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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찬귀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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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Mar 11. 2024

피고인의 이익으로

여의도의 건물벽 성모마리아, Copyright 2020. Diligitis. All rights reserved.

 주일에 고해성사를 하면 잘못한 죄가 없어질까요. 교회나 성당이 대형 세탁소도 아니고 매주 인간들의 죄를 사하여 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결백하다고 법이 저절로 지켜주는 것도 아닙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억울한 피의자로 전락하기 일쑤입니다. 유능한 변호사가 필요했습니다. 로펌을 알아보니 착수금 천만 원부터 가볍게 출발합니다. 일단 면담을 잡았습니다. 경력과 프로필을 살펴서 가장 상태가 좋아 보이는 30명의 변호사들과 상담을 해봤습니다. 변호사들은 앞다투어 'Pick me, pick me' 본인을 써달라며 희망을 팔며 굽신거립니다. 이렇게 좋은 선택지가 많으면 저는 선택장애가 있던 터라 고민이 되었습니다. 결과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만으로는 뭔가 부족했습니다.


형사 사건의 저승사자, 그가 왔다


 대학 동문인 박 변호사는 ‘명문공대를 졸업한 크리에이티브한 해결사’라고 자신을 PR 하고 있습니다. 실수로 죄를 지었어도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기소유예를 받아준다고 했습니다. 역시 자본의 힘은 위대합니다. 사람이 키 크고 잘생기고 지적이고 유려한 언변이라면 누구라도 빠져듭니다. 그는 선택지로 두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죄를 인정하면 쉽게 갈 수 있고 양형을 받아내는데 집중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인데 거짓으로 인정하라는 말이냐? 변호사가 되어 진실보다는 돈이 먼저냐?”라고 따져 물으니, 현재로서는 증거목록조차 알 수 없으니 공판까지 기다리든지 입장을 정해 알려달라 합니다. 그의 승률이 100% 였던 이유는 이길 수 없는 사건은 맡지 않는 비겁함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친구라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창 밖으로는 석양이 지고 벽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정장을 입은 변호사들이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고요하고 진중한 분위기 속에서 익숙하게 서로의 표정을 살핍니다. 테이블 위에는 두터운 서류들이 쌓여있고, 그중 연장자인 최 변호사가 서류를 집어 들며 말을 시작합니다.


판사 출신 최 변호사 


"우린 법률의 끝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본 건 뭐였죠? 원칙이었고, 논리였죠. 그 누구보다 우리는 그 논리를 꿰뚫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찰 단계에서 억울하게 송치된 사건이라도, 검찰과 재판에서 우리는 뒤집을 수 있습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변호사들과 연주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천정 샹들리에는 그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습니다.


검사 출신 변 변호사 


"경찰 단계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기소의견으로 송치되었다고 해서 사건이 끝난 게 아니죠. 우리 검찰은 다릅니다. 우리가 이 검찰 단계에서 게임을 바꿀 겁니다. 불기소될 확률, 15%. 그게 우리의 기회입니다."


희끗희끗한 새치가 낯선 최 변호사는 말을 이어갑니다. 그는 동안인 동갑내기 연주의 눈치를 살핍니다.


"그렇지. 그러나 재판에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증거? 우리는 모두를 볼 수 있어. 하지만 승소 확률은? 5%. 그리고 그 5%가 얼마나 힘든 싸움인지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 


경찰출신 하 변호사가 조심스러운 의견을 섞습니다.


 "승소 가능성이 정말 있을까요? 이미 경찰에서 빼박 증거가 다 나왔다고 하는데... 경찰대 인맥을 동원해서 이찬우 선배님과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변 변호사: "경찰 수사? 웃기지 마! 우리는 판결을 이끌어 내는 사람들이야. 잘못된 결정을 무너뜨리고, 그 속에서 법의 빈틈을 찾아내는 거지. 재판에서 무죄 확률이 5%라고? 그렇다면 그 5% 안에 우리가 있어야죠."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변호사들 사이에 결의가 흐릅니다. 연주가 제출한 고소장, 피신조서를 넘기며 다시 한번 사건에 집중하는 그들. 불안과 확신이 교차하는 표정들 속에서, 이들의 다음 단계는 분명합니다. 


최 변호사: "우리는 의뢰인의 편에서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은 법을 집행하고 판례를 만들면서 역사를 써 온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구대표님, 바쁘신 와중에 오셨는데 오늘 저녁이라도 함께 하시죠." 


 변호사들이 각자의 서류철을 덮고 준비를 마쳤습니다. 사무실 밖으로는 유난히 네온사인이 반짝이는데 왠지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통과해 오랫동안 법조계에 몸담은 순혈은 달랐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원칙과 법리에 정통했고, 판례를 머릿속에 꿰고 있으며 법의 구멍을 파고들 수 있는 능력자들이었습니다. 불합리한 경찰 수사단계보다는 검찰이나 재판에서 효과적입니다. 


 반면 경찰대 출신 변호사들은 초기 수사대응에 제법 쓸모가 있습니다. 수사기법과 절차상의 심리를 알고 있기에 조직 전관예우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습니다. 우선 혐의를 벗는 것이 절실했기에 두 부류의 변호사를 고용했습니다. 실력은 기본이고 외모와 화술이 뛰어난 선남선녀를 택했습니다. 덕분에 8개월의 고된 싸움이 힘들지만은 않았습니다. 존재만으로 빛이 나고 힘이 되는 그들이니까요. 창의적인 부분은 GPT에 맡기니 어벤저스팀이 꾸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형사사건에는 성공보수가 따로 없지만 동기부여를 위해 특별보상을 약속했습니다. 무죄를 이끌어 내면 원하는 미술작품도 얹어 주겠다고 말입니다. 평소 클라이언트이자 콧대 높은 변호사들이 깍듯하게 중간 보고도 하며 따뜻한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겸사겸사 아름다운 분들과 함께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In dubio pro reo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제4항에는 위와 같이 피의자 (수사단계) 혹은 피고인 (공판단계)을 위한 '무죄추정의 원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형사소송법에는 ‘죄형법정주의‘, ‘유추해석금지의 원칙’, ‘명확성의 원칙‘ 등이 있지만 막상 수사관과 날을 세우면 수사단계에서 단서를 얻을 수 없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엎질러진 수사이기에 검찰로 송치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킥스 (형사사법포털 https://www.kics.go.kr )에서 송치를 확인하자마자,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면서 증거 탄핵을 시작했습니다. 인권침해와 부실수사를 지적한 강력한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바로 보완수사를 이끌어 냈습니다. 2023년 6월 30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사진행통지서를 통해 S 경장의 팀장 이찬우 경감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 팀이니 '그 나물에 그 밥'이겠거니 편견에 연락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변호사들의 인맥을 동원해서 경찰대 졸업 후 임관부터 지금까지 논문, 장기 해외연수, 인사이동, 언론보도 등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우리는 만난 적 없지만 기자회견 영상과 사진으로 서로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AI로 돌려보니 배우 김병철 혹은 티모시 샬라메가 보입니다. 두 배우의 외모 편차가 너무 크다고요? 저도 고도근시로 안경을 썼던 흑역사가 있지만 라식수술을 하면서 탕웨이 혹은 박신혜를 닮았다는 소리를 가끔 듣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정죄한다는 것이 오만이었을까요. 사회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정치는 필수이니 행정적 제재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AI 변호사의 판례분석은 만족스러웠고 공판에 가더라도 난공불락으로 치밀하게 계획을 짰습니다. 고소인의 무고부터 위계 공무집행방해를 일삼은 참고인들은 일망타진하기로 판을 장기전으로 크게 벌였습니다. 문제는 수사심의에 대한 부분입니다.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데, 대통령령의 수사준칙 법규명령에서는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공부하는 셈 치고 열심히 한 번 해보기로 하지요. 그 후 고소를 하고 1년이 지나면서 배운 지식을 테스트하러 법학적성능력시험까지 치르게 되었습니다. 논리적으로 싸워서 이길 때의 그 짜릿함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트리플보드 (문과-이과-예체능)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에 의한 투명하고 공정한 수사통제와 수사구조개혁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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