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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Mar 18. 2024

착하다는 말은 칭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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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가신 어머니는 결혼을 늦게 하셨습니다. 엄마 친구들의 자녀는 모두 환갑을 넘겼는데 우리는 가장 젊은 축이었지요. 라이프사이클에 있어 입시도 늦고 취직도 늦고 결혼도 늦었습니다. 세 딸을 키우면서 부모님은 늘 초초해하셨지요. 고등학교 때 조부모님이 돌아가실 때에는 감흥이 없었습니다. 할머니 댁에서 늘 먹을 수 있는 감자 샐러드와 무나물 반찬이 그리웠지만 눈물이 펑펑 날 정도로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으셔서 가끔 새벽에 울기는 하셨지만 슬퍼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내 나이라 갱년기로 화가 넘치셨고 사춘기로 예민했던 자녀들과 의견 충돌이 잦았습니다. 평생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월급은 빤했기에 엄마는 큰돈이 필요하면 친정에 가서 목돈을 가져오곤 하셨습니다. 강남 아파트 평수를 넓혔고 8090년대 제법 유복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경제권 때문인지 중요한 일은 늘 어머니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일을 처리하셨기에 가족들 불만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한때 정당활동에도 열심이셨던 어머니께서 민주적으로 가정사를 처리했어도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머니께 가슴속 깊이 사무쳤던 미움을 나열하면 끝이 없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유리천장에 가두려고 하셨던 것이 싫었습니다.


 과학고에 진학하려던 딸의 발목을 붙잡고는 "기숙사는 절대 안 된다."며 일반고로 진학하게 된 것도 인생의 첫 좌절이었습니다. 세 딸이 싫어하던 피아노를 개인 레슨을 시키면서까지 어머니가 원하는 삶을 살기를 강요했던 것인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국 딸 셋은 반항심에 이과로 진학했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모두 하고 싶은 전공으로 바꾸면서 인생을 돌고 돌아서 오게 되었으니까요. 엄마가 당신의 야망을 자식들에게 투영하지 않았더라면 서로 행복하고 시간도, 돈도, 체력도 절약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만약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고 그대로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셨다면 달라졌을까요. 키 크고 착하기만 해서 속 터지는 남편이 없었으면 암도 안 걸리고 100세까지 더 거뜬히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어머니 눈높이에 늘 부족했던 아버지 때문에 속이 터지고 그런 아버지를 닮은 세 딸들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경감 ICW와 여덟 차례 전화통화를 하면서 무척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의 동기들, 선후배들의 증언을 살펴보니 평이 반반으로 나뉩니다. 한 부류는 '법 없이도 살 성자'라고 추앙하였고, 다른 한 부류는 '강박적으로 착한 척하는 사람'이라고 폄하했습니다. 실제 만나본 적이 없으니 전후맥락을 알 수 없어서 섣부른 평가를 하지 않겠습니다만 참고인으로 어떤 진술을 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경찰 팀원의 편을 든다면 그냥 후자라고 생각해 단념하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한다면 그를 만나볼 것입니다. 연말에 현피를 떠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진실규명을 도왔다면 쉽게 끝나는 문제였는데 왜 굳이 법대로 하라며 제게 목소리를 높였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어쨌든 당신과의 결말이을 보고 싶기에 법적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하필 아버지와 닮은 점이 많아서 아니, 본인과 너무나도 닮은 점이 많아서 대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젊을 시절에는 남들한테 다 퍼주고 부탁하는 것도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시달렸는데 이를 극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완벽주의자였기에 내 잘못을 인정하기가 그토록 어려웠습니다. 그와 대면한다면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 많은데, 어느 부서로 전출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꼭꼭 숨어버렸습니다. 스토커로 오해받을까 두려워 관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물정 모르고 순박하고 착하고 가끔 백일몽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 같습니다. 깊게 파인 목주름으로 보아 현실에서 도피해 책 속으로 빠져들고 학문적 호기심이 대단할 겁니다. 뿐만 아니라 원리원칙을 목숨처럼 지키고 가족보다는 조직이 우선순위인 외향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와이프는 속이 문드러지는데 동료와 친구들과 신선놀음을 하고 오늘을 편안하게 살자는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됩니다. 쥐띠 남자는 사치스럽지 않지만 은근 고집이 있어 가족들에겐 큰소리치고 밖에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사에 성실하고,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이며, 또 머리도 좋아 부족하지 않게 평범한 삶을 살아갑니다. 일인자는 못되어도 넘버 투나 쓰리는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완벽주의자 기준으로는 늘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착하다'는 것이 무죄(innocence)와 동의어는 아닙니다. 유럽에서는 '부자니까 선하다'라는 아이러니한 표현을 씁니다. 한국에서는 "그 사람 어때?"라고 물었을 때 외모가 예쁘거나 아니면 평범하다는 말을 이중적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번주도 타로카드로 시작합니다. 여전사의 카드가 나왔습니다. 주변사람의 소개로 귀인을 만난다고 합니다. "두 성씨의 사람이 한 마음으로 합쳐 도운다"라고 했으니 당신 혼자는 아닌 모양입니다. 고지식하고 듬직하고 무뚝뚝하고 순수한 사람으로 약속은 꼭 지킨다고 합니다. 머릿속을 맴도는 그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의 바운더리가 겹칠 '경우의 수'가 없는데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는 것일까요. 올해는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고 서핑을 즐겨볼까 합니다. 여행이든, 취미로든 만날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것이 운명일 것입니다. 손에 황제카드, 에이스 카드, 스타 카드가 모두 들어왔습니다. 이제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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