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삼재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29살 중고 인턴 직원이 회사에서 기술을 훔쳐 자신의 것인 양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시도가 포착되었습니다. 대표이자 기획과 아이디어의 기안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4월 25일 법의 날을 맞아서 법의 본때를 보여주려고 그녀를 고소했습니다. 어찌 그리도 질투심이 많은지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서 말 한마디를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유기화학을 전공하고 5년 차 개발자로 둔갑한 청년인데, 성격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 프리랜서로 스타트업을 전전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슈퍼 빌런이 일했다는 회사 두 곳의 대표가 후배라서 그녀에 대한 평판조사를 했습니다. MBTI가 E 임에도 히키코모리인지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있는지 얼굴을 드러내는 자리는 극도로 삼간다며 재택으로만 일을 원해서 그렇게 해왔다고 했습니다. 저도 하루 동안 고민을 하다 무작정 감싸주는 것은 어른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그녀에게 무엇이 틀린 것인지 뼈저리게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고소장 접수를 위해 직원들과 구체적인 증거관계와 혐의를 따져 적어 내려갔습니다.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회사 업무에 차질을 주었으며, 저작권 침해, 강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 다양한 죄목들이 GPTs에 걸려 올라왔습니다. 작년에 구축해 놓은 솔루션 덕분에 고소장을 조목조목 작성하는 데에 하루도 채 결리지 않았습니다. 나를 자기 수준으로 만만하게 본 것인지, 원래 빌런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4월 13일부터 보름을 지켜보았는데 이렇게 심각하다니 오히려 일찌감치 사건이 터진 게 나은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전화번호, 주소도 알고 해외로 도피할 처지는 못되니 뛰어봤자 서울입니다. 고소장은 관할 경찰서에 제출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몇 달 전 나의 사건을 담당했던 움파룸파 수사관이 서울청으로 갈 거라며 큰소리치더니 ㅇㅇ 경찰서로 되돌아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국민신문고에 접수한 청문감사요청과 수사심의가 인용된 것일까요. 경찰서에 가는 길은 무척이나 긴장되는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모든 것들이 순조롭고 편안했습니다. 드디어 '고소의 여왕'이 되는 것일까요.
지킬수록 기분 좋은 기본
-윤형주 작곡 및 작사
법은 어렵지 않아요 법은 불편하지도 않아요
법은 우릴 도와주어요 법은 우리를 지켜주어요
살기 좋은 세상은 법이 살아있는 세상 우리 모두 법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행복한 이 세상은 법이 지켜지는 세상 작은 것을 지켜도 느껴지는 큰 보람
기본이 세워지는 기분 좋은 세상 기본이 지켜지는 기분 좋은 세상
자 이제 시작해요 기분 좋은 기본
우리 모두 다 지킬수록 기분 좋은 기본
마침 뉴스에서는 하이브-민희진 사태가 터져 법조인들이 사건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합니다. 20여 년 경력자가 그랬더라면 논쟁할 거리라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부트캠프 출신 5년 차로 코딩도 잘 못하는 입사 동기들과 나쁜 짓이나 모의한다는 것 자체가 괘씸했습니다. 다음 주 고소인 조사를 받으면서 그녀의 노트북과 휴대폰 등 거주지 압수수색과 포렌식을 요청할 예정입니다. 그녀가 저지른 죄목들이 반의사불벌죄도 아니고 비친고죄도 아니라서 설령 합의를 하더라도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네요. 클라우드 접속 로그, CCTV, 그녀와의 채팅 및 대화 내역 등을 증거자료로 제출했습니다. 처음 이면 당황스러웠겠지만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내가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보입니다. 올해 7월에 LEET 시험을 볼 예정인데 로스쿨까지 달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재벌이나 연예인, 정치인들처럼 일반인도 AI 변호인을 배석하고 어려움 없이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국민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어렵거나 불편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일상 속 빌런을 만나더라도 피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경감 이찬우에 대한 고소장도 추가 제출했습니다. 뒤늦게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해 주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이는 수사과오를 덮기 위해서 '공무상 비밀누설'이라는 새로운 범죄행위일 뿐입니다. 애초에 저는 모든 사건을 덮고 인간적으로 지나가고 싶었습니다. 하필이면 고소를 담당한 노장 수사관이 특진에 눈이 먼 빌런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소장을 보니, 우리 연주 씨가 나하고 동갑이더라고. 그래서 특별하게 한 말씀드릴게. 그 팀장이라는 경감 이찬우 자료, 있으면 검찰에서 내지 말고 나한테 직접 줘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이런 작은 사건으로는 송치가 힘들어요. 경찰관 여러 명을 묶어 고소하면 모를까…”
그는 말끝을 흐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작년 사건 CCTV 증거 열람 못한다고 무척 궁금해하셨죠? 내 권한으로 특별히 복사해 놓았으니, 주말에 식사 자리 하나 마련해 주시면 전해드릴게요.”
그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친절과 비밀스러운 공감이 섞여 있었습니다. 연주는 그의 제안에 놀라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고소건에 이찬우 당신을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동일 사건이니, 수사 단계에서 바로 병합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노장 수사관과는 따로 마주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어딘지 불길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악함이 잔뜩 깃들어 있는 듯했습니다. 괜히 CCTV를 받으러 나가다가 더 큰 죄에 얽힐까 두려워, 추가 연락을 그만두고 선을 그어버렸습니다.
수사관이 복수를 한 것인지 결국 불송치를 해버리는 바람에 이의제기를 하기는 했지만, 나는 고소를 했지만 당신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느낀 감정은 복잡했고, 한 톨의 원망도 내 마음속에 자리 잡지 않았습니다. 혹시 나중에 법정에서 우리가 마주하더라도, 나를 원망하지는 말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유선상에서 “법대로 하라!”라고 외치던 그 외침을 듣고, 고소를 안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음속 깊이 '당신이 최종 빌런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심 들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원하는 것이, 사수로서 팀원의 실수를 감싸려는 것이든, 수사 과정에서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든, MZ 세대의 도전은 나에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이미 베이비부머인 당신의 부모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성장해 온 나는, 자녀들과의 사이가 좋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세대 간의 갈등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어져만 갔습니다. 그 속에서 여전히 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를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