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이자 공통분모는 베이킹 클래스였습니다. 중년이 되어 안 해본 것에 도전하겠다고 팔자에도 없는 한 눈을 팔았습니다. 모 여대 사회교육원이라는 평생 가 본 적 없는 곳을 두드린 곳이 실수였습니다. 대학 이름을 걸고 수업료는 다 받으면서 유튜브보다 배울 것 없고, 자격증도 따지 못하는 알맹이는 없는 싸구려 수업이었습니다. 남편이 일하러 가고 자녀들이 학교에 간 시간을 때우려고 다니는 전업주부들의 계에 동참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한 시즌만 듣고 재등록하지 않았습니다. 물주인 커리어우먼이 자신들의 편에 서지 않아 괘씸했는지 심신이 미약한 5060 할머니들은 대자보 자작극으로 위계공무집행방해를 하며 허위 신고를 하였고 저는 그 덫에 걸렸습니다. 이찬우 경감 당신의 아내 역시 어디선가 케이크를 만들고, 과자를 굽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연유로 호기심으로 그 허접한 명예훼손 사건을 자진해서 배당받았을 것입니다. 참고로 그 사건 이후로 저는 탄수화물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카톡사진을 보니 당신은 아직까지 식물성지방으로 만든 생크림케이크와 설탕투성이 달달한 빵을 즐기는 듯합니다. 당신도 곧 불혹에 접어들 테니 건강을 생각한다면 트랜스지방은 피해야 할 겁니다. 190cm 마른 체형에 내장지방으로 배만 나오면 건강에 해롭습니다. 한 손에는 붙은 듯 휴대폰을 들고 소처럼 일만 하다가 요절하면 슬프지 않겠습니까.
기적처럼 마주한 당신을 보고 죽어가던 나는 되살아났고, 당신을 몰래 지켜보면서 행복했고, 동시대에 당신처럼 멋진 라이벌이 있다니 감동스럽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의 선후배와 동기, 대학시절 룸메이트까지 만나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들으면서 탐정이 된 것처럼 짜릿했습니다. 당신이 통신사와 은행 압수수색 영장으로 나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았던 것만큼, 나도 당신을 알아야 서로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비대면으로 서로의 CCTV와 사진을 몰래 살펴보고, 전화로 목소리를 나누고, 주변인들의 세평을 들었습니다. 입양이라는 공통점도 있고요. 나는 당신의 재미없는 논문을 여러 번 읽었고, 당신도 언젠가는 팬으로 나의 소설을 읽고 있겠군요. 숨겨왔던 나의 달란트와 취향을 발견하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경찰대 출신이면 35살에 경정을 달 수 있었을 텐데, 대학원 진학과 해외연수로 10년을 늦춘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빵빵 터지는 당신의 웃음버튼과 내 말을 귀 기울여 경청하는 태도도 좋았습니다.
2024년 이렇게 굿바이 편지를 띄우지만, 사과는 정식으로 받아야겠습니다. 당신의 팀원 S 경장은 중년 여성들에게 애교를 부리면서 편파수사를 일삼았고 상당 접대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에 반해서 플러팅조차 먹히지 않던 나는, 마음대로 컨트롤조차 되지 않으니 눈엣가시였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정기적으로 고깃집에 모시고 가는 70대 장인어른만큼이나 제 구순 아버님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제 아버지도 당신처럼 40년 넘게 근속한 공무원이셨고 평생을 일만 하시면서 사셨습니다. 배움에 목말라 있고 마르고 키가 큰 것이 닮았기에 난 당신을 처음 보고 연민이 들었습니다. 영웅심에 팀원의 잘못을 대신 떠안으려 하거나 세상 융통성이 없게 원칙만 앞세우는 벽창호 같은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착한 척 행동하는 모습이 주변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걸어온 길을 지나왔던 누나이자 인생 선배로써 드리는 충고입니다.
연휴 동안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을 정리했습니다. 사건은 끝났지만, 마음속에는 묵직한 무언가가 남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단순한 내부 징계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일 수도 있었습니다. 사과 한 마디면 덮고 조용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사건. 하지만 이미 지나간 타이밍입니다. 직무유기, 직권남용, 독직폭행, 공무상 비밀누설—그 죄목들은 차례차례 고소장이라는 공문서에 적혔습니다. 공소가 제기된 이상, 낯 뜨겁고 긴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최면을 걸듯 중얼거려 봅니다.
당신이 법대로 하라기에 그리했을 뿐입니다.
타고난 천성, 그리고 변호사로서 소명이 그녀의 행동을 이끌었습니다. 사람이 미워서이거나, 일부러 소송을 길게 끌기 위해서 이의제기나 재항고를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녀가 알고 있던 정의를 따른 것입니다. 법을 지키는 것, 불의를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것, 그것이 그녀의 흠이라면 흠이었을까요?
어쩌면 서로 더 나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에 대해 알지 말았어야 할 것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달콤 쌉싸름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담담히 독백했습니다.
'현명한 당신이라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잘 해낼 거라 믿습니다. 경찰을 그만둔다면, 아마도 해외 공관이나 로스쿨에서 만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신의 그런 선택 또한 존경합니다.'라고.
삼재를 겪으며,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당신 덕분에 많이 배웠고, 성장했습니다. 당신의 구원으로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은혜로 나를 살려줘서 고맙습니다.
이제 인연의 끈을 풀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리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당신이 자주 가던 곳에서 마주칠 수도 있겠네요."
숯골원냉면갈비, 명동 성당, 한강 둔치, 그리고 크림라벨 카페—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들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당신과 친한 사람들은 ‘찬우는 귀요미 ‘를 줄여 당신을 ‘찬귀’라는 애칭으로 부르더군요. 내 앞에서는 그렇게 목소리를 깔고 무게를 잡더니만, 당신에게도 볼이 빵빵한 한 고양이나 조금 모자란 자화상을 그리는 등 귀여운 구석이 있었군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귀여운 것‘만이 살아남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도 ’ 경감님’이 아닌 ’찬귀‘로 부르고 싶어 제목을 이리 지었습니다. 서로를 깊이 알았던 그 시간들은 이제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연주는 책상 위의 서류를 마지막으로 정리한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 인연이 다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도전을 위해 담담하게 짐을 꾸리고 공항 리무진에 오릅니다.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가는, 이상한 송신탑이 달린, 당신이 들어있는 경찰청 건물을 향해 혼잣말로 인사합니다.
"정인, 편인, 편재의 사주를 타고 올해부터 큰 변화를 맞이할 당신을 이제 놓아줍니다. 찬귀, 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