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경장: 형님, 대자보 사건 보완수사요구가 떨어졌는데 어떻게 처리할까요?
ICW: 피의자분이 진술서, 진단서, 증인진술서 등 반박 증거들을 검찰에 추가 제출했네요.
S 경장: 나한테는 연락도 하지 않더니 검찰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했네요. 2차 소환이라도 해볼까요?
ICW: 아니요, 대자보에 지문도 안 나왔고 압수수색으로 기지국 기록도 안 나왔는데 또 불렀다가는 곤란해집니다. 미제사건으로 남기지 않으려면 CCTV 속 인물이 피의자와 동일인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서울청 과학수사과에 영상분석을 보내봅시다. 피의자 주민등록등본 사진 있죠?
S 경장: 네, 있습니다. 그럼 고소인이 몰래 찍어 제출한 단체 사진은 어떻게 할까요?
ICW: CCTV에 찍힌 인상착의 하고 캡처해서 같이 보내세요. 다른 큰 사건도 밀렸는데 얼른 마무리하죠.
S 경장: 그런데 하필 범인이 복면을 써서 CCTV에 인상착의라 할 이미지가 없어요. 직접증거는 없고 참고인들 전화 진술이 전부인데 이걸로 증거능력이 있을까요?
ICW: 하 경위님 피의자조사 때 권리고지하러 잠깐 들어갔었는데 피의자분 인상이 어땠나요?
경위: 이른 아침인데 미용실 다녀오셨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셨고요, 사건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용의 선상에 올랐다는 사실에 아주 불쾌해하셨고 공부만 하신 분 같던데요. 아무래도 헛다리 짚은 것 같아 찜찜해요. 외국에 오래 계셨는지 한국어 억양이 서툰 것 말고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S 경장: CCTV 하고 생김새가 정말 달랐다니까요. 성형수술이나 가발도 아니면 대리출석인가? 아니라고 펄쩍 뛰는데, 이러다가 모두 참말이면 어쩌죠? 우리한테 맞고소 날아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잘못하다가는 팀장님이 책임지셔야 할 것 같은데...
ICW: 경찰은 송치하면 사건이 끝납니다. 검찰에서 알아서 잘 판단하겠죠.
S 경장: 구연주 씨 알아보니 팀장님하고 대학원 동문이시던데요? 동아시아 전문가로 NHK 방송에도 출연한 적이 있어요. 완전 인텔리이시던데.
ICW: 아... 그래요? 그런 분이 왜 피의자가 된 거죠?
S 경장: 고소인이 지목했어요. 하나같이 나쁘게 말하는데 무슨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 보였어요.
ICW: 안타까운 상황이네요. 일단 과학수사 결과를 기다려봅시다.
보완수사요구가 내려왔지만 CCTV 증거를 확인할 길 없기에 평정심을 유지할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잘하는 게 공부뿐이라 몸 쓰는 자격증을 따기로 했습니다. 빌런에 대적하려면 무기가 필요할 순간이 올 것 같아 수렵면허에 도전했습니다. 7월 필기시험, 9월 실기시험이니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겠군요. 국내외 사격장에 방문한 적이 있고 집중력은 타고난지라 실력도 괜찮았습니다. 이러다가 프로선수로 전직하게 되는 건 아닌지 피곤함이 몰려왔습니다. 수렵면허 1종은 총기 (공기총과 엽총), 2종은 활과 그물 등 기타 도구들을 쓰는 자격을 얻는 시험입니다. 수렵면허이지만 수렵보다는 자연생태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렵장이 열리는 시기에, 정해진 곳에서만 잡을 수 있고요. 유해야생동물만 구별해서 신고한 수량만큼 잡습니다. 또한 포획된 동물에는 태그를 붙여 한 점 한 점 신고해야 합니다. 면허 취득을 위해서는 시력, 색약, 마약 검사가 필수이고 정신과 진단서도 요구됩니다. 아울러 폭행 전과가 있으면 면허취득이 불가합니다. 신체검사를 갔다가 노안으로 교정시력이 모자라 발걸음을 돌리는 어르신도 뵈었습니다. 커피 중독자들은 카페인을 최소 하루 이상 끊어야 좋은 결과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면허 등 모든 면허시험이 그렇지만 관련 법률이 절반을 차지합니다. 나머지는 엽총과 공기총의 작동 원리를 익히는데 이 부분이 복병입니다. 총포사로 총을 사러 달려갈 수도 없고 사격장에서만 총을 잡아보아 기억이 가물가물했지요. 그리고 천연기념물, 유해야생동물,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구분하게 이름과 습성, 생김새를 공부합니다. 필기시험 문제집에는 사진이 아닌 흑백 일러스트로 그림이 나와 있어 일일이 사진 검색을 하면서 동물들을 익혀야만 했습니다. 면허증을 준비하면서 건강검진 진단서로 심신이 건강함을 확인하였고 부단히 단련했습니다. PBT로 치러지는 수렵면허는 CBT로 바로 점수를 확인하는 운전면허, 요트조종면허와 다르게 컴퓨터용 사인펜, 수정테이프, 아날로그시계 등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시험장도 인재개발원이라 오래전 입시를 치르는 듯 긴장감에 감기몸살까지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무사히 합격했습니다. 전문가분들의 추천으로 대한사격연맹에 일반인 선수등록도 했습니다. 사격연습장에서 전설의 명포분들을 뵈니 뿌듯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면허증 (license)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자격증 (certification) 과는 다르게 면허는 해당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관 및 단체에서 합법적인 증명입니다. 운전을 하려거든 실력만으로 안 되고 운전면허 (지방경찰청장 발급)가 있어야만 합니다. 국내에서는 요트조종 (해양경찰청장 발급)나 드론조종 (국토교통부장관 발급)도 마찬가지고요 수렵도 그렇습니다. 반면 자격증은 대외적으로 실력을 공인하는 증서입니다. 취업 시 지원자격 조건으로 명시한 곳도 있습니다. TOEIC, HSK, JLPT, DELF 등 어학이나 정보통신자격증이 대표적인데 자격증 없이 일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국인이 KBS 한국어능력시험이 필요한 경우라면 가산점이나 진학용인데 해당사항이 없다면 굳이 자격증까지 따는 것은 번거롭지요. 변호사는 자격증인데 의사는 면허 (보건복지부장관 발급)로 관리됩니다. 금고이상의 형을 받아서 면허가 취소되면 진료는 불법행위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변호사자격이 취소되더라도 프로보노 (Pro Bono)를 하거나 무료 의견서를 작성하더라도 위법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이 따르는 일에 면허증이 적용됩니다.
경찰조직에도 직급이 있습니다. 피라미드를 생각하면 쉬운데 ‘사법경찰리’인 비간부로는 순경-경장-경사 3단계로 올라갑니다. 장발을 휘날리던 혈기 넘치는 S 경장은 비간부입니다.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 ICW는 ‘사법경찰관’으로 중간 간부에 해당하는 경위-경감-경정에 속하는데 시험으로 승진할 수 있는 직급입니다. 경찰대 출신이라 졸업 후 경위부터 시작한다는 점이 특이하지요. 물론 변호사 경감 특채도 있고, 행정고시 외무고시 출신에 대한 경정 특채도 있습니다. 그리고 총경-경무관-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으로 올라가는 고위 간부는 일반인이 주변에서 마주할 일이 없습니다. 이태원 참사, 버닝썬 게이트 등 큰일이 터졌을 때 뉴스에 나와서 책임지고 옷 벗는 분들입니다. 사기업과는 다르게 경찰 조직은 책임소재가 분명해 놀랐습니다. 담당팀장인 젊은 ICW 경감이 책임을 지고 징계를 받을까 봐 S 경장 고소하기 주저했습니다. 몇 주 고소를 주저하자 "혹시 ICW 경감을 개인적으로 아느냐?"라고 변호사가 묻습니다.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사람이니 엄밀히 지인은 아니지요. 진심 어린 사과와 팀장으로서 책임지고 진실을 밝히는데 협조한다면 용서할 것을, 왜 "법대로 하라"며 끝내 자존심을 세우는 것인지 ICW 경감이 원망스럽습니다.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교만함에 사로잡힌 자라면 수사과오의 결과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의제기-항고-재정신청-헌법소원 등 5년이 걸리더라도 한 번 겨뤄보기로 했습니다. 손해배상청구의 공소시효는 3년이니 시간은 충분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말처럼 수고스럽게 로스쿨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