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만다라트 공유회
01. 2025년 계획을 3월이 되어서야 방문에 붙였다. 문제는 테이프의 접착력이 영 시원찮은지 자꾸 떨어진다는 거였다. 붙이고 또 붙여도 자꾸 떨어지는 종이짝을 보며 '아, 3월이구나' 싶었다. 맞다. 3월은 원래 그런 달이었다.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달. 그런데, 이번 3월은 달랐다. 이상하게 새해처럼 느껴졌다. 한 해 계획을 늦게 세웠기 때문일까. 회사에 속해 분기별 KPI를 고민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무튼 퇴사 후 백수로서 새해를 그려보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덕분에 한 해 계획을 천천히 그리는 호사를 누렸다.
02. 브런치에 2025년 계획을 공개하는 이유는 단 하나. 행동력을 높이기 위해서.
나는 몇 년 동안 최애 자기계발 유튜버 '라벤데어(Lavendaire)'의 새해 계획 템플릿을 따라왔다. 덕분에 연간 키워드(theme)를 세팅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키워드를 떠올리며 살았다. 하지만, 자잘한 계획은 지키지 못했다.
지나치게 촘촘한 계획은 어차피 다 기억도 못 한다는 걸.. 왜 맨날 1년이 지나서야 아는 걸까? 계획은 실행하기 위함이다. 특히 정신없이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업무/자기계발 목표에만 매몰되고 그 외 개인적인 목표는 점차 흐릿해진다. 그리고 그 흐릿해진 목표는 보통 내년으로 미루게 된다.
03. 2025년 내 선택은 *만다라트였다. 이 역시 행동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스터디 모임에서 한 기획자님이 새해 목표로 만다라트를 활용한 걸 보고 따라쓰게 되었는데 연간 목표가 원페이퍼로 한 눈에 들어오는 시스템이 좋았다. 언제 어디서나 내 계획을 빠르게 확인하고 조금 더 실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보였달까.
*만다라트(Mandal-Art) : 일본 디자이너 이마이즈미 히로아키가 개발한 사고 도구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이 기법을 고안했다고 한다. 만다라는 본래 불교에서 쓰이는 상징적인 그림인데, 중심 사상을 주변 요소와 연결해 표현하는 구조라고. 히로아키는 이 개념을 활용해 한 가지 중심 목표를 여러 작은 목표로 확장하는 방식을 개발했다고 한다.
04. 즐겨 보는 유튜버 Jade sim도 만다라트를 추천했는데 디깅할수록 활용법이 무궁무진했다.
연간/분기/월간 등 기간 별 목표를 쪼개기에도 좋은 도구였고, '연간 습관개선을 주제로 만다라트를 하나 더 만들어 평소의 나쁜 습관을 하나씩 고쳐보는 용도로도 썼다. 그 외 여러 유튜브를 디깅하며, 나름 만다라트를 대하는 태도, 유의사항 등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봤다.
① 만다라트칸은 다 채우지 않아도 된다.
만다라트는 일본의 유명 야구선수 오타이 쇼헤이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 방법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 목표를 세웠던 사례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의 만다라트를 들여다보면 8가지 하위목표 중, 3가지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목표들이고 5가지는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야구 훈련과 관련이 있었다.
즉, 자신에게 주어진 타임블록을 벗어나 과도하게 목표를 짜지 않았다. (물론 일반인들에게 힘든 목표겠지만)
예를 들어 24시간 중 수면(8시간) + 업무(8시간) + 식사(2시간) + 샤워(1시간) + 운동(1시간) + 출퇴근(2시간) = 총 22시간이 타임블록으로 꽉 차있다면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딱 2시간이다. 메타인지를 높여 이 2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만다라트는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 '나의 현실적인 시간'을 반영해야 한다. 이런 조언들을 듣고 과감히 칸을 채우지 말까 고민했지만.. 계획 덕후인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일단 다 적었다. 단, 숫자로 된 목표를 무한대로 적기보다 마인드셋, 습관을 녹여냈다.
② '부족한 점'을 하위 카테고리로 잡아보자.
만다라트는 정중앙에 올해 나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를 적으며 시작된다.
그 다음으로는 목표를 위한 하위 목표를 8개를 적으면 되는데 보통 이 칸에는 건강, 업무, 관계 등 보통 우리가 새해 계획을 세울 때 큰 가닥이 되는 카테고리를 적곤 한다. *물론 목표를 구체적으로 적어도 좋다.
나의 경우, 정중앙에 '심해잠수하는 기획자'를 목표로 잡았는데 하위 카테고리를 어떻게 잡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하위 카테고리 설정이 어렵다면 '지금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라는 조언을 받아들였다.
내가 올해 '꼭 하고 싶은 것'은 결국 '부족해서 채우고 싶은 것'이기도 하니까. 예를 들어 나이가 먹을수록 자꾸 건강에 관한 to-do가 많아지는 이유는 점점 건강을 잃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마인드셋/기록/유튜브 3가지 카테고리를 특별한 하위 목표로 추가했다.
③ 64개의 카드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하나씩 뒤집어보자.
핵심 목표와 카테고리를 제외하면 총 64칸. 처음엔 당황스럽다. 64개 목표를 짠 느낌에 '이거 또 못 지키는 거 아냐?'하는 불안감이 훅 올라온다. 하지만 64개의 카드라고 생각하면? 왠지 쉽고 편안해진다. 카테고리 별로 하루에 하나씩만 실천해보는 거다. 그것도 어렵다면 하루 한 개의 카드만 실천해도 좋다. (출처 : Jade sim) 중요한 건 내가 계획을 기억하고 실행하고 있다는 감각. 한 카드씩 작은 성공을 하다보면, 몇 개의 카드가 동시에 뒤집어질 날도 올 것이다.
④ 64칸은 반드시 정중앙 목표를 향해 있어야 한다.
새해 계획을 짜다보면 각 카테고리 별 계획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볼 때가 있다.
중간 목표는 정중앙에 있는 가장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고, 최하위 목표는 중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다.
결국 하나로 다 이어진 목표다. 그게 아니라면, 종이를 구분해서 따로 쓰는 편이 맞다.
예를 들어 회사에 하루 10시간 이상 시간을 쏟으며 이루고 싶은 업무 목표가 있다고 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이드 프로젝트에도 시간을 많-이 쏟고 싶은 해다. 그래서 각 카테고리 별 잔가지 계획을 만든다. 그러나 이 계획은 대부분 망한다. 제한된 시간과 방향을 고려하지 않고 나의 목표를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계획한 2025 만다라트 또한 목표가 분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부분은 중간중간 체크하며 수정해야 할 것 같다.
04. 위 조언에 따라 2025 만다라트를 작성했다.
① 브레인스토밍 : 라벤데어의 Transform your life in 2025 series 질문들로 시작하기
삶을 디자인하는데 있어 다각적인 질문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
나는 누가 되고 싶은지 / 삶에서 느끼고 싶은 느낌 / 나에게 바라는 정체성 / 마인드셋&믿음 / 삶의 방식 / 나를 막고 있는 것 등 만다라트 템플릿을 적기 전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나의 구석구석을 먼저 살피길 추천한다.
→ 다각도로 나를 뜯어보면, 반복적인 키워드가 보인다.
② 만다라트 템플릿 3~5장을 프린트해 수기로 작성하기
브레인스토밍으로 이미 내가 원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봤기 때문에 조금 더 빠르게 이 템플릿을 작성할 수 있다. 단, 마지막 체크차 만다라트 템플릿을 적어도 3-5번 적어보길 추천한다.
→ 이 때도 반복적인 목표가 보인다. 고르고 골라내는 작업에서 목표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③ 실천력 높이는 나만의 방법 찾기
만다라트를 적었다고 목표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목표를 구분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1) 카테고리 별 목표 구분하기
해당 만다라트를 전파해준 기획자님을 따라 목표를 3가지로 구분했다.
- 핵심 목표(�) : 이 목표 하나만 이뤄도 나머지는 따라오는 가장 중요한 목표. (여기에 80% 에너지를!)
- 장기 목표(�) :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목표
- 단기 목표(⬜️) : 습관/루틴으로 만들 수 있는 목표
(2) 몇 개의 목표는 '질문 형태'로 적어보기
만다라트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 바로, 질문하기.
한 회사에서 조직문화를 적용할 때 스스로 체크할 수 있도록 '질문 형태'로 만든다고 들었다. 또 유튜버 Jade sim도 카테고리 별로 구체적인 질문을 포스트잇에 적어둔다고 했다. 냉장고, 침대 등 나의 습관을 고칠 수 있는 장소에 붙여둔다고 했다. (ex. '자기 전 독서'가 목표인 경우 → 무서운 기숙사 감사ver. 말투로 침대 맡에 또 핸드폰 하니? 폰 내려두고 책을 읽어라. / '건강하게 먹기'가 목표인 경우 → 채식 위주로 장봤니? 냉동식품 줄이고 있지? ) 꼭 '질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떤 방법이 내 만다라트 실천력을 높여줄지 고민하며 완성하자.
④ 최종 완성본은 자주 볼 수 있는 곳에 세팅하기
핸드폰 바탕화면, 책상, 방문 앞.. 늘 눈에 띄는 곳에 두자. 잊지 않으려면 자꾸 보는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브런치에 올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글쓰기' 자체가 내 목표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고, 보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05. 지금까지 만다라트를 작성하게 된 계기부터 과정, 결과물을 공유했다. 매년 새해 계획을 세우는 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뭐랄까. 옛날에는 머리를 질끈 묶고 아랫입술을 꽉 깨문 후 "올해는 꼭 지킨다!" 다짐하는 성장 드라마 주인공 같이 계획을 짰다. 하지만 힘을 잔뜩 준 계획일수록 그걸 못해냈을 때의 좌절감도 같이 온다는 걸 알아버렸다. 들여다보면 매년 반복되는 <물 1.5L 마시기>와 같은 습관들로 가득찬 계획표같지만, 이전보다 나를 더 잘 알게된 상태에서 짠 계획표는 더 희망적이다. 나에게 더 부드럽고, 마음과 몸 건강을 챙기는 방향으로. 남 따라가는 계획보다 나의 중심을 향한 계획이 더 많아졌다. 그것만으로 나를 조금 더 지키며 묵묵히 나아가는 한 해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06. 아직 새해 계획을 못 세웠다면, 만다라트를 한 번 해보는 게 어떨까.
단 본인에게 맞지 않으면 그냥 넘기시라.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나의 삶을 건강하게 관리하며 나아가면 그만이다. 다만 나의 경우, 이렇게 저렇게 방법을 찾아가며 올해는 만다라트라는 새로운 도구로 나의 의지를 다져봤다. 이게 먹히면 내년, 내후년에도 만다라트를 활용해볼 생각이다. 행동력이 떨어지면, 또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면 되지. 그런 가볍고 단단한 마음으로 2025년을 다시 시작해본다. 그러니까, 내 새해는 3월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