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령 Sep 29. 2019

아무것도 아닌 날씨와 같은 마음으로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1.

무더위가 지나고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낮의 햇빛은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공기가 느껴집니다. 이맘때쯤 느낄 수 있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가 반갑습니다. 무더위가 지난 후, 또는 한겨울의 맹추위가 지나고 난 후에 만나게 되는 날씨죠.   '아무것도 아닌 날씨' 라고 이름도 붙였습니다.


10년 전에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학교 앞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은 이름입니다. 그 때의 공기가 너무 편안하고 평화로워서 그 느낌을  말했고, 그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그날밤 글로 써두었던 기억도 있네요. 


어쨌거나 봄, 가을에 아주 잠깐 느낄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날씨'가 저는 참 좋습니다.



출처.unsplash


아무것도 아닌 날씨처럼 아무것도 아닌 마음일 때 우리는 편안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날씨를 편안하게 느끼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똑같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느낍니다. 그 이유는 그 것이 우리 마음의 본래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행복'을 마치 엄청난 기쁨이나 희열로 착각합니다. 또는 쾌락의 의미로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자꾸 무언가를 하려고 하죠. 성취를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물건을 사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술 담배를 하기도 합니다. 다 기분이 좋아지려고 하는 행위들이죠. 그렇지만 거기서 얻는 즐거움은 유지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게 본래의 마음상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무언가를 성취해서 얻어내는 거라기보다 원래의 내 마음을 되찾는 것입니다.


마음의 본래상태가 행복입니다. 고요함, 차분함, 평화로움 그 어떤 것도 좋습니다. 마음속에서 어떤 동요도 일어나지 않을 때 그 상태를 살펴보면 아주 맑아요. 그 때의 마음은 맑고 청명한 물과 같은 상태입니다. 아무 오염도 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깨끗하고 투명할까요. 비어있는 공(空) 의 상태인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 우리 마음속은 무척 번잡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의 명동거리처럼 무언가로 가득합니다. 일관되지 않은 생각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바쁘죠. 이생각에서 저생각으로 옮겨다니고, 모든 것에 연연하느라 바쁩니다. 



우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 위해 할 일은 결국 마음을 본래상태로 되돌리는 것 뿐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날씨처럼 아무것도 아닌 마음을 되찾아 평안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아무것도 아닌 마음을 갖기 위해 즉 고요한 마음을 위해 기억하면 좋을 비유가 있습니다. 제가 늘 떠올리는 방법이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주거나 '불안'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말씀드리면 꽤 이해가 잘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알려드릴게요.



버스에 올라타지 않고, 멀어지는 모습을 보세요.

생각은 한번 쫓아가기 시작하면 계속 가지에 가지를 뻗어 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려고 누웠는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한참동안 잠들지 못한 경험이 있나요? 그건 생각의 버스에 올라탔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생각조각을 버스라고 생각해보세요. 나도 모르게 그 버스에 올라타 버린 겁니다. 나는 버스 운전기사가 아니라 승객이기 때문에 그 버스가 가는 노선대로 계속 따라가게 됩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까지는요. 



불교에 무아(無我)라는 말이 있죠. 자아는 없다는 뜻입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여기 있는데 왜 내가 없냐고요? 그런데 내가 정말 내꺼라면 왜 내마음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걸까요.

진실여부를 떠나, 신기하게도 '내 것'이라는 데에 집착할수록 마음을 다루기 어렵습니다. '내 마음= 나'로 동일시할 수록  마음은 더 괴롭습니다. 반대로 내 마음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을 때 다루기는 훨씬 수월해집니다. 이 것이 바로 마음챙김(Mindfulness)과 명상의 원리이기도 한 것이고요.


제 마음을 제꺼인듯 보는게 아니라, 남의 마음 보듯이 취급하는 겁니다. 타자화 하는 겁니다. 그러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죠.  마음에 이름을 붙여도 좋습니다. 저는 '감자' 라고 지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가 아니라, '감자가 화가 치밀어 올랐구나.' 우울하구나가 아니라, '감자가 우울하구나'로 바꾸어 말합니다.  주어가 '나'가 아니라 '감자'(또는 다른 무엇)이기 때문에, 화가난 것은 내가 아니라 감자가 되었습니다. 그럼 그 감정도 좀 더 거리를 두게되죠. 빠져나오기도 더 쉬워졌고요.


자, 그럼 버스의 비유가 좀 더 이해가 되실 것 같아요.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을 버스 한대한대를 보듯이 보는 겁니다. 버스는 내 뜻과 상관없이 도로 위에서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잖아요. 어떤 감정이 떠오를 때 우리는 지나가는 버스를 잠깐 본 것 뿐입니다. 굳이 올라탈 필요 없어요. 번호만 확인하세요. '272번 버스네. 난 저 버스에 올라타고 싶지 않아. (난 저 생각에 빠져있고 싶지 않아)' 올라타지 않으면 버스는 제 갈길을 갈 것입니다. 유유히 사라질거에요. 


버스에 올라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혹은 이미 버스에 올라타버린 것 같다(대부분 이미 버스에 올라탔을 거에요..) 하면 그걸 알아차리자마자 내 호흡이나 내 몸의 감각으로 돌아오세요. 생각을 끊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는 것 입니다. 우리는 생각(사고)과 감각에 동시에 집중할 수 없어요. 내 호흡이 차분한지 가쁜지 확인하면서 나를 살피세요. 내가 잘 존재하고 있는지 확인하면 됩니다.(이게 제일 중요한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그 생각에서 이미 벗어나 있을 겁니다. 좀 전에 빠져들 뻔 했던 그 상념들은 내가 아닙니다. 그걸 꼭 기억하시고요.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사고와 감정에 동시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번에 한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어요.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생각을 처리하고 있는 것 같겠지만, 사실은 엄청난 속도로 이 생각에서 저생각으로, 저 생각에서 또 다른 생각으로 옮겨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얼마나 바쁘겠어요. 그리고 에너지 소모도 크기 때문에 피로감이 클 것이고요.

두더지게임에서 여기저기서 두더지머리를 예고없이 쑥쑥 내미는 것처럼 생각이 자꾸 찾아옵니다. 머리속의 잡다한 상념들은 예고없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밉니다. 우리는 그 모든 두더지를 감당해내느라 너무나 피곤한 상태에요. 다 때려부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알아봐주세요.


우리 마음속에는 어린아이가 한명씩 살고 있는 겁니다. 어린아이에게 '관심'은 너무나 중요하죠. 아이는 때로 울고 있고, 두려워서 움츠리고 있고, 때로는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관심이에요. '00가 기분이 안좋구나. 00가 오늘은 기분이 좋아보이네.' 이렇게 알아주면 아이는 차분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어요. 두려움이나 슬픔에 빠져들어 허우적대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 기분을 몰라주면 깊은 슬픔 속으로, 깊은 두려움속으로 빠집니다. 아이를 살핀다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살펴봐주세요. 그것뿐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어떤 생각에 빠지려고 하는지 아는 것. 그냥 그거에요. 



이 버스에 올라탔다가 저 버스에 올라탔다가 하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념에 빠져들지 마시고 내 본래의 고요한 마음으로 돌아오세요. 그리고 그 고요함을 즐기고 행복감을 알아차리시길 바랍니다.




이번 가을, 아무것도 아닌 날씨처럼 아무것도 아닌 차분한 마음을 꼭 누리시길 응원합니다. 행복한 가을 되세요!




위 글이 담긴 브런치북 [How are you?내마음] 이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YES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959595?OzSrank=1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3990586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050301&barcode=9788957361238&orderClick=LBS


이전 07화 친절부터 내려놓읍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