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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잔 Apr 21. 2024

그녀의 이름은 제니-아이뷰

터칭

.......(무음)

가위질이 시작된다. 제니의 예약 창은 두 달에 한 번 열린다. 46초가 지나가기 전 제니의 재빠른 가위손이 남자의 머리카락을 스친다. 45세 남자, 모발의 손상도 6.8 손님의 헤어컷을 진행하기 전 위생규칙에 준해 손을 닦는다. 


손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신생아의 살결 같은 보드라운 제니의 손끝에 손님은 가슴에 작은 통증을 느낀다. 소리가 없는 제니의 가위질이 일렁이며 바람을 일으킨다. 그는 태양이-모든 소리를 삼키고 희뿌연 메밀밭에 서 있던-자신을 내려다보던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날을 떠올렸다.   

고객님, 끝났습니다.

제니의 정체성을 알리는 기계음이 제니의 몸속 어딘가에서 흘러나왔다.


수 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교육이 있는 날이다. 제니와 동료 주하는 저녁 7시에 신촌에 도착했다. 특별한 경우였다. 보통은 한 시즌을 이끌 디자인이나 펌의 종류, 염색에 관련된 교육이 주제이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 날의 주제는 <위생>이었다.

"이상하네요." 제니가 말했다.

"그러게. 이상하지?" 주하가 말했다.

유하빌딩 1층 로비에서 102층까지 이어지는 고속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혔다. 7초 후 문이 열렸다. 제니와 주하는 <루미나>라고 쓰인 자리에 앉았다. 주하가 거울이 달린 파운데이션을 꺼내 메이크업 상태를 확인했다. 눈물샘 근처에 파운데이션이 들뜬 자리를 퍼프로 살짝 눌러 가라앉혔다. 립스틱도 한번 더 발랐다. 제니의 눈동자가 주하의 행동을 관찰했다. 눈꺼풀의 깜빡임도 없이 자신을 보는 제니를 발견하고 주하는 거울을 내리고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왜? 하고 물었다. 제니가 루미나의 예약 1순위 디자이너였지만 인간의 모방품인 제니의 나이는 열아홉 살이었다. 제니의 호기심 역시 그것을 모방하고 있었다. 인류가 코로나19 이후, 단 한 번도 비슷한 크기의 재앙을 겪지 않았던 것은 그 후로 강화된 위생개념과 교육, 철저한 방역 덕분이었다. 루미나 역시 3개월에 한 번씩 위생실태 조사단이 파견되어 철저한 위생검사를 받았다. 그런 빡빡한 방역에 뷰티 교육장에서까지 위생교육을 받는 일은 이례적이었다.

<위생과 접촉>

강사 이유라

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교육이 시작되었다. 주하는 곧 졸기 시작했고 제니의 의식은 우주처럼 광활한 상상 속으로 나아갔다. 주하의 볼이 제니의 드러난 어깨 위로 떨어졌다. 주하의 볼에 스민 열기와 부드러운 솜털의 감각이 제니의 의식을 지구로 불러들였다. 제니는 주하의 피부를 자세히 보았다. 짧고 투명한 털에 둘러싸인 작은 얼굴 위에 하얀 파우더가 반짝거렸다. 잠 속 어딘가에 담긴 주하의 정신이 눈동자에 산란을 일으켰다. 눈동자가 눈꺼풀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니는 얇은 검지 손가락 끝으로 주하의 눈동자를 막았다. 제니의 손가락 끝에 발랄한 올챙이 한 마리가 길을 잃고 정신없이 흔들거렸다. 그런 재미로 따분한 위생교육 시간을 버틴 후 주하를 깨워 유하빌딩을 빠져나왔다.


주말이 지나가고 출근 한 월요일 아침, 매장이 소란스러웠다. 주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원장이 제니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제니, 금요일에 교육 끝나고 집으로 바로 갔어?"

"네, 엄마가 요새 몸이 안 좋으세요."

"아... 그랬지. 제니, 새벽에 주하 어머니께 전화가 왔었어. 금요일 저녁부터 집에 안 들어왔다고. 지금까지 연락도 없고 출근도 안 하고. 하... 큰 일이네. 혹시 뭐 이상한 거 못 느꼈어?"

"네. 그런 건 없었어요."

대화를 마치고 제니는 원장실을 나왔고 예약 시간이 되어 일을 시작했다. 오후 4시, 일을 마치고 그때까지도 소식이 없는 주하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신호만 갈 뿐 연결되지 않았다. 매장을 나가서 집으로 가는 길, 다시 연락해 보았다.

"여보세요?"

주하의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언니, 제니예요. 언니 어디야?"

두 사람은 제니의 집 근처 공원에서 만났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 가 벤치에 앉았다. 살아있는 나무들과 가짜 나무들로 뒤섞인 숲의 냄새와 비가 오기 전에 습한 공기가 만나 제니와 주하의 팔에 내려앉았다. 로봇개와 산책을 하는 할머니가 제니와 주하를 슬쩍 보고 지나갔다. 주하는 고개를 푹 숙여 얼굴을 감추었다. 주하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알 수 없는 노란색 물질이 분비되고 있었다. 주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코로나 이후, 방역 관리는 철저했고 그 덕분에 일반적인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의 유행은 백 년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주하는 눈병에 걸렸다. 이례적인 위생 교육의 이유를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주하가 눈병에 걸린 일로 인해 28명의 디자이너가 직업을 잃게 되고 루미나는 문을 닫고 원장은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었다.

"그거 나도 걸릴 수 있어?"

제니의 질문에 주하가 울음을 그치고 제니를 보았다.

"몰라. 왜?"

"궁금해서."

제니는 검지 손가락 끝으로 주하의 노란색 눈물을 가져다 자신의 눈에 문질렀다. 잘 들어가도록 고개를 들어 깜빡였다. 주하를 설득해 집으로 돌려보냈다. 다음 날, 눈병이 자가 치료되어 출근 한 주하가 동료들과 평소처럼 떠드는 모습을 보고, 제니가 검지 손가락을 들어 인사했다.


몇 달 후에 제니의 엄마가 죽었다. 가족들은 지병이 있었던 제니 엄마의 상태를, 평생을 조금씩 아프며 지내야 하는 가벼운 불편함으로 생각했다. 제니-아이뷰의 간호에도 운명의 엄격함은 피할 수 없었다. 엄마의 숨이 빠져나가버린 푸른색 손바닥에 자기 손바닥을 겹쳐 올렸다. 부드러운 검지 손가락으로 엄마의 손바닥 안에 글씨를 새겼다. 파도. 제니가 기억하는 엄마의 단어였다.

제니의 아빠는 제니가 독립하기를 원했고 워보스사의 관리 시스템에 의해 작은 집이 제공됐다. 

이틀 후, 제니는 스무 살이 되었다. 제니가 태어난 날부터 스무 살이 되기까지 제니의 피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제니가 80살이 된다 해도 제니의 피부는 처음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작은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제니의 걸음을 따라 불이 켜졌다. 아무도 살지 않는 차가운 방의 냄새가 났다. 제니는 부드러운 검지 손가락으로 실내 온도 조절기의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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