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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Sep 13. 2023

나머지 기억들

통합되고도 남는 흔적




인생에서 애처로움이란 무엇일까

문득 같은 자리에서 매년 같은 시기에 보는 달빛 아래에서

그 어느 때에 두고 온 나를 본다

늘 그 자리들에 있는 기억들에 때로는 소스라친다

나를 거기에 남겨 두고 나는 길을 떠났다

오늘 또 나는 나를 여기에 두고 길을 나서겠지

몇 년 후 십 년 후...

나는 또 같은 시기에 달빛을 보며 오늘 남겨 둔 나를 만나겠지

각인된 자기의 모습은 늘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기 만난다

거기엔 남겨 두고 떠난 내 모습이 그대로 있다

인생의 애처로움과 서러움은 각 시기마다 그때의 나를 남겨 놓고 떠나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오늘 나를 남겨 놓고 떠난 나는 언젠가 또 오늘 나를 문득 조우하게 되겠지

인생의 구비마다 남겨진 내가 있다

삶에서 그때의 자기를 조우하는 순간들을 통해서 나는 나를 만난다

기억에 각인된 나들의 총체가 나이다

오늘 달빛에 의해 또다시 남겨질 나

럴수록 나는 희미해진다

여기에 나들을 통합할수록 나의 전체는 흐릿해진다 삶이란 머물지 못하고 움직이는 것이라서 나는 또 한걸음 내디여야 하는 것

늘 남겨진 내가 있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점 포인트를 찍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일까?

어느 순간

나는 또 오늘의 나를 만나서 나와 통합하고 그 자리에 시점 포인트를 찍고 또 남겨진 나를 놓고 길 떠나겠지 나머지 기억들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되돌아 올 기억 안의 순간들

훗날 어느 순간의 나여!

오늘 나를 만나게 되더라도 그때의 나여!

애상해하지 말아라

오늘 나는 여기에 있어도 괜찮다

어차피 길 떠날 너를 예비하는 단계로서의 오늘의 나이니까

오늘은 비가 오고 늦여름 초가을 무더위도 한풀 꺾였고 밑반찬도 만들었고 음악도 들었고 책도 볼 예정이고  글도 쓸 예정이고 나는 길 떠날 나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으며

그리고

내 삶을 살고 있다

내일과 훗날의 나여!

기억을 동정하거나 연민하지 마라

애상함이나 애처로움은 훗날의 나보다 항상 기억의 나가 더 어리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는 그때마다의 나들이 짊어진 짐이 있다

그것의 총체로서의 나여!

훗날의 나여!

언젠가는 지금의 나에게

지금보다 더 어린 나에게

그리고 유년의 어린 강인함에 기대야 할지도 모른다

기억 안의 모든 나들이 지금과 훗날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나들에게서 보자면

지금이 가장 합당하고 무난하다

훗날의 나여!

지금을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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