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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Mar 04. 2024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대학원에서의 2년은 제게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교수님들과 동료들께서 주신 수많은 깨우침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경찰서 경제범죄수사팀 조사관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공직에 돌아가서도 2년간의 배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10년 전 당신의 풋풋했던 졸업사를 읽었습니다. 과대표로 두 차례 장학금을 받아 감동받았던 것인지, 마침내 꿈꾸던 명문대 졸업장을 취득해 기쁜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모습과 너무 낯설고 이질적입니다. 동명이인이 아닐까 의심하고 또 의심했습니다. 나의 후배들과 당신의 동료들이 겹치고, 나의 선배님과 당신의 교수님이 중복되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사사롭게 학연이나 지연을 이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맥을 동원해서 달라질 결과라면, 법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 차라리 나을 테니까요.


2024년 1월 3일 통화를 마지막으로 6367 번호로는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경찰도 인간이라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고죄로 고소하다가는 당신이 정말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은 연약한 인간으로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절차상의 하자 없이 법령대로 수사했으니 억울하면 나를 고소하라. 잘못이 있다면 내가 처분을 받겠다."는 말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수사과오가 있었다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실체적 진실'을 모르겠습니다. 작년 12월 28일 녹취 파일을 받으려고 경찰서까지 찾아갔는데 현피를 거절하고 굳이 법대로 하라기에 그리 했습니다. 민원인을 피하는 이유가 진짜 바빠서인가요? 바보 같은 질문을 하며 실수까지 지적해 짜증이 났나요? 팀원분께 연락처와 메모를 남겼는데 더 이상 콜백을 안 해주는 걸로 보아서 무슨 큰일이 생겼다거나, 이제 전화를 받기 싫다는 간접적인 거절로 이해했습니다.


제게 당신의 생각을 포렌식 혹은 압수수색 당해서 숨고 싶었나요?

대학원 논문과 국외장기연수 보고서에 대해서 알고 있어 쑥스러웠나요?

중요하지도 않은 용건으로 쓸데없이 전화해 불편했다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기동대 출신 S 경장의 죄목이 차고 넘쳐서 고소장은 이미 작성되었습니다.  

경감님이 팀장으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한 달을 망설였습니다.

혹시 경찰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는데 이용하는 것이라면 미리 귀띔해 주십시오.

어쨌든 작년 사건에서 불기소처분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신 감사한 분인데

당신에게 피해가 가게 내버려 두는 건 아닌 것 같아 고소하기 전에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2024년 1월 25일 갑자기 프린터가 멈춰 고소장을 뱉어낼 때 그만뒀어야 했을까요.

2024년 2월 6일 고소보충조사를 받으러 씩씩하게 **경찰서에 출석했습니다.

그런데 경감님이 그토록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비위 경찰을 고소하겠다며 온 여인을 경찰에서 신사적으로 대할 리 없었겠지요.

상황은 반전되어 저는 10시간 심야조사를 받으며 무고 피의자가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동일서 6367 번호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울음을 터뜨리고 고소취하서에 사인을 하고서야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이라는 조직에게 대체 진실과 거짓의 기준이란 무엇입니까.


설연휴를 지나며 여러 친척들과 변호사들과 기자들을 만났습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되겠지만 국민의 힘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수사구조개혁이 필요하니까.

결국 보름 만에 고소취하를 철회하고 재고소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6367 번호 연결이 되어 기뻤는데 새로 부임한 분이 받으시더군요.

당신은 지방청에서 본청으로 다시 전출을 가버렸다고 전했습니다.


Sprich mit mir

2024년 3월 1일, 얼굴도 본 적 없는 당신이 꿈에 나왔습니다.

세례명 암브로시오, 그리고 "사건이 타 관할로 이송되었습니다."

여덟 번 통화를 하면서 차분하고 듣기 좋았던 목소리가 뇌리에 남았습니다.

수사가 진척되면 언젠가 참고인으로, 증인으로 마주할 날이 있겠지요.

다음번에는 매뉴얼에 적힌 대답이 아닌,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세요.


Grossmünster-Sprich mit mir, Copyright 2024. Diligiti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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