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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Oct 18. 2023

아이의 시선은 엄마의 조각이 되고

11화. '좋은 엄마'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만들어주고


꼬물이었던 아기와 단둘이 집에 있었던 시간의 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아기에게도 육아에도 익숙하지 않았기에 모든 게 착 달라붙지 않고 붕 뜬 느낌이었다. 내 방식대로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있었지만, '사랑한다'라고 말하기엔 뭔가 어색한 그 시간. 작고 연약한 존재라 늘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아직 깊은 연결감이나 친밀감이 느껴지진 않았던 시간이었다. 아이는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점차 길어졌고, 때때로 나를 향해 미소 지어 주었다. 서로를 보며 함께 웃는 시간도 늘어났다. 서로를 마주 본다는 것. 서로의 시선이 만난다는 것, 2~3개월 전만 해도 얼굴도 모르던 우리에게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8개월이 지나며 서서히 나와 아이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게 가능해졌다.(이 것을 '공동주의'라고 한다) 내가 관심가지는 것을 아이도 보려 하고, 아이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나도 함께 보게 했다. 이를 통해 더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게 되었다. 서로를 마주 보고, 웃어주고, 서로의 관심사를 함께 공유하는 것. 타인과의 즐거운 만남의 순간들이다. 


관계에서 '시선'이 중요한 이유는 '나'라는 사람의 퍼즐을 완성시켜 주는 조각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 쿨리(Cooley)에 의하면, 나의 정체성은 오롯이 나 혼자 정의하는 게 아니다. 타인이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내가 나를 이해하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 뿐만 아니라 타인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흡수하여 자신의 일부로 만들기도 한다.  이 것이 '거울자아이론'으로 많이 알려진 개념이다. 타인을 거울삼아 내가 나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좋은 사람이기 위해서는 타인의 눈 속에서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타인이 나에게 지지적이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지지와 애정을 받을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훨씬 이해가 빠르다. 부모 혹은 주변 사람들의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받고 자란 아이를 상상해 보자. 우리는 그 아이가 건강하고 밝은 아이로 자라났을 거라 쉽게 추측한다. 나아가 건강한 자아상을 지녔으리라 상상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만약 아이를 하찮게 여기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스스로 '나는 관심과 사랑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하찮은 인간이야'라는 잘못된 믿음을 자신과 연결시킬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는 스스로를 아껴주지 않고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을 대할 수 있다. 특히나 어린 시절은 자아를 발달시키고 확립해 가는 때이기 때문에 이때 갖게 된 자신에 대한 믿음은 평생에 영향을 준다.


성인인 우리에게도 여전히 타인의 시선은 '나'를 이해하는 중요한 정보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끊임없이 '나'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 속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사람들은 나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는가 등이 모두 내가 나를 인식하는 중요한 재료로 쓰이게 된다.




아이의 시선은 엄마의 자아에 큰 퍼즐조각이 된다


그렇다면 엄마에게 아이의 시선은 어떨까. 아이가 18개월 무렵이 지나 자신과 타인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면, 엄마를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게 된다. 자신의 자리에서 엄마를 바라보며 엄마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해 간다. '우리 엄마는 무서운 사람이야.' '우리 엄마는 천사야.' '우리 엄마는 씩씩한 사람이야.' '우리 엄마는 잠이 많은 사람이야.(접니다...)' 등등 어렸을 때일수록 아주 단순하게 표현되지만, 아이의 마음속에 아주 고유한 엄마의 이미지가 새겨진다.


초등학생 딸아이를 둔 친구가 아이의 숙제장에서  '엄마는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집에서는 무서운 사람이에요. 항상 화가 나 있어요'라고 쓴 것을 보고 놀랐단다. 그 글에서 거짓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놀랐고, 아이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번 더 놀랐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가장 친절하고 상냥하고 싶었는데 실제로 그렇지 못했다. 아이는 아주 투명하게 자신을 보고 있었다. (당연히 내 아이에게 마냥 친절하기가 가장 어렵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하지만, '좋은 엄마'를 완성시키는 건 아이의 시선이기도 하다. 나 혼자 '나는 좋은 엄마야!'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 아이의 눈은 너무나 정직하고, 아이 앞에서 가면을 쓰기란 참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나의 못난 모습, 나 조차도 싫어하는 내 모습을 자주 들켜버리는 게 현실이다.



아이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마법

아이가 나를 바라본다는 것



'아이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의 의미는 이렇듯 가끔은 감시하는 눈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내 말을 따라 하는 아이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지, 아이와 함께 있을 땐 함부로 무단횡단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이가 보고 있기 때문에 더 조심하고, 나를 검열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의 시선은 단지 나를 수동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만은 아니다.


엄마, 아빠는 아이의 시선을 의식하며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꽤 오래전에 들은 얘기다. IMF시기에 회사에서 잘린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매일아침 아이 등교 시간 전에 양복을 입고 출근을 했다는 어느 아버지. 그런데 그 덕분에 무기력을 이겨내고 매일 도서관과 공원산책을 했고,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적은 수입이긴 하지만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을 나태하지 않게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 종종 남편과 언성을 높이며 거칠게 부부싸움을 하던 나의 지인은 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는 절대로 아이 있는 앞에서는 언성을 높이지 않는단다. 그의 표현으로는 '성질을 죽이게 된다.'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조곤조곤 대화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었고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 장점이 있단다. 아이의 시선 혹은 아이의 존재가 만들어낸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그 자체로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게 된다.  물론 인간이기에 약해질 수도 있고, 성질을 부릴 수도 있지만 적어도 아이 앞에서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일 것 같다. 타인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아이의 눈에만 좋은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선한 행위가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철이 든다는 말이 아마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철이 들었기 때문에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생기면 아이의 존재가 엄마, 아빠를 더 나은 사람이게 하는 것이다. 




나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


그리고 늘 더 나은 사람이고 싶어 진다. 그건 아마 단순히 아이가 나를 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가 나를 보는 눈이 키워졌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 전 세상의 중심으로만 살아갈 때에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그럭저럭 살아졌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입장이 되면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타인을 세상의 중심에 놓는 경험을 통해 나 자신을 타인으로서 살필 수 있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을 뗴어놓고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관찰자의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게 되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다. 


관찰자의 시선을 키운다는 건, 나를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당신은 휴대폰(혹은 컴퓨터)으로 글을 읽고 있다. 그런데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알아차릴 수 있다. 숨을 쉴 때도 숨을 쉬는 '나'가 있고, 숨을 쉬는 나를 알아차리는 '나'가 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나'가 바로 관찰자의 시선이다. 다른 말로는 '배경자아'라고도 하며 '메타인지'라고도 할 수 있다(이외에도 다양한 표현들이 있다). 이러한 관찰자 (배경자아, 메타인지)의 시선을 키울수록 자기 조절력이 높아진다. 이 것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열쇠이기도 하다. 


엄마아빠가 되고 철이 드는 것은 아마도 아이를 돌보고 상호작용하며 저절로 이 관찰자의 시선이 커지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이가 아닌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인 것이다. 


나아가 아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 시선을 아이가 자기 자신의 일부로 흡수하는 것처럼 우리가 자신에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엄마의 시선을 내면화해서 건강한 자아를 만들어 가듯, 엄마들도 내면에 따뜻한 시선을 키워냄으로써 건강한 자아상을 만들고, 건강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겉으로 볼 때는 그저 단순해 보이는 육아가 아이와 엄마의 관계 속 서로의 내면에서는 이토록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경이롭다. 엄마의 시선을 통해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나고, 아이의 시선을 통해 엄마는 엄마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고 변화시키고 돌본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만들고 계속해서 상호 영향을 주며 너도 나도 자라나는 것.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부모에게서 심리적으로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나지만, 실은 아이의 내면에도 엄마가 있고, 엄마의 내면에도 아이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마치 새싹이 자라날 때 햇빛과 공기와 빗방울을 흡수하여 자라나기에, 피어난 꽃 한 송이에 모든 것이 섞여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도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켰기에 내면 깊은 곳에서는 결코 경계 지을 수 없는 연결된 존재가 아닌가 한다. 




좋은 엄마로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어린 시절 내가 엄마를 바라보던 시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여덟 살 즈음 낮잠에서 깼을 때 엄마는 허공을 멍하니 보다가 눈물을 흘리셨었다. "엄마 울어?"하고 물으면 엄마는 하품을 했다며 눈물을 쓱 닦았다. 그때 나는 알았던 것 같다. 엄마가 지금 슬프구나. 그때 이후로도 나는 엄마의 감정선을 민감하게 살피며 엄마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때엔 늘 신경이 쓰였다. 그 당시 나는 엄마가 많이 웃기를 (나를 향해 웃어주기를),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어쩔 수 없는 어리고 여린 내 시선은 그렇게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나는 엄마가 되었고, 단둘이 남겨진 집에서 똘망똘망 눈을 깜빡이던 나의 아가는 씩씩한 어린이가 되었다. 나를 보며 '엄마 멋져'라는 표현도 한다. 지나가는 말이라도 멋진 엄마가 되는 날이면 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더 멋져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그러나 내가 '좋은 엄마' 혹은' 멋진 엄마'로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건 진실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래서 애쓰지 않고도 많이 웃을 수 있는 것.


그러니까 내 아이의 시선이 누구보다 나의 행복을 바라는 시선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좋은 엄마로 보이려고 애쓰기 이전에 내가 정말 평안한 지, 행복한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밖으로 나오면 볼 수 있는 시선과 미소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제 이곳 폴란드는 밤이 점점 길어지고 있어요. 11월이 지나면 아마 오후 세시만 되어도 깜깜하겠죠. 해가 길었던 여름에는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 햇빛을 쬐고 바깥 구경을 했는데요. 이제 겨울이 되어 밤이 길어지면 집에서 나 자신과 있을 시간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시선을 바깥에서 내 내면으로 돌려 돌봐주고 안아주어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들 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면서 마음도 잘 보살피는 나날들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집에만 계시면.............. 살찝니다.(?) 

많이 움직이세요! ㅎㅎ







글이 아닌 말로도 나눠요 - 유튜브 채널 소개


1. 김혜령 작가의 채널 [마음의 집]

https://www.youtube.com/@user-hx4mr8qk3s/featured



2. 심리, 명상채널 [마음숨]


마인드트립 이현정 대표님과 마음숨 선생님과 함께 마음과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여행자'의 대화를 기록합니다.


https://www.youtube.com/@heartsum/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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