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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잔 Mar 01. 2024

아버지의 목련

그건 봄이었을까?

아빠, 내가 책 세 권 보냈어. 재미있게 읽으세요. 네, 네. 끊어요.


네, 여보세요?

네, 제가 이진희인데요.

네?


아버지는 봄이면 목련꽃을 피우던 나무와 눈이 마주쳤을 것이다. 추락하는 동안 내내 그랬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른다. 그동안 주욱 여자로 살아왔기 때문일까? 아버지가 남자이기 때문일까? 아버지가 무슨 마음으로 살아왔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엄마가 살아왔을 경험에 대해서는 그보다 낫다. 결혼하고 더욱, 첫째를 낳고 더욱, 둘째를 낳고 더욱 겹치는 삶이 늘어났기 때문에 이해의 가능성도 훨씬 넓어졌다. 그러나 아버지는 잘 모른다. 정확한 것은 그의 태어난 날과 죽은 계절뿐이다. 

아버지는 봄에 죽었다.

 

아버지는 누구이며 남자의 삶은 그 외형 안에 무엇이 담겨 있을까? 아버지는 평생 역무원으로 일했다. 말수가 별로 없고 술도 마시지 않고 유일한 취미로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함께 다니는 일이 많아 동네 사람들 눈에 자주 띄었다. 엄마는 성당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 동네 교우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오히려 아버지 쪽이 혼자서 동네를 배외할 때면 다소곳한 양반이라는 말을 듣고는 했다. 그런 포지션으로 80세가 넘도록 살았다. 그러다 1년 전에 엄마가 먼저였다. 나이가 50이 되었는데도, 엄마를 잃은 상실감에 힘들었다. 친척들과 지인, 성당 사람들이 합세한 거창한 장례식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소곳한 사람이라 그랬는지 아버지의 장례행렬은 분위기가 달랐다.


부검 결과는 단순사고사였다. 부모님이 사시던 빌라 입구에 서서 아버지의 방을 올려다보았다. 늙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한 네모진 창은 무표정하게 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해 줄 말이 없니? 

아버지는 저기 3층 창가에 서 있었다. 정신을 잃고 그대로 추락했다. 아버지의 방은 4평 크기에 직사각형의 방이다. 한편에 이불장을 겸한 옷장, 그 맞은편에 책장이 서 있고 나란히 책상이 앉아있다. 나머지 공간에 책이 쌓여 있다. 틈새를 찾을 수 없이 천정까지 온통 책으로 덮였다. 말 못 하는 벽을 대신해서 나의 숨이 막힌다. 옷장 속 옷걸이에 듬성하게 셔츠 몇 장이 걸려있다. 흰색에 가까운 푸른색 바탕에 진한 하늘색 스트라이프 셔츠가 낯익었다. 그리고 다시 책이 쌓여있다. 쓸모와 전혀 상관없다는 듯 옷장을 다룬 아버지의 개성이란 이런 것인가. 바퀴가 고장 나 엉뚱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아버지의 책상의자에 앉았다. 벽에 붙은 종이 위에 아버지의 글씨로 시가 적혔다.


빨간 바다가 춤을 추면 노랑옷을 입는다

무릎을 한껏 구부려 기도를 올린다


노란 신호를 좇아 넘실거린다


호수에 모자를 바치고


무릎을 한껏 구부려 기도를 올린다


책상 위에 얼마 전 내가 보낸 세 권의 책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이 책들 얘기로 아버지와 나눈 통화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메시지가 되어 버렸다.

아빠? 진희야. 아빠 괜찮은지 궁금해서 걸었지. 내가 보낸 책 읽어봤어? 재밌어?

진희야, 두 권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한 권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회사 직원이 재미있다고 추천하길래. 왜? 어려운 책이야? 어떤 책이 이상해?

어... 젊은 부부 얘기인데, 그냥 이상해 진희야.

어, 어... 그래? 직원한테 물어봐야겠다. 아, 아빠 미안. 전화 들어온다. 금방 다시 걸게요.

어, 어. 그래!

의문의 책 세 권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소파 위에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잠을 설치며 몇 번이고 깨어났다. 네 번째 잠에서 깨어났을 때 꾼 꿈은 오래간만이다. 어릴 때 하교하는 길에 지나쳐야 하는 골목에 수십 개의 바비인형들이 미끼처럼 나를 꾀었다. 나는 그것들을 신이 나 주웠는데 지칠 때까지 인형이 사라지지 않아서 기분이 나빠져 잠에서 깨어나고는 했었다. 

더 이상 잠들 수 없었다. 일어나 캡슐을 넣고 커피를 내렸다. 세 권의 책을 한꺼번에 들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웠다. 이제 갓 입사한 부하직원이 5월에 있을 행사준비를 위해 추천한 책이다. 출근 전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세 권의 책을 읽었다. 장편소설 한 권, 산문집 한 권. 아버지가 말했던 젊은 부부의 이야기는 단편소설이었다. 아버지 말대로 이상한 내용이었다. 기분이 나쁜.


응, 진희야. 응, 응. 아, 그래? 매번 고맙네. 우리 딸 덕분에 좋아하는 책 실컷 읽고 호강해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우리 딸. 그래 끊자.

진희가 나를 위해 큰 소리로 말할 때 소리는 귀가 아닌 생각에서 울리고는 한다. 뒤늦게 도착하는 소리와 대답을 기다리게 한 미안함에 몸이 줄어드는 것 같다. 창가에 서서 목련꽃을 보려면 한참을 숙여 키를 맞춰야 했지만 이제 줄어든 몸이 목련과 잘 어울리는 한쌍이 되었다. 목련꽃이 만개했다. 진희가 결혼을 하고 아내와 나는 집을 옮겼다. 한 층에 한 집만 있는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서재로 쓸 만한 방에 해가 충만히 들어오고 있던 집의 갖춤이, 유별나게 키가 큰 목련의 생명력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봄이면 목련꽃을 볼 수 있는 방을 서재로 쓰겠다는 결심대로 책장과 책상을 내 나름대로 꾸며놓았다. 성경책 외에 책을 읽지 않는 아내는 식사 때 문을 두드리는 일 외에는 내 서재에 오는 일이 없었다. 나의 방, 나의 서재에는 목련과 나 둘 뿐이었다. 아내가 자신이 믿는 신의 부르심대로 떠나자, 옷장을 가져와 모든 생활을 목련과 함께 하게 되었다.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상실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출발이 필요했다. 어둠이 짙게 시작될 무렵 잠자리를 준비했다. 전등마저 꺼져버린 방에 가로등 불빛에 만들어진 목련의 그림자가 나의 몸 위로 겹쳐졌다. 그대로 몇 분이라도 깨어 있고 싶어도 노인의 육체를 입은 나의 몸은 버티지 못하고 금세 잠이 들어버린다. 정확히 새벽 여섯 시가 되면 깨어나는 정신이 목련의 그림자를 찾는다. 나의 무심함에 지쳐버린 목련을 좇아 창문을 열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목련의 기분을 살핀다. 목련이 나를 흘겨본다.


겨우내 목련과 함께한 새로운 살림덕에 심한 감기에 걸렸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사나운 냉기가 몸을 앓게 했다. 죽은 아내의 영혼은 분명히 자기 아버지품에 안겨있을 텐데, 아내가 나와 목련을 질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내는 나의 기억도 없이 생전에 그토록 사랑했던 자기 아버지와 행복할 일이다. 목련이 꽃을 피웠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도 목련은 시샘도 않고 나에게 목련꽃을 안겨주었다. 누워 진희가 준 책을 내리읽었다. 긴 시간이 흘렀다. 훨씬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한 남자의 자기 성찰이 짙게 베인 장편소설과 짧은 산문집. 편지글로 쓰인 단편소설을 끝으로 읽고 가벼워진 몸을 일으켰다. 무엇 때문에 몸이 가벼워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것을 더듬는 것에 지쳤기에, 받아들일 뿐이다. 저녁밥을 지어먹고 독한 약을 삼키고 어둠이 짙어져 잠자리를 준비했다. 가로등불에 목련과 목련의 꽃이 들어와 가족이 함께 잠에 들었다. 전에 없던 늦잠을 잤다. 약기운이, 몸에 남은 무게마저 증발시켰다. 창을 열어 목련과 목련의 꽃에게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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