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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앞에서 울어버렸다

이 날의 사건이 어긋나는 관계의 시초가 될 줄이야

by 민트러버

제주도로 미니신혼여행을 다녀오고 타협이 안 되는 인간과 말도 안 되는 일들로 격하게 싸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가 나 위에서 군림하려는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이 그때부터도 나왔던 것 같다.


여행에 다녀와서 음식물 변기에 버리기, 싱크대 개수구에 침 뱉기 외에 충격받고 싸웠던 것들이 있다.




결혼 전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자취를 해본 적이 없는 여자들 대부분은 '살림'에 대해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이상하게 그는 '요리'에 집착했다.

요리라고 해본 것은 알리오올리오 파스타, 라면 끓이기 이 정도였다.

사실 부끄럽지만 밥도 해본 적이 없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다녔었다.

(결혼하고 나서 내가 스스로 요리를 하다 보니 얼마나 엄마의 수고와 희생이 사랑이었는지, 요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20년 넘게 자취를 했으니 당연히 나보다 살림이나 요리는 잘했다. 나는 요리를 잘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는 혼자 살았다 보니 본인이 만든 요리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요리만큼은 아내가 해주는 밥을 매일 먹고 싶은 게 로망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보고 직장 다 그만두고 와도 된다고 한 것인가, 와서 따뜻한 밥 차려주는 로망을 원했던 것인가'


결혼 전에도 이야기는 했지만, 매일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이니 상대가 나의 부족한 부분을 같이 도와주기를 바랐다.

대신에 내가 잘하는 영역들을 하고 싶었다.

"나는 '요리'가 70% 정도만큼이나 부담이 돼!"

이렇게 이야기하면 보통 정상적인 남자라면

"그러면 내가 요리를 더 도와줄게, 네가 이 부분을 더 하는 게 어떻겠어?"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타협이 없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왜 하기 전부터 걱정하냐, 일단 해봐. 00 이는 하기 전부터 걱정이 앞서서 그런 거다. 나의 결혼의 조건은 이것이었어. 너도 결혼 전에 부족하지만 노력할 수 있어라고 해서 한 거야."


"결혼 조건이 어딨어? 요리 못한다 했으면 결혼 안 해?"


결혼 전에 한 번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기가 처음 소개팅할 때 살림도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했으면 다시 한 번 관계에 대해 고민했을 거라고 미친 소리를 지껄인 적이 있었다.

아니 무슨 메이드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을 뿐이다.


"내가 요리가 너무 어려우면 어떡해?"


"만약 요리 어려우면 각자 따로 밥 먹으면 되지."


너무 서운함이 몰려왔다.


'각자 따로 먹자'


결혼한 지 일주일도 안된 아내한테 그게 할 말인가

이때 나왔던 '각자 따로'는 이후로 더 심해졌다.


"난 요리만큼은 결혼에 대한 로망이야. 이거 버리고 싶지 않아."


끝까지 '결혼에 대한 로망' 이거 버리고 싶지 않다고 한다.

똥고집이다. 본인이 원하는 것은 계속 푸시(push)했다.


"난 그런 사람 아니야. 그럼 다른 여자 만나질 그랬어!"


서운함과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듯한 화가 올라와서 이렇게 말이 나왔다.

내가 원하는 로망 '아침에 커피 내려주는 것'은 1번인가 해주고 해준 적 없다.

결국 그날 이후로 나는 요리를 하게 되었고, 그 인간이 원하는 대로 맞춰주기로 했다.

하지만 '각자 따로 하자'라는 말은 나에게 서운함과 충격적이었다.

부부가 각자면 왜 결혼을 했던 걸까.


그 뒤로 그의 입에서 나온 '각자 따로'는 생활 영역 대부분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병원비 각자 내자, 다 큰 성인인데 자동차 내 거 몰지 말고 네가 일해서 벌어서 중고차사서 몰아,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쓰다 보니 다시 그때 열받았던 감정이 올라온다.


결국 내가 했던 요리들. 알고보니 요리왕이었다는 것이 새로운 사실

그리고 여행 다녀온 다음 주일(일요일)에 서울에 갔다. 한 달 동안은 아직 기존에 섬기던 교회에서 반주를 하고 있었다. 교회에 가니 너무나도 마음이 행복했다. 따뜻한 어른들과 청년들, 신혼은 어떠냐, 동탄새댁 환영한다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예배가 다 끝나고, 시간이 남아서 부모님께 연락을 하고 친정에 갔다. 매일 보던 부모님을 일주일 만에 보게 되니 너무 좋았다.


엄마는 "아무런 연락이 없길래 무소식이 희소식인가 보다 했어"라고 하신다.

식탁에 앉아서 부모님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말에 나도 모르게 쌓였던 모든 것들이 터져버렸다.

결혼하면 독립되어야 한다는데 아직 정신적으로는 독립되지 못한 딸이었나 보다.


"엄마, 아빠. 나 너무 힘들어. 음식물 변기에 버리는 것도 아무리 말해도 안 고쳐지고 무슨 말만 하면 각자 따로 하자하고 너무 낯설고 외롭고 힘들어." 눈물이 너무 많이 쏟아졌다. 부모님 앞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그에게 보낸 장문의 문자가 그의 쓴 뿌리를 미친 듯이 올라오게 한 결정적인 날이기도 했다.


'오빠 나 너무 괴로워. 오늘 예배 끝나고 친정에 왔는데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 할 것 같아. 그동안 너무 힘들었나 봐...'

하면서 장문으로 결혼해서 일주일 동안 무엇이 힘들었는지 써서 보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답이 왔다.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자기도 지금 너무 충격적이다...'라고 하면서 답이 왔다.


전화도 안 온다. 이상하다.

부모님은 오늘 여기서 자지 말고, 동탄으로 가라고 하셨다. 자면 안 될 것 같다고 하신다.

결국 내가 전화해서 지금 동탄으로 가겠다고 해서 시간에 맞춰 차로 데리러 나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결국 그날 밤 동탄집으로 다시 갔다.


그는 내가 했던 행동이 너무 충격이라고 했다.

'너무 충격이어서 지금 불안하다. 또 나가면 그때는 관계 서로 끝내자고 생각할 정도로 충격이었다. 서로 안에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 내가 했던 집에 간 행동이 본인에게는 너무 충격이다. 네가 또 나가면 어떡할 거냐, 내 마음에 불안이 들어왔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음식물쓰레기 변기에 버리는 것'은 여전히 전혀! 타협이 안되었다.

그는 계속 '서로 의견이 다른 게 있는 것이지, 모든 것이 다 오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라며 끝까지 우겼다.

(이것 때문에 말이 너무 안 통하는 사람 같아서 집에 가서 자고 오겠다고 한 건데..)


결국 이 날의 사건으로 인해 그는 3살 때 생모가 집을 나갔던 기억의 쓴 뿌리가 올라왔고, 결국 나도 떠나가겠지라는 거짓 프레임에 씌었다. 그래서 나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나를 떠나도록 밀어내며 매정하게 대하는 일의 시초가 되었다. 관계회복이 아닌 관계단절로 가는 일의 시초였다.


내가 뭐가 그렇게 잘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날의 일을 시작으로 '각자 따로'라는 말이 더 심해지고, 심지어 혼인신고도 지금은 자기는 할 수 없다면서 미친 소리를 내뱉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살림도 하나하나 모든 것을 다 간섭한다. 숨 막혀 미치겠다.

마트 가서 같이 장을 보면 옆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난 음식물 남기는 것 싫어하니까, 생각하면서 사면 좋겠어."

"왜 이 가격에 이게 더 싼데, 이거 사면되지."


맡겼는데 왜 자꾸 이야기하냐고 하면

"나는 내 의견을 이야기한 거야."


나르시시스트.

자기 말이 다 옳다.

아니면 '각자 따로'


나는 왜 결혼을 한지 일주일, 열흘 만에 이런 일들을 통째로 겪어야만 하는 건지 원통하고 눈물이 날 뿐이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 결혼 생활이다. 다들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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