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이 이야기는 평범한 야식 이야기이며, 오랜만에 먹은 야식은 맛있었다. 무엇을 먹어도 맛있을 시간, 밤 11시, 라면이 이렇게나 맛있었나, 내 젓가락질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안에서 들끓는 감정에 그날 저녁까지 남아있던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말았다.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을 마주했고, 영화를 보는 내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노를 느꼈다. 소름 끼치는 교활함과 비겁함으로 가득 찬, 잔혹한 서울의 봄이었다. 140분 내내 이미 과거의 사건이 맺은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 시대 속으로 몰입해 들어갔다.
영화가 끝나고 급격히 몰려오는 배고픔은, 늦은 시간이니 내일 아침밥을 일찍 챙겨 먹자는 타협점을 벗어난 상태였다. 영화를 본 후 내 기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친구들과의 단톡방을 열었다. 한 친구가 라면을 먹고 있다며 올린 사진이 보였고, 그 사진 한 장이 내 배고픔에 불을 지폈다.
화가 나서 라면을 먹어야겠다는, 의식의 흐름에 이끌려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밤 11시, 정말 오랜만에 끓이는 라면이었다. 설거지도 귀찮아 컵라면을 주로 먹었지만, 오늘만큼은 봉지라면을 보글보글 끓여내야만 했다. 늦은 시간인 만큼 수프를 조금은 덜어내 볼까? 살짝 고민이 되었지만, 그런 식으로 나트륨과 타협해 온전한 라면의 맛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수프 봉지를 끓는 물에 탈탈 털어내며, 끓어오르는 라면을 보니 신이 났다. 내일 한껏 불어 있을 얼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더욱 마음 편한 야식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날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졌다. 딱히 결제를 한 OTT가 없어, 결국 유튜브에서 짧게 편집된 그날을 다룬 프로그램을 재생시켰고, 동시에 완성된 라면 한 젓가락을 후후 불며, 먹기 시작했다. 곧 나는 조용히 정지버튼을 눌렀다. 도저히 분산되는 집중력에 라면을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맛있으면 0칼로리라 했던가, 맛있게 먹은 늦은 밤 라면은, 나도 놀랄 정도의 멀쩡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하게 했다. 역시 맛있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