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어머니는 결혼을 늦게 하셨습니다. 엄마 친구들의 자녀는 모두 환갑을 넘겼는데 우리는 가장 젊은 축이었지요. 라이프사이클에 있어 입시도 늦고 취직도 늦고 결혼도 늦었습니다. 세 딸을 키우면서 부모님은 늘 초초해하셨지요. 고등학교 때 조부모님이 돌아가실 때에는 감흥이 없었습니다. 할머니 댁에서 늘 먹을 수 있는 감자 샐러드와 무나물 반찬이 그리웠지만 눈물이 펑펑 날 정도로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으셔서 가끔 새벽에 울기는 하셨지만 슬퍼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내 나이라 갱년기로 화가 넘치셨고 사춘기로 예민했던 자녀들과 의견 충돌이 잦았습니다. 평생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월급은 빤했기에 엄마는 큰돈이 필요하면 친정에 가서 목돈을 가져오곤 하셨습니다. 강남 아파트 평수를 넓혔고 8090년대 제법 유복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경제권 때문인지 중요한 일은 늘 어머니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일을 처리하셨기에 가족들 불만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한때 정당활동에도 열심이셨던 어머니께서 민주적으로 가정사를 처리했어도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머니께 가슴속 깊이 사무쳤던 미움을 나열하면 끝이 없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유리천장에 가두려고 하셨던 것이 싫었습니다.
그녀는 거실 창가에 앉아 먼 산을 바라봅니다. 흐린 날씨는 마치 그녀의 마음을 반영한 듯, 무겁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과학고 진학을 꿈꾸던 큰딸의 발목을 붙잡았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때 연주의 어머니는 단호했다. "여자애가 기숙사는 절대 안 된다."라고 말했었지요. 그 말 한마디로 세 딸은 모두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인생의 첫 좌절을 맛봤습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지금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세 딸은 모두 피아노를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연주는 고등학교 때까지 피아노를 놓지 않았다. 어머니가 개인 레슨까지 붙이며 피아노를 강요했기 때문이지요. 그게 어머니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그녀가 원하던 삶을 살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 딸이 이과로 진학해 자신이 원하지 않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그 반항심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 하고 싶은 전공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때서야 엄마는 자식들이 자신이 아닌 그들만의 길을 걷게 두어야 했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연주는 지금도 생각합니다. '만약 그때 엄마가 딸들에게 야망을 투영하지 않았다면, 서로 더 행복했을까? 돈과 시간, 그리고 체력도 아꼈을까?'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들은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만약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고, 그대로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키가 훤칠하고 늘 착했지만, 그 착함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의 무해함이 때론 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남편 때문에 어머니의 인생이 꼬인 것일까? 착하기만 한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어머니가 암에 걸리지 않았을까? 건강하게, 100세까지도 더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연주에게 언제나 부족했습니다. 기대하는 눈높이에 맞지 않았고 그 때문에 속이 터졌고, 그의 성격을 닮은 세 딸들 때문에 어머니는 팔자에도 없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엄마가 꿈꾸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착함이, 그 순진함이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무기력하게 다가왔고, 그런 남자를 선택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세 딸 역시 부친을 닮아가고 있었고 그것이야말로 그녀에게 가장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거실 창가 너머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연주는 그 빗소리를 들으며 가슴속 깊이 숨겨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선택은 이미 끝났고,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흐름 속에서 그녀를 어디론가 이끌고 있었습니다.
경감 이찬우와 여덟 차례 전화통화를 하면서 무척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의 동기들, 선후배들의 증언을 살펴보니 반반으로 나뉩니다. 한 부류는 '법 없이도 살 성자'라고 추앙하였고, 한 부류는 '강박적으로 착한 척하는 사람'이라고 폄하했습니다. 실제 만나본 적이 없으니 전후맥락을 알 수 없어서 섣부른 평가를 하지 않겠습니다만 당신은 참고인으로 어떤 진술을 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경찰 팀원의 편을 든다면 그냥 단념하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한다면 당신을 만날 것입니다. 연말에 현피를 떠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진실규명을 도왔다면 쉽게 끝나는 문제였는데 왜 굳이 법대로 하라며 제게 목소리를 높였던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어쨌든 당신과의 결말이을 보고 싶기에 법적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하필 아버지와 닮은 점이 많아서 아니, 본인과 너무나도 닮은 점이 많아서 대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젊을 시절에는 남들한테 다 퍼주고 부탁하는 것도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시달렸는데 이를 극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완벽주의자였기에 내 잘못을 인정하기가 그토록 어려웠습니다. 그와 대면한다면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 많은데, 어느 부서로 전출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꼭꼭 숨어버렸습니다. 괜히 움직였다가 스토커로 오해받을까 두려워 이제 관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물정 모르고 순박하고 착하고 가끔 백일몽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 같습니다. 깊게 파인 목주름으로 보아 현실에서 도피해 책 속으로 빠져들고 학문적 호기심이 대단할 겁니다. 뿐만 아니라 원리원칙을 목숨처럼 지키고 가족보다는 조직이 우선순위인 외향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와이프는 속이 문드러지는데 동료와 친구들과 신선놀음을 하고 오늘을 편안하게 살자는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됩니다. 쥐띠 남자는 사치스럽지 않지만 은근 고집이 있어 가족들에겐 큰소리치고 밖에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사에 성실하고,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이며, 또 머리도 좋아 부족하지 않게 평범한 삶을 살아갑니다. 일인자는 못되어도 넘버 투나 쓰리는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완벽주의자 기준으로는 늘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착하다'는 것이 무죄 (innocence)와 동의어는 아닙니다. 유럽에는 '부자니까 선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 사람 어때?"라고 물었을 때 외모가 예쁘거나 아니면 평범하다는 말을 이중적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연주는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창가에 앉아 타로카드를 펼칩니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그녀의 유일한 의식처럼 매주 타로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여전사의 카드가 나왔습니다. 강인한 여전사의 모습이 카드 위에 또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연주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주변 사람의 소개로 귀인을 만난다'라고 타로는 말합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나를 도운다니, 이번 사건은 혼자 해낼 일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두 성씨의 사람이 한 마음으로 도운다’는 문장이 그녀의 머릿속을 오래도록 맴돌았습니다. 고지식하고 듬직한 사람.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고,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순수한 사람이라니... 이 설명이 가리키는 인물은 누구일까? 자연스럽게 그가 떠올랐습니다. 그토록 잊어보려고 애썼던 사람. 그러나 연주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둘 사이에 그렇게 우연이 겹칠 일이 있을까요. 어차피 다른 궤도를 달려가는 인연이니까.
‘무슨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다는 것일까?’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고는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마치 필연처럼 느껴지면, 그것은 운명이 아닐까요? 창밖에는 바람에 낙엽들이 춤추듯 날아다닙니다. 사건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두고, 흐름 속에서 서핑을 즐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운명이란 스쳐 지나가도 결국 만날 사람과는 어디서든 만나게 되는 법이니까. 그녀의 손에 남은 카드를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황제 카드, 에이스 카드, 그리고 스타 카드가 차례로 놓여 있습니다. 강력한 상징들—마치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듯, 우주의 기운이 한 곳을 향해 모이고 있습니다. 연주는 마지막으로 스스로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녀는 창문 너머로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습니다. 마치 세상이 그녀에게 다가오는 날을 예고라도 하듯, 차분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