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의심 만렙
요새 너무 힘들지?
응.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응,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어떨 때는 천재처럼 하고 싶어서.
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욕심이 생겨. 더 잘하고 싶은 욕심. 더 갖고 싶고.
어떤 거? 언니 요새는 뭐 잘하고 싶어? 뭐 갖고 싶어?
음... 음...... 일단, 집. 작업실 딸린 집 갖고 싶어. 그리고 뭔가 해내고 싶어. 내가 딱 글 쓰면 완전 특이한 거야. 완전 오리지널인거지. 그림도 '아, 이거 누구 그림이잖아. 독보적이다.' 그런 소리 듣고 싶어. 칭찬받고 싶어. 하... 성공하고 싶다.
아, 그렇지. 완전 이해하지. 성공하고 싶어?
응. 근데 그게 또 그런 것만은 아니야. 이름 알리고 싶은 거랑은 달라. 성공은 하고 싶은데 조용히 길게 성공하고 싶어. 하여튼 지금 당장 급하게 원하는 거는 작업실이 너무 갖고 싶고, 내가 꾸민 책상에 앉아서 글 쓰고 싶어. 크크크, 히히. 웃기지? 어디서나 쓰고 그릴 수 있는 건데, 막상 생기면 나가 놀고 싶겠지? 흐흐흐.
흐흐. 그치. 알지. 근데 작업실 있으면 좋지. 당연해. 이해해. 그리고 어떻게 알아. 환경 바뀌면 글발도 확 좋아지고 그럴지.
응응. 그럼, 모르는 거지. 요새 핀터에서 작업실 인테리어 엄청 긁어모으고 있어. 아, 웃겨. 상상만 엄청해. 예전에 어떤 소설가한테 들은 얘기거든. 북토크에서. 그러더라고. 글 쓰는 건 짬이 안 차는 일이래. 알 것 같은 그런 기분 들더라고. 쓰면 쓸수록 어렵다는 말에도 공감 가고. 그 작가 소설가였는데 자료 조사하는 양도 엄청나고 메모도 엄청나게 한다고 하더라고. 아, 내가 미쳤지. 그런 작가들이 내가 깨작깨작 글 쓰는 거 보면 얼마나 한심할까?
에이, 뭐야. 아니야. 언니 글도 좋아. 다 각자 방법이 다른 거지. 언니는 지금 살림도 하고 애도 보고 돈도 벌고 그림도 그리고 언니도 대단한 거야.
그런가? 그런 거 있지? 그래서 뭔가 다 중간인 거 같은 느낌. 욕망이 끝도 없고, 걱정도 계속하는데 뒤돌아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거 알면서도 하고 있어. 난 왜 이럴까? 다른 엄마들은 애들한테 완전히 올인하고 있잖아. 아니면 아파트 사거나, 주식하거나. 난 애들 공부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왜 이렇게 딴 세상에 외따로 떨어져 있어. 나만 혼자. 언제 철드냐 진짜.
에이, 진짜, 언니. 언니만 그런 거 아니야. 어제 내가 무슨 유튜브 봤거든? 좀 딴 소리긴 한데, 어떤 남자가 자산 300억 있다는데, 그러면 남들은 슈퍼리치라고 하잖아. 근데 정작 본인은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든다는 거야. 농담 아니라 진지하게. 그거 보니까 돈이 사람한테 뭘까, 얼마나 가져야 하나? 기준이 뭔가 있어서 얼마만큼 벌고 나면 멈춰야겠다 이런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냥 막 달리는 말인 거야. 내가 그거 보고 언니, 사람이 달리는 것보다 멈추는 걸 잘해야 행복을 만나겠구나 싶더라고. 막 달려봤자 뭐 하냐고. 그니까 언니 글 쓰고 싶고, 그림 그리고 싶고, 욕심 좀 부리고 하는 거 다 보기 좋아. 잘하고 있어.
나 눈물 날려 그래. 어디 가서 내가 남들하고 다르게 살고 싶다고 하면 잔소리 엄청 듣거든? 나이 먹고 아직도 철없다고. 너 만나니까 살 것 같다. 우리 술 마실까?
그래, 가자!
잔을 부딪친다. 그녀들은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어 내려간다. 뿌리는 깊게 깊게 영혼의 자리까지 자리 잡는다. 영혼끼리 잔을 부딪친다. 서로의 영혼이 아까부터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술잔을 내려놓았다. 세상의 언어로는 말할 수 없는 탄식과 방언으로 위로했다.
차흐마해요르마힌 요마스혀메즈히 그햐르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