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설득할 수 없는 범주가 있다
이 범주는 넘지 않는 게 좋다
할 수 있는 건, 수용이었다
수용은 자기 안에서 수렴된다
이해했다고 하여 서로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해한다는 그것뿐이다
그 이해를 통하여 서로 적대하지 않게 되는
그것만으로도 자기 세상은 넓어진다
설득할 수 없는 것은 설득할 필요가 없다
설득으로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수용되어 자기 안의 수렴을 거쳐 자기 안이 넓어졌기에
그 공간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뿐이다
공간을 공유하다 보면 때로는 넘나들기도 한다
그 교차지점에서 설득당하지 않더라도
선택을 해야 할 선택지가 자기 선택지에 없는 경우라면
인간은 그 교차점에서
강요된 선택을 하거나 그 교차지점을 빠져나오게 된다
많은 교차지점을 가지고 있는 자가
우연의 확률이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득되는 일은 그럼에도 없다
진정한 우연은 자신이 가는 길 위에서
우연하게 같은 길을 만나서 합류하는
경우가 가장 큰 우연의 확률을 높일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설득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납득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존엄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선택에 의해 자기 길을 가는 존재이며
혹여 설득당한 듯 보일지라도 그건 자기 선택이다
겉으로는 ‘설득당했다’라고 말할지라도 그 속은 납득이다
인간을 설득하려 하는 것은 무모하다
인간은 납득할 수 있도록 흘러야 한다
그럴 때 편안해진다
'저 인간이 설득당했다' 이 말은 그 인간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인간이 수도 없이 무슨 말을 한다면, 납득, 즉 이해를 돕기 위함이지 설득하려 함은 아니다. 납득됨은 설득된 게 아니다. 수용할 뿐이고 수렴을 거쳐 자기 이해를 키우는 것뿐이다. 인간은 설득되지 않는다. 설득되지 않은 한 인간이 이미 같은 공간에 있다면, 같은 방향성을 우연하게 조우한 것뿐이다. 그때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 공간 안에 서로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공간이 두 사람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대화를 한다. 지구가 인간‘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말을 한다. 아니라면? 왜 굳이 말을 하겠는가! 설득당하지 않는 인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