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에서 나는 자연인이다.

자연으로 돌아가고파!

by 혜룡

종일 푸릇푸릇함을 바라보다.

발리 덴파사르 공항(DPS)에서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 중에 K-POP 스타가 있는 게 분명해! 수많은 픽업 기사들이 종이에 대충 적어놓은 이름을 들고 한국인만 보면 이름을 불러댔다. 내 이름이 영어로 되어 있을까? 한국어로 되어 있을까? 다들 짝을 지어 이동하는데, 내가 예약한 기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30분을 찾아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투어 회사의 가이드로 보이는 한국인 분에게 SOS! 숙소에 전화해서 기사와 만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것인지. 흐릿하게 인쇄되어 보이지도 않게 적힌 내 이름. 접힌 모양을 보니, 주머니에 넣어두고 어디서 쉬다가 연락받고 기어 나온 것 같은 의심을 버릴 수 없었다. 발리의 첫 느낌이 좋지 않았다. 너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예약한 방은 숙소의 입구에서 골프장에서 타고다니는 카트같은 것을 타고 한참을 더 들어가야 했다. 7시간의 비행, 30분의 시달림, 1시간 30분의 이동 후 도착한 숙소. 밖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방에서는 붉은 개미들이 정신없이 기어 다녔다. 시간은 벌써 새벽 3시. 나는 도대체 이곳에 무얼 바라고 온 것일까? 사진으로 봤던, 이야기로 들었던 발리는 어디에 간 것일까? 나는 낚인 것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우리는 이미 우붓에 도착했다. 피곤한 엄마는 씻지도 않고 그대로 주무셨다. 나는 저 개미들이 나를 물까 봐 두려워서 불을 켜고 손에는 휴지를 꼭 쥐고 겨우겨우 잠들었다.


서서히 긴장이 풀렸는지 꾸벅 잠이 들었다가 깨었는데, 귓가에는 처음 들어보는 신기한 새소리가 울렸다. 익숙한 닭 울음소리도 들렸다. 벌써 해가 떴는지 주변이 환했다. 아, 내가 켜놓은 조명 때문에 더 밝았다. 시간은 새벽 6시. 해도 참 빨리 뜨는구나. 더 자기는 글러먹은 것 같아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 커튼을 치우고 창밖을 바라봤는데, 세상에나!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이 세상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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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라카 리조트&빌라> 방에서 바라본 풍경, 테라스로 나와서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이국적인 나무와 가짜로 의심되는 화려한 꽃, 모든 것이 나무와 잎으로 이루어진 조명,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 느낌의 논 뷰. 한국 시골의 논이랑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건너편은 이곳 사람들이 사는 집 같은데 모양이 무척 독특했다. 외국인이 한옥마을에 놀러 오면 이런 느낌인 것일까? 상당히 이국적이고 멋있다. 액자처럼 작은 출입문으로 사람들이 드나든다. 벌써 일을 시작하는 것일까? 어제는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아침에 보니 너무도 멋있는 곳이었다. 개미들은 여전히 많았고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DSC01369.JPG <아궁라카 리조트&빌라> 아침에 떨어진 꽃을 줍는 즐거움이 있다.

엄마와 밖으로 나와서 산책을 했다. 이곳은 리조트 같은 곳인데,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일반적인 호텔식 건물과 독채로 구성된 건물이 있는데, 각 건물에는 수영장과 논 뷰를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가족 단위로 왔다면 독채 건물을 예약했을 텐데, 아쉽다. 리조트가 크고 넓지만 죄다 논이라서 가는 길목은 우리나라 시골길처럼 좁다. 마주오는 사람과 가깝게 붙을 수밖에 없어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채 인사를 나눈다. 마주치는 모든 직원들이 우리에게 "굿모닝"을 말한다. 이 멋진 풍경은 판타지 게임이나 아바타 같은 영화에서나 봤는데 실물을 접하니 나는 다른 세계에 온 듯하다. 저 멀리 소가 보였다. 풀을 뜯는 소 옆에는 오리들이 다녔다. 처음 보는 큰 새들도 있었고, 다람쥐도 뛰어다녔다. 비교적 깨끗한 상태의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애교를 부리며 음식을 구걸했고, 지나다니는 개들은 시크해서 사람에겐 관심도 없었다. 아,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두려움이 없다는 게 맞겠다. 사람이 오면 지나갈 때까지 잠시 길을 비켜주고 사람이 지나가면 그제야 자신의 길을 간다. 사람들이 아는 척하면 무척 귀찮다는 듯 자리를 뜬다. 세상 시크하다.


모든 것이 자연의 재료!

숙소나 식당, 가게에서 사용되는 것들이 자연에서 온 재료들이다. 플라스틱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숙소에서 제공되는 것들은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되었다. 묶어진 끈 하나도 새끼 꼰 줄로 되었다. 포장을 최소화하고 혹여 포장이 필요하면 종이로 싸졌다. 음식이 나오면 바나나 잎으로 만든 접시 모양에 반찬이 담겨 나왔다. 빨대는 나무 또는 스테인리스로 되었고 테이크아웃 잔은 모두 종이였다. 혹여 플라스틱으로 제공되어도 재사용이 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곳이 플라스틱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전체적인 느낌은 자연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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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네카 앳 라사사양> 욕실에는 장바구니, 위생봉투, 채워서 사용하는 샴푸와 로션이 있었다. 모두 재사용이 가능한 것들이다.

노브라, 노메이크업! 내 몸도 자유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도 점점 자연인이 되었다. 더운 날씨에 조금만 걸어도 땀이 흐르고 살이 익는다. 남성 여행자들은 상의를 탈의하고 바지만 입은 채 걸어 다닌다. 바다도 없는데 어찌 저러고 다니지 싶지만, 다 그렇게 다닌다. 여성 여행자들은 대부분 노브라다. 대충 천을 걸쳤다는 느낌의 나시를 입기도 했고, 이곳 전통 예복 느낌의 원피스를 사 입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노브라다. 발리 현지인들의 복장은 너무 꽁꽁 싸여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여행객들은 노브라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 처음엔 무척 놀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도 노브라로 다녔다. 세상 이렇게 편할 수 없다. 물론, 티가 잘 나지 않을 옷들을 챙겨가긴 했다. 염두하긴 했지만, 막상 노브라로 다니려니 옷차림에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브라를 포기할 수 없었다. 우붓에는 요가 스튜디오가 많고, 여행자들은 아침에 조깅을 하거나 요가를 한다. 그래서 요가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이 차림도 세상 편하다. 아, 한국에서 요가복 차림으로만 또는 노브라로 돌아다닐 수 있을까? 음, 나는 아직 어렵다. 우붓이니까, 여기선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다들 저렇게 다니니까 나도 슬쩍 섞여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엄마도 노브라로 돌아다니는 것은 무척 좋다고 했다.


파우치 가득 챙겼던 화장품도 전혀 사용하지 않게되었다. 바짝 마른 입술 보호를 위해 립밤만 들고다녔다. 선크림도 바르지 않아서 살은 점점 익어갔다. 이곳 공기가 좋아서일지, 물이 좋아서일지 모르겠지만 얼굴에 트러블도 없이 맨들맨들한 피부로 다녔다. 화장품이 필요 없었다. 이런 자유가 좋아서 사람들이 점점 지방에 내려가 집짓고 농사지으며 노후를 보내려고 하는 거겠지? 우붓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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