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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Jun 29. 2024

오컬트와 오타쿠의 세계관  '두 세계의 공존'

아침놀에서 오컬트적 예술로 다시 오타쿠적인 세계로....


오컬트적인 감성이 어떤 하나의 프리즘(그 자신의 관점)을 통과하면 정재(결이 드러나는)되어 나타나는 것 같다. 그렇게 그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는가 보다. 그 세계가 움직이는 힘은 원초적인 힘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듯이 보이니, 그것이 그 자신의 신체도구로 감지하는 세계의 정서라고 보인다.


오컬트적인 예술 형태를 보면 지극히 오타쿠적인 몰입이 있다. 예컨대 어떤 뮤지션의 음악은 각각의 음악들이지만 하나로 모아 보면 그것은 모두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정서에 기반하여 보면 오타쿠 역시 오컬트적이다. 차이점은 정신성인가 사물성인가?이다. 오타쿠의 의미는 일본에서 '당신의 집'을 의미한다고 하며, 특정한 분야에 꽂힌 사람들을 가리키며, 부정적으로는 비사교성과 비사회성이며, 긍정적으로는 취미와 취향에 따른 미집단이다.


안예은과 김정호의 음악을 들어보면 음악을 만든 그 자체에 오타쿠적인 몰입의 흔적들이 있다.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물 오타쿠 역시 마찬가지다. 형태적으로는 다양할지라도 그 안에는 하나로 통일되는 어떤 세계가 있다.


감성의 표현으로서의 음악이나 그림과 조각 등의 생산물과 그러한 생산물을 수집하여 컬렉션화 시키는 오타쿠적인 취향은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오컬트적인 비물질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창작과 이미 현실화된 물질의 세계를 통하여 그 자신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오타쿠의 취향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유사성에서 보면, 오타쿠 역시 하나의 가상 세계를 갖고 있으며, 그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인다. 오타쿠 역시 오컬트적인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지도.


이러한 면에서 보자면, 오타쿠의 부정성을 긍정화로 유도하려면 예술적인 창작과 연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과도한 수집벽 역시 오타구적인 것이라고 보인다. 단지, 오컬트와 오타쿠라는 용어의 어감만 비슷한 게 아니라, 실제로도 유사성이 있다고 보인다.


인간의 감정이 만드는 세계는 오컬트로 비롯되는 공포에 복종하면서 그리고 대항하면서 형성된 것이지만, 그 세계는 어찌 되었든 '하나의 세계'이자 '하나의 방'일 수도 있다. 그러니 그곳이 진짜 그 자신의 집일 것이다. 그 세계가 더 편안하니까 그 세계에 머무려는 것이 오타쿠의 세계관일 것이다. 예술적 세계관이 취향의 시대가 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적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 형태가 오타쿠적 세계관일 것이다. 물론 일본 사회 형태가 이 오타쿠 세계관을 형성하기에 더 적합한 사회였기에 더 두드러졌다고 보인다.


인간은 모두 그 자신의 집을 원한다. 그러한 것은 '세계'로도 연결된다. 이러한 세계가 근원과 연결되는 힘이 강할수록 더 본능적인 힘이 작동한다고 보인다. 그러면 신체가 그것을 감당해야 하므로, 신체가 고통스럽다. 신체의 고통은 곧 정신적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신체는 마음일 수도 있다. 이것을 해소하려면 그 자신의 신체를 도구화 또는 무기화해야 한다. 이것이 예술적 형태로 가면, 신체는 하나의 센서가 되는 것이다. 이 센서를 예리하게 또는 예민하게 갈고닦는 것에서 예술의 형태가 나타난다. 그러자면 그 과정은 항상 신체(정신과 마음 포함)가 고통스럽다.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 세계에 머물기만 한다면, 현실은 버리는 것이 되므로 그 신체는 점점 약화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니 갑자기 영화 '아바타'가 스친다.


여하튼! 인간의 삶의 집적 방식은 어느 정도는 모두 오타쿠적인 방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오컬트적인(그 자신의 내면적 환경) 것과 더 결합하면 그 자신의 세계를 통하여 또 다른 삶의 형태를 만든다. 누군가는 음악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무엇을 만들고, 누군가는 모으고, 누군가는 다시 팔고 이러한 생태계가 형성된다.


오늘의 나는 그 자신의 오타쿠적인 것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바로 있는 그곳을 둘러보면 그것이 그 자신을 만들었다. 어떠한 행위의 몰입은 바로 오타쿠적이며, 그 몰입과 연결되는 세계는 오컬트적인 세계다. 이 두 세계의 연결이 두려우면 공포이고, 편안하면 관조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세계가 다시 만들어지면 그것이 바로 그 자신의 정서이며 영혼이다. 이렇게 세계를 이원화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며, 이 두 세계를 통일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바로 표현이며, 그 자신의 창작이며, 그 자신의 세계다. 이 두 세계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방식이 바로 초월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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