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섬 Nov 28. 2024

기억을 잃은 다리와 쇼생크 탈출

<프롤로그>


핸드폰 진동이 경적소리만큼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들어 발신인을 보니 찰나에 호흡이 멈췄다.

그 얘기겠지.

어스름이 깔린 고시텔 방안에 휴대폰 불빛과 느리게 느껴지는 시계 초침 소리, 옆방에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음, 네…네…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소란스러운 고요를 이루고 있다.

2년의 시간은 2분의 통화로 종결되었다. 눈을 감고 꼼짝없이 2년 전과 똑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젠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세계는 정지했지만 마음은 어딘가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1. 기억을 잃은 다리와 쇼생크탈출


저녁 무렵 똑똑똑 세 번의 노크.

의자에서 일어서려는 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요즘 부쩍 다리가 연체동물화되어 방 밖으로 아예 나가고 있지 않다.방 밖으로 나가지 않아 다리가 연체동물화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지도. 그런데 오늘은 느낌이 다르다. 의자 팔걸이를 짚는 순간부터 다리가 마취총을 맞은 것처럼 무감하다.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지만 그전에 다리를 못 쓰는 건 예상에 없던 일이다. 양손으로 테이블을 짚으며 짧은 심호흡 후 무릎에 힘을 주어 간신히 일어선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내쉰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귀를 울린다. 다리에게 이제 움직일 거라며 텔레파시를 보낸다. 테이블에서 현관까지는 아홉 걸음 남짓. 뭐 마려운 사람처럼 엉거주춤 현관을 향해 걸어간다. 상체가 통과할 만큼만 문을 열자 서늘한 공기가 문 앞에 서있다. 다리에 힘을 주고 달짝지근한 냄새를 풍기는 비닐봉지를 든다. 차가운 기운이 들어오기 전 재빨리 문을 닫고 천천히 테이블로 돌아오자 초등학교 운동장 한 바퀴를 돈 것처럼 심장이 둥둥 거린다. 크게 한숨을 내뱉는다.




보통의 식욕을 가진 사람이 혼자 산다는 건 최소 배달 금액에 간신히 맞춰 음식을 주문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 싶었지만 오늘의 선택은 짜탕면. 이 세상 검은색 음식 중 인류의 침샘을 자극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짜장면을 먹기 위해 손바닥 사이로 젓가락을 비벼 반으로 정확히 가른다. 의도만큼 자로 잰 듯 갈라지지 않자 패배 의식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로 시작한 부정의 감정은 재빨리 증식한다. 삶에 의욕이라곤 없는데 때가 되면 밥을 먹는 스스로가 한심하다. 양손에 젓가락 한쪽씩 주먹 쥐어 잡고 짜장면을 비비며 습관이 된 패배감과 최근에 생긴 다리에대한 불안을 함께 비빈다. 달콤하며 짭조름한 짜장 반, 바삭한 식감에 육향이 잔잔한 탕수육 반.

제주 흑돼지라고 하는 데 알 길은 없다. 검정 털이 박혀있어야 진성 흑돼지라나. 얇은 튀김옷에 가려져 안 보이는 건지 까만 털을 잘 제거해서 볼 수 없는 건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 털을 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제주에 와서 ‘흑돼지’가 ‘백돼지’보다 비싸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 배달 앱엔 흑돼지 프리미엄이 가득하다. 흑돼지 돈가스. 흑돼지 탕수육, 흑돼지 두루치기, 흑돼지 패티가 들어간 수제버거. 그렇다. 이곳에서 흑돼지는 훈장이다. 백돼지보다 비싸고 고급 음식이라는 훈장. 그 훈장 덕분에 최소금액을 간신히 맞췄다. 패드로 유튜브를 켠 후 구독 목록에서 오분 순삭을 누른다. 먹을 땐 무한도전이 최고다. 입으론 미각을 느끼고 눈으론 재미를 찾는데 머릿속엔 잡념이 엉켜있다.




증발하고 싶은 데, 사라지고 싶은 데, 아무것도 하기 싫은 데, 왜 식욕은 사라지지 않을까.

굶어 죽지는 못할 운명인 건가.

씹는 듯 삼키는 듯 순식간에 그릇을 다 비워내자 한 끼에 만 팔천 원을 썼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온다. 이럴 거면 내일 또 먹을 수 있는 치킨을 시킬 걸 그랬나. 괜스레 짜장면이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짜장은 추억으로 먹는다는 데 내가 어린 시절 먹던 그 중국집이 아니어서 그럴까. 아니면 짜장면에 관한 특별한 추억이 없어서일까. 어김없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잡생각을 끊어내려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바로 주저앉는다. 곧게 서야 할 다리가 흐물흐물한 게 뼈의 심지가 사라진 느낌이다. 힘이 없어지니 평소엔 신경도 안 쓰던 다리를 주시해 본다. 있어야 할 곳에 잘 붙어있다. 너무 움직이지 않아서 기능을 상실했을 뿐. 짧은 한숨 후 의식을 다리에 집중하며 탁자를 짚고 일어선다. 몇 번의 심호흡 후 엉거주춤 다섯 발 남짓 걸어 주방으로 간다. 플라스틱 용기에 남아있는 짜장과 탕수육의 잔해를 물로 헹구고 탁탁 털어 두루마리로 남은 물기를 닦아낸다. 잔향이 남지 않도록 포장되어 온 비닐에 밀봉한 후 싱크대 옆 냉장고 위에 둔다. 손을 닦고 입을 두어 번 헹군 후 양치를 한다. 오늘 할 일 끝. 일어난 모양 그대로 놓여있는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바스락거리는 도톰한 두께의 하얀 이불과 꼬깃꼬깃한 순백의 침대 시트가 양쪽에서 나를 감싼다.



 

잠에서 깨 시간을 보니 11시 28분. 먹자마자 잠들었다. 먹고 자고 생활하는데 두서가 없어진 지 오래다. 한숨을 쉬고 옆으로 돌아누워 아이패드로 넷플릭스를 틀어 보다 만 ‘나는 솔로’를 누른다. 왜 솔로인지를 증명하는 듯한 출연자들을 바라본다.

왜 저래. 저렇게 표정관리가 안 돼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지? 왜 저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출연자를 재단하다 보니 어느새 한 편이 끝난다. 기댄 쪽 어깨가 뻐근해 반대쪽으로 돌아눕는다. 뒤통수에서 새어 나오는 아이패드 불빛 말고는 사방이 어둠이다. 눈을 감는다.


6평 직사각형 방이 삶의 전부인 나를 바라본다.


가구는 침대와 작은 테이블. 내 것은 커다란 회색 트렁크와 몇 벌의 옷, 4개월 동안 거의 울린 적이 없는 핸드폰, 할부가 다 끝나지 않은 아이패드와 자잘한 생필품뿐이다.

이 방을 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2년 만에 만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가성비 좋은 방을 빌려주겠다며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 사장님에게는 죄송하지만 죽기에는 마침맞아 보였다. 바닷가 마을의 낡은 3층짜리 건물, 1층은 작은 편의점, 2층은 마주 보는 투룸 2개, 3층은 나란히 원룸 3개. 3층은 모두 공실이었고 나는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열었다.

문 오른쪽에 또 다른 문 하나를 여니 화장실. 세면대에 샤워기가 설치되었는데 샤워를 할 때마다 변기 쪽도 물 바다가 될 만큼 협소하다. 현관 정면으로는 주름이 소박한 잿빛 커튼이 달린 널찍한 창문이 있고 그 밑에 세로로 새하얀 싱글 침대가 누워있다. 오른쪽 벽면에는 세로로 텅 비어있는 흰색 행거. 그 옆으로 2인용 정도의 나무 테이블과 제법 등을 받쳐 줄 만한 회색 패브릭 의자가 하나. 거기서 시계방향으로 몸을 돌리니 화장실과 벽하나를 사이에 1인용 싱크대와 1구짜리 인덕션 옆으로 160이 될랑 말랑한 내 키보다 작은 구형 냉장고가 배고프다고 소리치며 우웅 대고 있었다.

보증금 50만 원, 월 40, 관리비 포함

수중에 가진 1370만 원을 다 쓰기에 짧게는 9개월, 길면 1년 좀 넘게 걸리겠다 생각했다.

어쨌든 서른다섯에 생을 끝내리라.

그로부터 지금 막 4개월을 지나고 있다.

내 인생이 2개월에서 8개월 정도 남았다는 말이다.

무슨 미련인 건지 돈과 삶이 끝을 향해 갈수록 지출을 줄였다.




죽고 싶은 게 맞나.

생각은 늘 자기 비하로 끝난다.

나는 솔로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처지인 내가 직장 다니며 열심히 사는 사람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고 만 팔천 원짜리 식사에도 벌벌 떨면서 누구를 처량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는 걸로 불안해하면서 진정 죽고 싶은 게 맞는 건지… 제일 한심한 건 나다. 그런 나도 나를 모르겠다. 그런데 하나는 확실하다. 나에겐 죽을 용기가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망상과 자기 비하의 세계로 떠났다 어깨가 뻐근해질 때쯤 다시 아이패드를 향해 돌아눕는다. 시간을 보니 새벽 5시가 다 되었다.

발목을 까딱까딱해 본다. 기지개 한번 쭉 켜고 상체를 일으켜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머리가 핑 돈다.

다리에 이상을 느낀 건 한 달 전부터다. 세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두문불출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1층 편의점과 맞은편에 쓰레기 버리러만 왔다 갔다 했다. 최근엔 3주 가까이 나가지도 않고 씻지도 않았다. 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방안과 내 몸에서 꼬릿하고 구질구질한 냄새가 피어올랐으며 날파리까지 날아올랐다. 바닥엔 먹다 놔둔 과자상자와 봉지들, 한 움큼씩 빠진 머리카락, 물로 헹구지도 않은 배달 음식 용기들과 페트병들이 점유하고 있었다. 그 쓰레기 사이에서 꼬물거리는 애벌레들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거워지고 힘이 빠진 몸뚱이를 간신 히 움직여 방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는데 이미 얼마 남지 않았던 몸의 근육과 마음의 근육이 동시에 급속도로 빠져나간 후였다.

결국 일주일 전부터는 일어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위기의 절정.

오늘 한 번에 일어서지 못하고, 일어서도 선뜻 다리가 움직이지 않자 위기감이 엄습했다.


이제 정말 죽을 때가 된 건가. 제주에서 방에만 있다가 일어나지 못한 채로 죽는 건 서글프지 않나.

사실 죽고 싶다기보다는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적합하다. 아프지 않게 죽고 싶다. 연기처럼 증발하고 싶다

그런데 그런 죽음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만약 다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한 다면 배가 고파 죽게 될까. 배고파 죽으려면 두 달 정도는 굶어야 할 텐데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배고픔을 참다가 마지막 변을 보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해 변과 함께 더러움 속에서 죽어가면 어떡하지? 시체는 얼마 만에 발견될까? 월세를 독촉해도 답이 없어서 주인아주머니가 죽고 난 후 두세 달 후쯤 방문을 열고 들어올까? 내가 제주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 엄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유서를 미리 써놔야 되나.

생각은 죽음을 건너 그 이후에 가닿았다. 그러자 어딘가에 숨어있던 생에 의지가 조용히 정수리를 보인다.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다리를 좀 움직여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싸우기 시작한다.

방 안속 어둠이 사방에서 조여 오고 머리는 땅속 깊은 곳으로 점점 가라앉는다. 물구나무서기를 꽤 오래 한 것처럼 얼굴이 뜨거워진다.

한참을 뒤척이다 덮었던 이불을 걷어내며 발을 하나씩 바닥으로 내린다. 한 손으로 침대 머리를 짚고 다리에 힘을 준다.

엉덩이를 떼기도 전에 전기구이 통닭이 된 것처럼 발목에서 허벅지까지 전류가 흐른다.

침대에 주저앉아 두 다리를 곧게 편채 남아있던 전류가 빠져나가기 만을 기다린다.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이러다 못 걸으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에 아찔하다.

당장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걷고 일어서는 게 문제다. 타성에 젖은 비관은 코앞의 시련에 재등장하지 않았다.

무릎을 주물주물하고 발가락을 쥐었다 폈다 발끝을 당겼다 발등을 폈다 하며 잔류 전기를 흘려보낸 후 이번에는 한 손 한 손 침대 머리와 창틀을 동시에 짚으며 일어난다.

흡!!!!

휴우…… 성공

짧은 기쁨을 뒤로한 채 모든 주의를 다리와 발바닥에 집중하며 조심조심 행거로 걸어가 유행 지난 검은 롱패딩 하나를 꺼내 입는다.

1층 편의점이 아닌 곳으로 외출을 할 생각이다.

제주에 온 지 4개월 만에 정식으로 세 번째 외출에 나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