아니, 목숨을 걸고 다른 이(들)의 목숨을 살려냈다고 해야하나.
어쩌다 보니 조각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녀를 망설이게 하는 상념들이 지극히 평범하기에 냉혹하게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비인간적 요소들마저 삶을 잃어버린 한 사람의 상처나 결핍으로 느껴질 뿐 잔인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그럼에도 <파과>라는 제목 앞을 오랫동안 서성일만큼 만만한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파과처럼 다른 용례를 거의 알지 못하는 단어에 약간 기가 죽었고, 스릴러 덕후임에도 과일이라는 모티브가 자극하는 상상력이 지레 겁을 먹었다. 내 망설임은 <파과>의 리커버가 나오는 순간까지만 유예됐고 그 시기적절한 유예는 고작 반년일지라도 조각 시리즈를 더 깊이 읽어내기엔 충분했(다고 믿는)다.
한 사람은 미혼녀에 다른 사람은 쉰여덟 살의 이혼남이니 불륜도 간통도 성립되지 않으나 사람들은 뭔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상황을 최대한 부풀리기 위해 자극적인 낱말을 즐겨쓰게 마련이고, -58p, 파과
기존과 유사한 차원의 '밤사이 사건 사고'가 과거에는 열 중 다섯이 활자화되었다면 미디어가 발달한 지금은 열 중 아홉이 노출되는 식이며, 24시간 미디어 체제에 힘입어 한 가지 사건도 일곱 번씩 일흔 번을 복습하게 된다. -74p, 파과
누군가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 사소한 권력이 다른 이에게는 증오를 넘어선 제거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109p, 파과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조형과 부착으로 이루어진 콜라주였고 지금의 삶은 모든 어쩌다 보니의 총합과 그 변용이었다. -128p, 파과
무언가를 하기로 생각하고 있다면, 설령 그것이 가벼운 인사일지라도, 언제나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요즘 같아서는 더욱 그렇다. 돌아서면 곧바로 자기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잊고 마는 일상이니까.
-168p, 파과
다만 죽음이 급습하는 시기를 과학과 의학이 지연시켰기 때문이고 그것은 효율이나 질을 완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생명 연장의 꿈에서 '연장'에 포인트를 맞춘 것으로써 평균수명 100세 시대의 노인이란 어디까지나, -287p, 파과
그럼 지금까지는 설마......개새끼가 아니었다고 하는 건가. -52p, 파쇄
생각을 매 순간 하되 생각에 빠지면 죽어.
-83p, 파쇄
그리고 저는 그녀가 완벽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95p, 파쇄(작가의 말)
한국 대표하는 여전사가 다른 누구도 아닌 클리셰에 정통하기에 어떤 식으로든 그 이상을 만족시키는 구병모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이 사실을 기쁘게 수용할 수 있을만큼 (부러움, 질투? 등을 딛고) 성장했기에 <파과>를 (그래봐야) <아가미> 뒤로 미룬 보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