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를 넘어 부러워할 용기 - 일상의 기록 중에서
가끔 생각한다. 그때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 내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때 나와 비슷한 연차였던 동료들은 지금 억대 연봉자가 되어 있기도 하다. 스스로 버린 고액 연봉자의 삶. 나는 왜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사무실 안에 ‘내가 되고 싶은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내야 할 삶이 눈앞에 빤히 펼쳐지는데 그 속에 내가 원하는 삶은 보이지 않았다.
때가 되면 회사를 그만두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살아 보는 건 오랜 내 로망이었다. 단지 그 시기가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왔을 뿐. 그때 나는 입사 3년 차였다. 소원대로 퇴사 후 긴 여행을 떠났다. 떠나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왔는지, 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끔찍하게만 여겨왔던 서울의 현재는 개도국에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장밋빛 미래였고, 선진국에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이기도 했다.
현재 시점에서만 바라보고 무작정 비난하거나 동경하던 모든 것들이 실은 같은 선상 위에 존재하고 있음을. 그저 같은 세상을 다른 속도로 통과하는 중이라는 것을. 여행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과거와 상상해보지 못한 미래를, 나는 길 위에서 종종 목격했다. 이런 시간은 여행을 도피처로만 여기고 무작정 도망쳐 나온 나를 치유해 주는 좋은 약이 되었다. 사무 실에서는 통 찾기 힘들었던, 저렇게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여럿 만났다. 앞서 언급한 노르웨이 그녀가 그랬고 다양한 삶을 모색 중인 여행자들이 그랬다.
알고 보니 이분법 같던 삶이 오지 선다형 정도로 확장된 기분이었다. 돌아온 내 일상은 여전히 평범했지만, 확실히 그전과는 달랐다. 나는 여행을 멈추고 일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 살아야 일상에서도 잘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데 온 에너지를 모았다. 일상도 소중한 여행지의 일부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도 부러워할 무엇이, 본받을만한 누군가의 삶이 필요했다.
알고 지낸 지 십 년 정도 된 지인이 있었다. 우연히 서로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이후 오프라인으로도 만난 적이 있다. 우리는 같은 업계에서 같은 직무의 일을 했고 둘 다 여행을 좋아했다. 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 자는 말을 밥 먹었냐는 인사처럼 주고받았다. 나는 태국에서, 그녀는 프랑스 에서의 삶을 갈망했다. 내가 회사를 관두고 태국으로 떠날 때 그녀는 내게 부럽다고 말했다. 내가 다시 돌아와 전혀 다른 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도 그녀는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휴가 때마다 여행을 떠났고 사진을 찍었고 책을 읽었고 홈페이지에 일상을 기록했다.
나는 그사이 서너 번쯤 홈페이지 주소를 바꿨고 사람들과 연락도 끊겼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낯선 세계에 적응하고 있었다. 내가 이전의 사회적 경력을 무로 만드는 동안 그녀는 두 권의 책을 냈다. 그 안에는 그녀의 홈페이지에서 오랜 시간 봐왔던 친숙한 글들이 가지런히 기록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질투심이 솟구쳤다. 그녀는 여전히 회사도 잘 다니고 있고 업계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 그 경력으로 강의도 나가고 안정된 벌이로 집도 마련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여행도 다녔고 사진도 찍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에도 꾸준했고 그 모든 일상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집을 사거나 책을 내서 부러운 게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되고 싶은 미래가 없다며 박차고 나왔던 그 업계에서 스스로 되고 싶은 미래를 개척하고 있었다. 후배들에게 저 선배처럼 산다면 참 괜찮을 것 같다는 좋은 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그녀의 삶을 질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랜만에 느껴보는 질투심에 잠시 혼란에 빠졌다. 이런 감정은 내게 흔히 생기지 않기에 곰곰이 따져 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그녀였더라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도 여전히 여행을 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자신 없었다. 나는 많은 걸 포기하고서야 깨달았던 일상의 소중함을 그녀는 매일 사무실 모니터를 바라보면서도 놓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꾸준할 수 있었던 그 성실함에 혀를 내두르며 나는 질투하기를 멈춰야 했다. 어차피 나는 못했을 거니까. 그다음 찾아온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진심으로 그녀의 성실함이 부러웠다. 나는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다. 꾸준하게 하는 거라곤 숨쉬기와 일기 쓰기뿐이었던 삶이라고 말했던가. 게다가 쉽게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성격도 아니다. 그런 나를 관찰해 보니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
그들에게는 모두 성실함이 있었다.
삶의 방향이 조금 다르더라도 각자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그 성실함. 그것을 본받자고 생각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에 성실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일상을 기록하는 일, 여행하는 일,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조금 더 성실해지기로. 그리고 성실한 사람들의 삶을 발견하면 진심으로 응원해 주기로. 그러고 나니 생각보다 내 곁에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회사를 나와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사업으로 성공시킨 친구, 회사를 나오지 않고도 꾸준히 자신과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친구, 은퇴 후의 또 다른 삶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모색하는 친구까지. 모두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성실함을 부러워하며 나의 일상도 성실하게 가꾸기로 했다. 비록 여기는 노르웨이가 아니 지만, 우리에겐 충분히 원하는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으니까.
결과를 질투하지 말 것
결과가 있기까지 그가 통과해 왔을 그 과정을
그 성실함을 마음껏 부러워할 용기를 가질 것
이 책은 ‘1년의 여행’이 그 후 돌아온 ‘10년간의 일상’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삶을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여행의 기록’과 ‘일상의 기록’이 같은 테마로 교차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