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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Oct 05. 2019

비난 받는 마음이 어떻게 힘을 낼 수 있겠어요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2.



자신의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살펴보고 계신가요?  생각의 버스에 올라타지 않고 ( 참고,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고 싶다면 1. )어떤 버스인지 잘 바라보고 계신가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에 대한 얘기를 듣다보면, 공통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죠.



욕먹지 않으려고 20년을 산 것 같다는 전직 요정. 출처. JTBC





'비난'은 결국 내 목소리

자신의 마음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그 곳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면 알게 됩니다.  욕먹을까봐. 비난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자신. 넓게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신을요. 그런데  비난하는 그 목소리는 사실 '자신의 목소리' 입니다. 실제로 외부에서 자신에게 직접 비난을 받는 일은 10%도 되지 않을거에요. 결국 내가 나를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난이 결국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고요.


같은 맥락에서, 우울은 극도의 자기중심적 상태일 수 있습니다.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저 사람이 날 싫어하는 것 같아.' '저 사람이 나를 우습게 보는 것 같아.' '내 모습이 하찮은 것 같아' 라는 생각들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우울감으로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시작되었더라도 저 생각들은 모두 생각하는 당사자 중심의 생각인거죠.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생각은 주체자가 '나'이니까요. 그러니까 타인의 생각인 것처럼 포장되었을 뿐 결국 내가 나 자신을 하찮게보고, 싫어하고, 우습게보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우울은 여러가지 사건에서 기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조심스럽습니다만, 오늘은 '자기비난'의 영역에서 이해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판단'하느라 바쁜 마음

자기비난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은 대체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공원에 산책하는 강아지를 보며) '어머 강아지 너무 귀엽다!'

(지하철에서 눈이 마주친 사람을 보며) '저 사람 나 왜 쳐다보는거지? 표정이 이상한데? 불길해'

(텔레비전에서 연예인을 보며) '와 저 여자 진짜이쁘다. 쟤는 좋겠다. 행복하겠지?'

(홈쇼핑을 보며) '이건 사야돼!!!' (휴대폰을 들며) '매진된 건 아니겠지? 빨리빨리!!'


생각이 많을수록 끊임없이 판단하느라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당연히 피곤하겠지요.


판단하는 마음에 대한 비유

지난 회에서 상념들을 버스에 비유했다면, 이번에는 생각을 큰 공으로 비유해보겠습니다.  어렸을 때 운동회에서 키보다 큰 공을 여럿이서 굴렸던 기억이 있나요?  '공굴리기'게임이죠.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떤 상황을 보면서 머리속에서 '좋다. 싫다. 짜증난다. 부럽다.' 등으로 판단하는 것은 크고 무거운 공을 언덕위로 힘껏 밀어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공굴리기 게임의 하드코어 버젼입니다. 생각만해도 힘든 일이죠. 어떤 공은 '미움'의 언덕으로, 어떤 공은 '질투'의 언덕으로, 어떤 공은 '두려움'의 언덕으로 밀어올리고 있습니다.


출처. boyden


그런데 밀어올리지 않고 가만히 둘 수 있다면 그 공은 스스로 굴러갑니다. 그리고 사라집니다. 즉, 내가 경험하고 있는 사건들과, 사람,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수 있다면 마음은 힘 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비난받는 마음이 어떻게 힘을 낼 수 있겠어요

자꾸만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가정해볼게요.  무언가를 할 때마다, 혹은 하지 않을 때마다 자신을 판단할겁니다. '나 오늘 또 늦잠잤네. 이 게으름 때문에 내 인생이 망할거야.' '보고서를 너무 형편없이 쓴 것 같아. 또 욕먹겠다.' '벌써 저녁이네. 주말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네.한심해' '난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지? '

이처럼 자신의 어떤 행위에 대해 형편없다 혹은 한심하다 라는 식으로 판단하고 있지요. '형편없음'의 언덕으로 계속 무거운 공을 밀어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힘을 들였기 때문에 마음은 더욱 지쳐있는 상태가 될 것이고요. 지쳐있는 마음은 나를 케어할 힘이 남아있지 않을겁니다. 간단히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자꾸만 비난받는 마음이 어떻게 기운을 낼 수 있겠어요.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마음의 기본상태를 되찾아야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기본상태의 중요한 특징이 '비판단'입니다. 판단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두는 마음입니다. 내가 보고,듣고, 경험한 것들을 일어난 그대로 볼 수 있을 때에 마음은 평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라벨링을 합니다. 판단을 붙이는 거죠. '저건 싫어' '이건 좋아''쟤 별로야' '쟤 맘에들어. 쟤랑 친해질거야'라고요. 하다못해 잠깐잠깐 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 또한 판단이지요.



삶은 이미 충분히 고단합니다

언덕위로 공을 굴리는 비유를 생각해낸 건 아무래도 시지프스 신화가 떠올랐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는 인간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에게 미움을 산 이유로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 형벌은 일생동안 거대한 바위를 계속해서 산 정상으로 밀어올려야 하는 것이었고요. 힘들여 정상에 올린 바위는 다시 굴러떨어져, 처음으로 돌아가 밀어올려야 합니다. 매일매일 영원히요.


출처.  Peter dronen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던 이야기입니다. 굳이 카뮈의 의견을 듣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반복되는 고단한 인간의 삶을 상징하기에 충분합니다. 우리의 삶이 때때로 너무 고단하고 끝이 없어보이는 것과 닮아있지요.


하지만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면,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노예의 삶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머리속에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판단하는 습관을 버릴 필요가 있어요.  특히 자신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비난하느라 소진되는 에너지를 모아서, 위로하고 돌보는 데에 쓸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나아질 수 있습니다.



판단하지 않을 때 내 마음은 안전해집니다

비판단은 마음챙김(Mindfulness)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경험할 때 우리 마음은 평화롭습니다. 나 자신을 존재하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줄 때에, 나는 안전해지고 비로소 편안해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할까봐 두려워하면서 정작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다면 오늘부터 힘든 공굴리기를 멈추어보세요. 나의 모습, 내가 하는 행위, 나의 감정들을 그대로 존중해주세요. 공은 스스로 굴러갈 것이고, 내 마음은 차분함의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위 글이 담긴 브런치북 [How are you?내마음] 이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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