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님과 함께 하는 사파리 투어
오전에 고대하던 빅토리아 폭포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젖은 옷을 갈아입고 개인 정비를 마친 뒤, 우리는 다시 새로운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의 숙소는 이렇듯 괜찮은 분위기의 개별 방갈로 형태였다. 그런데 텐트 신세를 질 뻔했다는...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으로 사파리 투어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아침에 숙소 안내데스크를 통해 근처에 있는 반나절 일정의 사파리 투어를 미리 예약해 두었다. 사파리를 꼭 가고 싶었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일단 호텔 안내데스크에 문의를 했더니 이곳과 제휴를 맺은 업체가 있었던 것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근처 보츠와나로 가서 쵸베 국립공원에서 제대로 된 하루짜리 투어를 하고 싶었지만 짧은 시간이 허락해주질 않았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다른 곳 반나절 짜리를 예약해 둔 것이다.
제시간에 맞춰 사파리용 차량이 왔고 제복을 갖춰 입은 청년 하나가 우리를 안내했다. 그의 이름은 프린스(Prince)였다. 프린스는 아직 경험이 많지는 않은 듯 보였지만, 조심스럽지만 유쾌하게 우리를 진정한 사파리의 세계로 안내해주었다. 잠베지 국립공원에서 만난 다른 일행들의 가이드들처럼 상남자 스타일이라기보다 무언가 기품과 재치가 있고 센스 넘치는 스타일이었다. 그야말로 왕자님, 프린스였다. 일행 모두가 프린스의 차에 탑승하고 아프리카 대자연의 초원지로 향해 갔다.
우리의 동반자 프린스, 그리고 그의 사파리 투어 차량 우리가 선택한 사파리 투어지는 잠베지 국립공원에 있는 샤마본도 게임 드라이브(Chamabondo Game Drive) 코스였다. 우리가 흔히 '사파리'라고 하는 것, 그러니까 개조된 차량을 타고 초원에 있는 동물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라고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사파리라는 표현보다는 게임 드라이브라는 말을 더 쓴다고 한다. 입구에 간단한 안내 간판이 있고 그 뒤로 매표소 겸 안내소가 있다. 프린스는 안내소 직원과 웃으며 몇 마디를 나눈 뒤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조금 지나면 숲으로 들어가기 전 주의해야 할 점들이 적힌 안내판이 다시 나온다. 게임 드라이브의 규칙이다. 간단한 영어로 되어 있어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Chamabondo Game Drive의 입구
주의사항을 표시한 안내판
왜 아무것도 안 보이지?
안내 표지들을 다 지나 사파리가 시작되었다. 앞좌석에 앉은 나도, 멀리 잘 보이도록 좌석의 높이를 올린 뒷좌석에 오른 일행들도 각자의 카메라들을 들고 촬영을 시작했다. 아직은 시작 지점이니 풍경 외에는 별로 찍을 것들은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프린스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그러더니 짐칸에서 물을 꺼내 한 병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무료 제공이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는 차의 앞쪽으로 가더니 앞유리창을 보닛 쪽으로 접는 것이었다. 별 느낌이 없었는데 그걸 그렇게 접고 나니 앞좌석에 앉은 나는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본격적인 시작이다 싶었다.
앞 유리창을 접기 전(왼쪽)과 접은 후(오른쪽). 앞좌석에 앉아보면 시야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자리가 높은 뒷좌석들만큼이나 시야가 확 트인 채로 프린스의 차는 초지와 키 작은 나무들이 있는 숲을 통과하며 국립공원 깊은 곳으로 서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면으로도 측면으로도 더 이상 눈에 걸리는 장애물은 없어 시원한데, 문제는 사파리 투어에서 만나야 할 동물들마저 눈에 걸리지 않았다.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서서히 뾰루퉁한 소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왜 아무것도 없어?", "다들 점심 먹고 낮잠을 자나?", "대체 동물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거야?" 이런 얘기들이 나오던 차에 누군가가 이랬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에버랜드를 가지~" 이 말에 우리는 빵 터졌다. 한 바탕 웃음이 지나가고 프린스가 눈 크게 뜨고 좌우를 잘 살피라는 얘기를 자꾸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도 동물들이 나타나지 않자 살짝 당황한 눈치이긴 했다.
앞 유리창을 접어 시야를 확보하고 동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프린스가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앞으로 가질 않았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왼쪽 밑을 잘 살펴보라고 했다. 뭐가 있다는 거지? 지금껏 본 것이라고는 이름 모를 아프리카의 새들뿐이었는데... 땅바닥을 잘 살펴보다 보니 풀숲 사이에서 작은 거북이 하나가 보였다. 크기는 손바닥만 한 것이었는데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 한 켠으로 물기가 있는 풀 숲 사이에 숨어 있었다. 열대 사파리 투어인데 거북이? 어이없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사실 큰 동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손바닥만 한 거북이라니?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파리에서 거북이를 만난다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얘기였다. 이곳만의 특징인지, 아니면 원래 진짜 야생동물 사파리 투어에서는 거북이를 볼 수도 있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바닷가도 아닌 아프리카 대륙 한가운데에서 거북이를 본다는 것은 신기한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그거지만 이 자그마한 거북이를 발견하고 차를 세운 프린스도 참 신기했다. 그걸 어떻게 발견한 걸까...?
풀 숲 사이에 숨어있는 거북이 한 마리. 그렇게 거북이와의 신기한 만남이 있은 후에도 큰 동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일행들 10명의 눈과 카메라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저 새들만 몇 마리 보일 뿐, 우리가 원하는 동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 물웅덩이 옆에 서있는 새...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사파리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잠베지 국립공원의 새들. 이름도 모르는 낯선 모습들을 하고 있다.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프린스가 다소 흥분된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차 오른쪽을 보세요~!" 저 멀리 코끼리 한 마리가 보였다. 기어이 녀석이 나타났다.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가 물 웅덩이 근처에서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사진으로 담으니 거리가 너무 멀었다. 잽싸게 망원렌즈로 바꾸고 최대한 당겨 찍기 시작했다.
드디어 차 우측으로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녀석은 자신을 구경하러 온 사람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물웅덩이 옆에서 긴 코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코끼리는 가족 단위로 집단생활을 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옆 풀 숲에서 스윽~하고 움직이는 또 한 마리의 코끼리가 보였다. 그 녀석은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기가 창피했는지 풀숲에서 은폐한 채 끝내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처음 녀석만 우리 보고 맘껏 구경하라는 듯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물을 마시는 아프리카 코끼리(왼쪽), 풀숲에 있는 또다른 녀석은 끝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오른쪽). 그 녀석들을 뒤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연기자를 만났다. 이 녀석은 앞선 녀석보다 더 쇼맨십이 있어 보였다. 국립공원에서 동물들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연못과 시설물들 옆에 있다가 우리가 녀석을 발견하자 성큼성큼 연못으로 다가가더니 코로 물을 움켜 마시기 시작했다. 아니! 마시는 게 아니었다. 코로 물을 뿜어 샤워(?)를 하는 것이었다. 일행들의 탄성과 함께 셔터 소리가 바쁘게 이어졌다. 녀석도 신이 났는지 이번에는 조금 앞으로 가더니 쌓아둔 모래를 집어 들고 모래 샤워까지 하는 것이었다. 기특하기도 하여라. 지구 반대편 한국이라는 나라, 코끼리는 자생하지도 않아 동물원에나 가서야 볼 수 있는 그런 나라에서 온 우리를 위해 완벽한 쇼를 보여주는 기특한 녀석~!
코끼리 연기자 쇼타임 #1 - 물쇼
코끼리 연기자 쇼타임 #2 - 모래쇼 우리는 프린스의 배려로 실컷 사진을 찍고 나서야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양 옆으로 키 큰 나무들의 숲이 이어지고 그 가운데로 난 초원을 따라 차량은 이동했다. 얼마 지나자 다시 프린스가 "저기를 보세요~!" 했다. 이번에는 코뿔소.... 인 줄 알았다. 그런데 코뿔소라고 하긴 너무 왜소했다. 그냥 멧돼지 정도가 어울리는 사이즈였다.(나중에 찾아보니 아프리카 초원지대에서 자주 발견되는 혹멧돼지라고 하는 녀석이었다.) 그 녀석 한 마리가 푸른 풀 숲에서 검은색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어느 순간 풀숲 사이에서 아주 작은 녀석들이 뿅 하고 나타났다. 새끼들이었다. 그렇게 한 가족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부모로 보이는 녀석이 먼저 나타나 우리들의 동태를 살피더니 우리가 시동을 끄고 조용히 있으니 가족 모두가 안심하고 나타난 것으로 보였다. 이들의 단란한 오후를 우리가 방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혹멧돼지 가족의 여유롭고 단란한 시간~^^
열대 스콜이 몰려온다
또 다른 동물들을 찾기 위해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길 앞에 나타난 하늘의 상태가 심상치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푸르른 하늘색을 맘껏 뽐내던 하늘이 혹멧돼지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그 얼굴을 완전히 달리하고 있었다. 시커먼 먹구름이 길게 뻗어 있었고 바로 그 아래에 우리가 있었다.
우리가 가야 할 사파리 투어길 위로 시커먼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곤 단 몇 분만에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스콜(Squall)이다. 열대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바로 그 스콜이었다. 순식간에 하늘이 어두워져 품고 있던 수증기를 한 순간에 쏟아붓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라진다는 바로 그 스콜. 우리가 그 스콜을 만난 것이었다.
단 몇 분만에 날씨가 바뀌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비의 양이 심상치가 않았다. 물론 소나기처럼 쏴아~하고 내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이른바 물폭탄처럼 쏟아부을 줄이야. 프린스는 차를 황급히 세우고 짐칸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판초우의였다.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프린스!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자주 겪는 일일 테니 짐칸에 미리 다 준비를 해 놓았을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서둘러 비옷을 챙겨 입었다. 오전에는 폭포 물보라 때문에 비옷을 입었는데 오후에는 스콜을 만나 또 비옷을 입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야 확보를 위해 양 옆과 앞이 뻥 뚫려 있는 차량이라 비가 마구 튀어 금세 비옷을 흠뻑 적셨다. 특히 앞좌석에 앉은 나는 차량의 진행 방향 탓에 접어 높은 앞유리창에 고인 빗물마저 나에게 튀어 오르는 바람에 눈을 제대로 뜨기도 어려웠다. 카메라만 간신히 비옷 안으로 숨겨 보호할 뿐이었다.
그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정작 프린스는 단 1의 동요도 없이 계속 운전을 했다.(프린스만 비옷을 입지 않았다.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얼마 뒤 얼룩말 무리를 만났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선명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뿌연 상태에서도 얼룩무늬는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녀석들은 스콜이 익숙하기나 한 듯이 전혀 동요되지 않고 차분히 제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주변 경계도 하고 풀도 뜯고 하면서 이 정도의 비야 곧 지나가겠지 하는 태도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동물원이 아닌 실제 아프리카 초원에서 얼룩말을 만난다는 것은 아프리카 여행이 가진 큰 매력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보여주는 그 모습을 인간은 그저 주변에서 스쳐 지나가며 눈으로만 감상할 뿐, 아무런 인위적 장치도, 방해도 없었다.
스콜이 내리는 상황에서도 여유로운 얼룩말 무리 쏟아붓는 비는 점점 거세졌고 결국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탄 차량이 마주 오던 다른 사파리 투어 차량을 비켜주다가 비에 젖은 흙길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프린스가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바퀴는 헛돌기만 할 뿐 빠져나오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차에 타고 있던 우리 일행들이 하나 둘 내려 차를 밀어봐도 잘 되지 않았다. 결국 프린스는 무전으로 SOS를 쳤다. 그랬더니 어디선가 다른 사파리 투어를 진행하던 팀이 나타났고 베테랑으로 보이는 직원이 운전대를 잡고 다시 탈출 시도를 시작했다.
빗물에 젖은 흙길은 점점 우리 차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결국 차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이 내리고 베테랑 직원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방향을 서서히 틀었다. 그리고는 거센 엔진 소리를 내면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반전님을 비롯한 몇몇 장정들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고 이 순간도 추억으로 남을 것을 예감한 몇몇 일행은 사진과 영상으로 이 장면을 담기 시작했다. 몇 차례 더 전진 후진을 반복하고 방향을 맞춘 우리 차량은 기어이 그 흙길에서 빠져나왔다. 환호가 터져 나왔고 누구보다 기뻐하는 프린스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선배 직원을 찾아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베테랑 직원은 프린스의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자신의 차량으로 쿨하게 돌아갔다.
어렵사리 난관을 극복한 프린스는 차량이 지나다니며 만들어낸 흙길을 따라 조심스레 운전을 계속했고 어느 조그만 오두막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모두 내려 오두막으로 올라가게 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비를 피하기 위한 오두막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일행들을 안내한 뒤 프린스는 어디선가 캠핑용 테이블을 가져와 조립하더니 거기에 하얀 식탁보와 아프리카 분위기가 나는 테이블 러너까지 덮어 그럴듯한 테이블을 뚝딱 만들어냈다. 그러더니 또 어디선가 음료(맥주 포함 ㅋㅋ)와 치킨 등 간식거리를 가져와 펼쳐 놓았다. 아직 따뜻한 치킨과 튀김은 비에 젖어 오돌오돌 떨기 시작한 우리에게 온기를 퍼뜨려주기에 충분했다.
그 와중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얼추 10분이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오두막 지붕에 투둑투툭하며 떨어지는 빗소리와 초원에 쏟아지는 쏴아~ 하는 소리가 절묘하게 어울리며 나름 낭만을 채워주었다. 내리를 비를 보며 간식을 먹으며 오두막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나름 멋이 있었다.
우리의 작가님은 그렇게 비가 내리는 중에도 오두막에서 내려서서 비 오는 초원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남기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다시 길을 나서다. 하지만~!
비가 어느 정도 잦아들기 시작하자 프린스는 자리를 정돈하고 다시 출발 준비를 했다. 스콜이 이미 걷힌 먼 지역에서는 다시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 무지개를 만들어냈다. 20분 가까이 세차게 내리던 열대의 스콜은 이제 다 끝이 나는 모양이었다.
구름이 걷힌 먼 하늘에는 무지개가 떠올랐다. 비가 지나간 뒤의 초원은 한결 더 깨끗하고 상쾌한 느낌을 주는 풍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회색 구름과 흰 구름이 섞인 하늘 사이사이로 파란색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나무와 풀들은 제 모습을 한껏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쏟아진 비가 만들어낸 물 웅덩이들은 그런 풍경을 담뿍 담아내고 있었다. 거기에 온갖 풀들이 갖고 있던 특유의 향이 한껏 올라와 천지가 풀냄새로 가득했다. 스콜 뒤의 열대 초원은 수분을 함뿍 담아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한 듯했다.
비 온 뒤 아프리카 초원의 풍경은 더 아름다웠다. 오두막에서 함께 쉬었던 다른 팀들도 같이 출발했다. 차량 석 대가 나란히 사파리 투어를 재개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또 문제가 발생했다. 비는 그쳤지만 사파리 차량이 다니는 흙길은 더 엉망이 되었다. 이번에는 우리 앞에 먼저 길을 가던 차량(우리 일행도 아니면서 우리는 그 차를 1호차라 불렀다. 우리 차는 3호차~ㅋㅋ)이 흙길에 바퀴가 빠지고 만 것이었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탈출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우리 프린스가 차에서 내려 출동을 했다. 직원들의 도움으로 그 차가 빠져나갔고 그 길로 2호차도 3호차도 지나가야 했다. 2호차도 살짝 위험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통과했다.
이제는 우리 3호차의 차례였다. 앞 선 두 차량이 더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흙길을 넘어서야 했다. 이미 넘어간 두 차량은 속도를 줄여 우리의 상황을 주시했다. 도전이다~!! 프린스가 기어를 넣고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명의 우리 일행들은 한마음으로 프린스를 응원했다. 열혈님이 "잘한다, 잘한다, 프린스!"를 시작했고 유쾌님이 함께 그 구호를 받아 가더니 이내 우리 모두가 외치기 시작했다. "잘한다, 잘한다, 프린스! 짜란다, 짜란다, 프린스!" 우리의 구호에 힘을 얻었는지 위태롭던 우리 3호차는 프린스의 능숙한 운전 스킬에 힘입어 그 난관을 잘 극복해 내었다.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프린스 최고!!
두 번째 난관을 멋지게 넘어서는 프린스의 활약 영상
다시 시작된 동물들과의 만남
시간이 지날수록 회색빛 구름이 걷히며 밝아진 하늘 아래로 사파리 투어는 계속되었다. 왼쪽으로는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밀림이, 오른쪽으로는 꽤 넓은 폭의 초원이 자리 잡은 그 사이로 프린스는 길을 잡고 동물들을 찾아 나섰다.
스콜이 거의 걷힌 잠베지 국립공원 사실 사파리 투어, 그것도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라고 하면 뭔가 크고 사나운 녀석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도 프린스에게 그런 동물들을 만날 수는 없느냐고 묻기도 했다. 어떤 동물이 제일 보고 싶으냐는 프린스의 질문에 뒤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Lion!" 그 말에 프린스는 웃으며 대답했다. 사자를 만나면 우리 모두 큰일 난다고. 생각해보니 그랬다. 이 차는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다. 그런데 사자를 만나고 그 사자가 우리에게 달려든다면? 프린스는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가 프린스가 차를 세우고 키 큰 나무들이 있는 숲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일행들은 그쪽으로 눈을 돌리면서도 "뭐가 있다는 거야~?"라는 반응을 보였다.
기린 가족이 나무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프린스는 기린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잘 보이지가 않았다. 너무 멀었다. 숨은그림찾기 수준이었다. 눈썰미 좋은 누군가가 "있다, 기린~!"을 외쳤다. 프린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 끝에 기린 여러 마리가 나무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것이 보였다. 워낙 조심성이 많은 녀석들이라 가까이 가면 다 숲으로 들어가 버릴 것이고 녀석들도 우리의 동태를 살피는지 그 숲에서 자신들의 몸을 숨기고 나뭇잎을 뜯어먹고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살펴보니 한 가족으로 보였다. 아직 어린 새끼들이 부모와 함께 있었다. DSLR 카메라의 줌을 최대한 당겨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래도 멀긴 멀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기린 가족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앞 뒤로 나무 뒤에 숨어 조심스럽게 먹이활동을 하는 다른 기린 가족도 보였다. 너무 멀기도 하고 나무 숲 사이에 자신들의 몸을 숨기는 조심성 때문에 우리 눈으로 확인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야생의 기린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기린들은 나무 뒤에 숨어 조심스럽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무 뒤에 숨어 스스로 신비로움을 만들어 준 기린을 뒤로하고 다시 프린스는 다음 동물을 찾기 위해 운전을 시작했다. 정해진 게임 드라이브 코스로 계속 진행하다 오른쪽 초원 풀숲 사이에 무언가 있다고 프린스가 다시 알려주었다. 어쩜 그렇게 잘 찾아내는지... 하이에나였다. 사파리 차량에서 꽤나 먼 곳에서 이곳과 주변을 주시하는 야생 하이에나가 나타난 것이었다. 주변 경계를 잔뜩 하면서 먹잇감을 찾는 모양이었다. 처음에 한 마리인 줄 알았는데 풀숲에서 한 녀석이 또 스윽~ 하고 나타났다. 어찌나 경계심이 투철한 지 우리의 움직임을 살펴보더니 이내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아까 스콜을 만나기 전에 보았던 얼룩말 무리가 또 나타났다. 맑아진 하늘 탓에 녀석들의 얼룩무늬가 훨씬 선명하게 보였다. 무리 지어 생활을 하는 녀석들이라 그 얼룩무늬들이 옆에 있는 녀석들과 연결되면서 보는 이의 눈을 현혹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대체 몇 마리가 있는 것인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한 마리의 무늬인지 구분이 어려워지고 눈알이 뱅뱅 도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렇게 진화했다고 하니 참으로 자연의 세계는 신비로운 것이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비 갠 후 선명하게 드러난 얼룩말의 무늬가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얼룩말 무리 옆으로 들소의 무리도 함께 보였다. 그렇다고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은 아니고 서로 무심한 듯 자신들이 먹을 풀만 열심히 뜯고 있었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한번 쳐다보기는 하지만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어울려 지내는 듯했다. 풍요로운 초원의 풀들 덕분에 그렇게 두 종족은 서로 싸우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서로를 신경 쓰지 않고 무심한 듯 어울려 있는 얼룩말과 물소 그 풍경을 지나 조금 더 가다 보니 물소들이 또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몇 마리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물소떼였다. 수십, 수백 마리의 물소들이 한 곳에 운집해 있다가 투어에 나선 우리 차량을 보고 살짝 당황했는지 우리와 반대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소떼의 집단 움직임은 땅을 울렸다. 순식간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듯하더니 금세 멈춰 섰다. 그리고는 우리 쪽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중 덩치도 제일 크고 매서운 눈매와 단단한 뿔을 가진 한 녀석이 끊임없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무리의 대장인 듯싶었다. 다른 녀석들은 뒤에 서서 간간히 우리를 살피고 있었는데 이 녀석만 우리를 끝까지 째려보았다.
들소의 무리.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우리를 주시하며 경계하고 있다. 시동을 끄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우리를 한참 보던 녀석들은 대장이 움직이자 또다시 집단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른 영상에 담았다. 백여 마리가 넘어 보이는 녀석들 앞에 대장이 다시 우뚝 서자 녀석들도 같이 섰다. 그리고는 시동을 걸고 움직이는 우리를 끝까지 바라보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프린스는 "OK?"라고 물었고 우리가 "OK!"라고 답하자 다른 곳으로 본격적으로 이동했다. 다른 들소들은 물도 마시고 풀도 뜯고 했지만 대장 녀석은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우리를 응시했다. 진정한 리더다움을 보여줬다.
날이 지며 사파리를 마무리하다
프린스는 처음에 우리가 들어왔던 그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 하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우리의 사파리 투어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들판의 마지막쯤에 왔을 때 익숙한 새들이 보였다. 코미디언 김병만이 정글의 법칙에서 걸핏하면 먹잇감으로 잡으러 다녔던 바로 그 새였다. 이른바 아프리카 치킨으로도 불리는 호로새였다. 덩치는 우리의 닭보다 몸통이 큰 편이고 머리 부분에는 푸른색과 붉은색의 무늬가 있어 화려해 보였다. 바닥에 있는 벌레나 이런 것들을 잡아먹고 있는 풍경이었다. TV에서는 김병만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하며 상당히 날랜 모습을 보여주었었는데 얘네들은 그다지 그렇게 빨라 보이진 않았다. 아니면 우리가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나? 너무나도 여유롭게 자신들의 먹이활동에만 집중했고 우리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우리를 김병만 급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여유롭게 먹이활동을 하는 호로새 호로새를 지나 처음 왔던 그 나무 숲으로 들어왔다.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이미 말라버린 키 큰 나무들이 몇몇 보였다. 한 나무의 맨 꼭대기 가지 끝에는 매가 앉아 있었다. 매 두 마리가 각자 가지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자신의 깃털을 고르기도 하고 주변을 살피기도 하고 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 번쯤 날아오를 만도 한데 귀찮다는 듯 그렇게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사소한 움직임만을 보여주었다. 아마 이미 먹이 활동은 끝난 게 아닐까 싶었다.
마른 나뭇가지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나무에서는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무언가 분주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원숭이들이었다. 워낙 이곳 아프리카에서는 도로 주변에서도 발견되는 녀석들이라 신기함은 덜 했지만 야생에서 나뭇가지를 타고 다니는 녀석들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재미였다. 거의 열 마리쯤 되어 보이는 녀석들이 큰 나뭇가지의 이곳저곳을 분주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높은 나뭇가지 사이로 원숭이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프린스의 차는 이제 게임 드라이브의 입구까지 얼마 남지 않은 곳까지 다다랐다. 작은 나무숲이 이어지고 있었고 이곳을 다 통과하면 입구가 나타난다. 이렇게 사파리가 끝나가는구나 싶었던 그때! 프린스가 갑자기 저속 주행을 시작했다. 코끼리였다. 그 나무숲 사이에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었다. 여러 번 느끼지만 프린스는 대체 어떻게 발견을 한 것일까? 하여튼 프린스가 향한 곳을 바라보니 코끼리가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오늘 보았던 다른 큰 동물들과의 거리보다 지금이 가장 가까웠다. 녀석은 나무 뒤에 숨어 우리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듯했다. 큰 눈을 끔뻑거리며 나무 뒤에서 상황을 살폈다. 내려서 조금만 다가서면 녀석의 코를 만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리면 안 된다. 그것이 게임 드라이브의 규칙이었다. 프린스는 서행을 하며 코끼리를 가까이 살필 기회를 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사파리의 피날레를 멋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준 코끼리 입구를 빠져나오자 태양은 이제 완연히 서쪽 지평선 가까지 기울어 있었고 붉은 기운이 하늘을 채우기 시작했다. 오후 내내 동물들을 찾기 위해 들판과 나무숲을 뚫어져라 집중하며 살폈던 우리의 눈은 피로를 몰랐다. 멀리 보고, 초록의 자연을 보고 했기 때문이었겠지. 반나절이라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파리 투어를 통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필 수 있어 좋았다. 처음 시작할 때 에버랜드가 차라리 낫겠다는 말은 이 저녁이 되어서는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만큼 확연하게 다른 매력을 지닌 게임 드라이브였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한국에서부터 챙겨갔던 햇반과 각종 밑반찬들로 저녁을 먹고 수영장이 있는 리조트 로비에 나와 잠베지 맥주와 함께 짐바브웨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숙소를 잘 찾아왔건만 텐트 예약이었다는 날벼락같은 소식으로 시작한 빅토리아폴스 지역에서의 짧은 일정은 아프리카의 특성을 제대로 맛본 시간들이었다. 세계 3대 폭포임은 스스로 완벽하게 증명한 빅토리아 폭포의 웅장함과 자연 그 상태에서 만난 동물들의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임이 분명했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작은 인간임을 깨닫기도 했지만 일행들과 함께 하며 소소한 즐거움이 더 기억나는 짐바브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