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입니다. 딱 음표 여덟 개만 연주할 수 있으면 됩니다.
한 아이가 초등학교 오케스트라에 첼로 단원이 됐습니다. 얼마 뒤 열리는 정기 연주회에서, 파헬벨의 <캐논>을 연주한다고 하더라구요. 아이가 첼로를 배운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연주회 준비가 어렵지는 않은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첼로 파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덟 음만 연주하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
바로크 시대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였던 요한 파헬벨은, 한 대의 첼로와 석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곡, <캐논과 지그 D장조>를 썼습니다. 작곡가로서 후대에 그의 이름을 알린 대표작이자, 아름다운 화성과 선율로 오늘날도 많은 사랑을 받는 곡입니다. 이 곡의 악보를 펼쳐보면, 놀라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로 첼로 파트는, 여덟 개 음만을 연주한다는 것입니다. 첼로 파트의 첫 두 마디를 보면.. 한 마디에 4분음표가 네 개, 두 마디에 걸쳐 모두 여덟 개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두 마디가 반복됩니다. 그러니까 첼로 연주자는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 4분음표 여덟 개를 28번에 걸쳐 반복해서 연주하는 거예요. 이렇게 저음의 첼로가 안정적으로 곡을 지지하는 뼈대를 이루고, 그 위로는 석 대의 바이올린이 아름다운 노래를 펼칩니다.
이런 방식이 바로,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베이스 주제(저음 주제) 변주곡' 양식입니다. 저음이 주제를 가지면, 화성은 고정됩니다. 대신 바이올린의 높은 성부가 선율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지요. 이 곡과 유사하게, 주제가 저음에 있는 변주곡이 있습니다. 특히 저음이 4도 아래를 향해 한 음씩 내려가는 주제는 바로크 시대에 가장 큰 인기를 끌었는데, 바흐와 비탈리의 <샤콘느>, 코렐리의 <라 폴리아>, 헨델의 <파사칼리아> 같은 곡들입니다.
4분 음표 여덟 개로만 연주하는 첼로 파트, 그 단조로움 위에 쌓아올린 아름다운 변주곡, 파헬벨의 <캐논>을 들을 때마다 숫자 8을, 첼로 파트의 여덟 개 음을, 바로크 시대 저음 주제 변주곡을 떠올리면 흥미로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