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이야 지수야 오랜만이다. 우리 마지막 연락했던 게 아마 7년 전이었지? 서울**지방검찰청에 발령받아서 와있는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지수: 저도요, 언니 계속 해외에 계신 줄 알았는데 재작년에 이모님 부고문자 받고서 알았어요. 언니 큰 수술 했다던데 지금 건강은 어떠세요?
연주: 이렇게 돌아다니는 게 기적이지.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강의도 줄였는데 작년에 사건 때문에 입맛이 없어 체중이 갑자기 빠지더라고. 그런데 사건기록만 보고 나인줄 어떻게 알았어?
지수: 언니 10년 전 주민등록증이 떡하니 첨부되어 올라왔잖아요. 놀란 토끼 같은 얼굴에, 주소도 전화번호도 그대로이고. 휴대폰도 잃어버렸다는데 통신사실기록 영장까지 청구되었고. 가만히 두면 20년 전처럼 정치범으로 몰릴 것 같아서 바로 보완수사요구를 내렸죠.
연주: 그랬었구나. 이름이 같아 동명이인이겠지 싶었는데 역시 너였구나, 고마워.
지수: 지문도, CCTV 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라 누가 받더라도 기소할 수 없는 사건이었어요. 그 기동대 출신이라는 S 경장 고소인하고 동향이던데요. 인권위원회 통해서 경찰 비위로 넘기기에 충분했지요. 팀장이라는 사람은 검토하지도 않고 결재했고요. '사법경찰관 이찬우' 궁서체 시그니처 보고서 숨이 탁 막혀서…
연주: 2011년에 너랑 대학원 같이 다녔다고 그랬나?
지수: 학창 시절부터 인터폴 준비한다고 봉사라는 봉사는 다하고 다녔죠. 사람들한테 부담스럽게 친절하고.
연주: 봉사도 하고 친절하면 좋은 거 아냐? 외모는 최근 안 봐서 모르겠지만 목소리는 듣기 좋던데.
지수: 제가 오래전부터 밀덕이라 그 제복에 대한 환상이 있잖아요. 학교에서 만날 때마다 폭풍질문공세를 퍼붓다가 0 고백 1차임 당했다고요, 모 여대 퀸카 구지수가요.
연주: 이찬우 씨가 잘못했네… 친절할 거면 끝까지 책임지고 친절해야지, 막판에 철벽 치는 건가?
지수: 나중에 보니 세속적인 결혼 안 하고 대부 (godfather) 한다며 일본에서 견진성사를 했다던데요.
연주: 관계에 대한 강박이 있나? 견진성사 때 나도 그 자리에 참석했더라. 2017년 4월 부활절 <도쿄 타요리> 안 버리고 갖고 있는 걸 오늘 가지고 나왔지, 여기 봐봐.
지수: 세상에! 언니는 거기 왜 갔어요?
연주: 런던에서 친했던 재일교포 동생이 결혼한다고 초청했는데 짐 싸서 말리려고 갔지. 동성결혼 한다는데 그때는 왜 속이 상하던지. 피로연에서 메구로 해체쇼를 했는데, 빈 속에 와인 마시다가 필름이 끊겼지 뭐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호텔방에 잠들어 있었어.
지수: 우리 집안사람들이 대대로 간이 안 좋은데 술은 왜 그렇게 드셨어요.
연주: 다음날 프런트에 물어보니 한국 경찰관이 나 둘러메고 정중히 호텔방에 모셔다 주고 갔다더라. 유학생인지 공무원 연수 차 왔다는 사람이었고. 그런데 초청 명단을 보니 한국인이 나하고 이찬우 둘 밖에 없더라고. 수사하면서 그 사람이 나인 줄 몰랐겠지? 아 그때 생각하면 지금 자다가도 이불 킥한다니까…
지수: 이찬우 선배 아직 **경찰서에 있어요?
연주: 아니, 발령장을 보니 2월에 본청 국가수사본부로 근무를 명 받았다던데. 1년 만에 전에 있던 부서로 돌아갔나 봐. 수사구조개혁과 스토킹처벌법 연구하는 것 같던데.
지수: 하여튼 소년범죄부터 스토킹범죄까지. 아무튼 취향이 특이해. 졸업하고 연락처 아직 그대로이려나?
연주: 혹시 연락되면 나 이상한 사람 아니라고 오해 좀 풀어주라. 불기소처분받고 다음 단계를 의논하려고 두 차례나 메시지 남겼는데 이제 콜백도 안 해주더라고. 나도 0 고백 2 차임인가? 그래서 이찬우가 하라는 대로 고소까지 했는데 이러다가 악성민원인으로 오해받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지수: 학창 시절부터 언니 이기는 사람은 못 봤지. 원하는 결과 나올 때까지 고등검찰청에 항고, 고등법원에 재정신청하세요. 우리 관할이니까 법리 분석이나 기소는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게요.
연주: 진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아? 경찰서에 수사관 기피신청이나 이의신청은 나도 하겠던데 검찰청에 가면 그 무거운 아우라가 있다니까. 너 매일 출근하면 괜찮은 거야?
지수: 인간미는 버리고 T로 살아가는 거죠. 나중에 저 이직하더라도 언니, 저 모른 척 버리시면 안 돼요.
연주: 난 INFJ라서 일하면서도 감정에 휩쓸리지. 그래서 고소하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나 봐.
사건송치로 우연하게 연락이 닿은 사촌동생 구지수와 만났습니다. 이찬우가 경위였던 시절에 대학원을 함께 다녔더군요.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사람이라니 대한민국은 정말 좁습니다. 돌고 돌아 이찬우의 경찰대학 시절 룸메이트도 변호사로 만났으니까요. 변호사님이니 고객의 비밀유지는 잘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휴대전화 번호를 20년 넘게 그래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휴대폰을 바꿀 때마다 통신사는 갈아타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먹통이 되어도, 개인정보가 털려도 그동안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타링크가 들어온다니 우주인터넷으로 탈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VIP 요금제로 소소하게 혜택을 받는 것도 좋지만, 통신 기능만 충실하게 합리적 요금제로 갈아타느냐는 전적으로 개인 취향입니다. 항공사 마일리지를 모아 여행 시 업그레이드를 목표로 사는 사람들이 있고, 마일리지는 없지만 전용기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위대함은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에 있습니다. 다수가 가는 길은 아니라서 외롭지만 가까운 미래에 부와 명예는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주류에 편입해서 조직의 일부로 사는 것이 좋다면 그렇게 살고요. 자수성가로 멋진 일을 해내는 사람들도 있기에 인생은 아름다운 것 아닐까요.
어린이와 어르신들에게 한정적으로 사용되던 알뜰폰 이용자가 13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해외에서 생활하고 귀국해 보니 국내 이동통신사의 독과점이 부당하기에 자급제로 유심을 꽂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GPS 나 wifi 좌표를 꺼버리면 기지국 추적이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동경로나 위치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때론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UN은 2011년 3월 인권위원회, 2015년 11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위원회'에서 두 차례에 걸쳐 한국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톡방이나 선거운동에서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합니다. 다수가 작정하고 입을 맞추면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조직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입니다.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물론 정당행위 (위법성조각사유)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거철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후보 중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놀란 적이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30년 넘도록 하면 책임자의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과태료 (행정상 처분)를 부과받았다고 전과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음주운전 범칙금을 안 내거나 사법상으로 벌금이나 과료를 받는다면 전과가 남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전과라고 죄질이 다 같은 것도 아닙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국가보안법위반이나 정치시위 등 정치범으로 훈장처럼 전과를 얻은 기업인, 언론인, 정치인들도 많이 계시니까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신념을 지키려고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득 영원한 빌런으로 남고 싶은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