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방에 빠져서는 안 될 것

소비적 취향, 생산적 취미 - 여행의 기록 중에서

by 홍지


Do nothing in PAI


빠이에서 가장 흔한 말. 이 마을에 머무는 여행자들이 만나면 서로에게 인사처럼 건네는 말. 우리는 이곳에 네 달간 장기 체류하면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좋았다기보다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도 삶이 충분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해서 좋았다.


빠이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럴 수 있었던 건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내게는 뛰어난 언어 실력도 붙임성 있는 성격도 풍족한 자금도 없었다. 단지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을 알아보는 ‘촉’과 그것을 적절히 뒷받침해 주는 삶에 대한 ‘취향’이 있었을 뿐이었다.


굳이 비행기(2008년 기준)를 한 번 이상 갈아타고 와야 하는 치앙마이에서 다시 버스로 구불구불한 길을 762차례나 지나야만 올라올 수 있는 산 동네를 찾아온 이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굳이 여기까지 올라와 장기 체류 중인 사람들. 그들이 여기에서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확실히 쉽게 닿을 수 있는 도시에서 만들어내는 것과는 다른 지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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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이에 이끌려 머물고 있는 이들은 어떤 보이지 않는 취향의 공감대로 이어져 있었고 그 취향의 사슬이 다시 이 마을의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마을이 이런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건지, 이런 사람들이 이 마을을 이렇게 만드는 건지. 뭐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머무는 내내 취향의 고리는 섬세하게 이어져 우리의 장기 체류 생활을 더 즐겁게 해 주었다.


이들은 대부분 고향에서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펼치지 못했던 자신들의 소소한 꿈들을 이곳에서 펼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고향에서는 프로그래머로 일을 했으나 빠이에서는 요가 선생님으로 활약하거나 자신의 나라에서는 전혀 해보지 않던 일들에 도전하며 제2의 삶을 시작하는 이들도 많아 보였다.


‘Do nothing in PAI.’ 결국 이 말에는 이런 숨은 뜻이 있는 것 아닐까?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마.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네가 뭘 하는지 봐봐. 매일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 네가 좋아하는 일이고 그걸 찾았다면 어디 한 번 마음껏 그걸 하며 살아봐. 그리고 잊지 마. 너에게는 원하지 않는 걸 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





이 책은 ‘1년의 여행’이 그 후 돌아온 ‘10년간의 일상’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삶을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여행의 기록’과 ‘일상의 기록’이 같은 테마로 교차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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