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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Nov 02. 2023

부족한 엄마가 줄 수 있는 완전한 사랑

13화. 사랑은 어떻게 완전해질까

이전 화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읽는 데에는 어색함이 없지만 이전 글도 궁금하시다면..아래 링크 참고해주세요:)

12화 (아래)
https://brunch.co.kr/@kundera/299  


여전히 작고 연약한 아이에게 주고 싶은


낮동안 씩씩하고 밝은 아이의 모습을 볼 때와는 달리, 잠든 아이를 볼 때면 이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 같다. 갓 태어났을 때의 모습처럼 한없이 여리고 연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조금도 방어할 수 없는 그 모습과 상태. 아무리 고집이 세고 떼쓰기 기술이 늘어났다 해도 아이는 여전히 '약자'다. 이렇게 작고 연약한 아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듬뿍듬뿍 주고 싶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나 또한 여전히 사랑이 필요한 작은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늘 아이에게 주는 사랑에 대해,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물론 현재의 배우자와도 사랑을 나누고 또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왔지만, 아이에게 엄마로서 줄 수 있는 사랑은 더욱 조심스럽다. 작은 실수만으로도 아이에게 큰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초심자'인 게 분명하므로 내가 주려는 사랑의 방식이 과연 아이에게 좋은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자주 고민하게 된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사랑을 어떻게 줄 수 있을지. 또, 아이가 어떤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지를. 



그냥 사랑으로는 안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추앙'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한동안 그 단어가 유행처럼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임팩트가 강한 표현이었다. 밤이면 술만 마시는 남주인공 '구 씨'를 눈여겨보던 여주인공 '미정'은 할 일을 준다며 말한다.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사랑으로는 안돼. 추앙해요."




그리고 미정은 그 추앙을 몸소 보여주기 시작한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기분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구 씨와는 달리 그녀는 꿋꿋하게 또 담담하게 그 사람의 안부를 묻고 챙긴다. 간섭이나 자기 뜻을 강요하는 일 없이 그저 그를 생각하고 관심을 가진다. 구 씨는 여전히 밤이 되면 술을 마시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미정은 그런 그를 아주 귀하고 소중한 사람인 것처럼 마음을 쓴다. 뜨겁거나 유난스럽지 않았지만 한결같고 의연했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그 일관된 관심은 구 씨를 흔들었고, 무엇보다 미정 스스로가 더 많이 변해간다는 게 인상적이다. 


매일같이 보여준 그 모습은 아주 큰 마음에서 흘러나온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세상에 흔히 볼 수 없는 사랑의 방식이 분명해 보였다.


익숙지 않은 '추앙'이라는 단어가 많은 이들 입에 오르내릴 만큼 파장이 있었던 것은 요즘 우리의 어떤 갈증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처받지 않으려 계산과 방어가 가득 차있는 연애. 그리하여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결혼. 혹은 기피하게 된 결혼. 어렵사리 결혼에 도달하게 된다고 해도 그저 게임과 도박에 지나지 않는 모습들도 많이 보게 된다. 단지 사랑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요즘은 친구관계도 직장에서도 상처받는 사람들이 넘쳐나 저마다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이 악순환이 깊어진 것은 우리 마음에 무언가 빠져있기 때문은 아닐까.  미정이 보여준 것처럼 조건 없이 내어주는 사랑과 같은 커다란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 손해나 상처를 따지느라 눈과 마음이 쪼그라져 버린 걸지도.


그래서인지 뉴스기사나 주변이야기를 듣다 보면 변함없이 품어주는 큰 마음이 절실해진다. 추앙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건 저마다의 그런 사랑에 대한 갈증이 있었으리라. 우리는 관계 속에서 늘 채워지기를 바라니까.


한평생 나는 나 아닌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데 그 '사랑'이 빠져있으면, 사르트르가 말했듯 타인은 지옥일 뿐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또 어른으로 살아가는 긴긴 시간 동안에 우리는 세상에 널린 그냥 사랑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크게 품어질 수 있는 진짜 사랑이 필요하다.



배우고 고민하고 성장할 뿐


이제 다시 육아를 하는 엄마의 입장으로 돌아오자.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위와 같은 사실이 오히려 너무 큰 부담으로 느껴진다. 이론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추앙과 같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겠는데 과연 내가 내 아이에게 그런 큰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언제나 나의 희생과 헌신은 부족해 보이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며 겨우 지키고 있는 엄마의 자리다. 아이 앞에서 자꾸 소진되는 나를 보면서 왜 아이에게 더 내어줄 수 없는지 좌절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포커스가 잘 못 맞춰져 모유수유를 해야만, 이유식을 손수 만들어주어야만, 다양한 전집과 장난감을 지원해 주어야만, 금수저에 능력이 좋은 엄마여야지만 완벽한 사랑을 줄 수 있으리라고 오해하는 일도 많다. 그러니까 사랑을 너무 거대하게 생각해서 무력해하거나, 눈에 보이는 것들에 연연해서 수많은 정보와 떠다니는 이야기 휩쓸려 다니는 게 요즘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한낱 부족한 인간일 뿐인데 ' 아이에게 완전한 사랑을 준다는 게 어렵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금쪽이 얘기에 몰입하다 보면 나 때문에 혹여라도 아이에게 문제와 결핍이 생길 것만 같은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그러나 이 '사랑'이라는 게 받는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거대하고 큰 힘을 발휘하는 게 맞지만, 주는 입장에선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갓난아기 시기에 부모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의 욕구에 맞춰 모든 에너지가 집중된다. 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 쪽잠을 자면서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웠나 싶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 상황에 놓이면 그렇게 한다.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오고 '잠 좀 편하게 자보고 싶어'라고 외쳤던 그 시간 자체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아이가 울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면서 안아서 흔들어 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그래도 달래 지지 않아 무엇이 잘못된 걸까 고민했던 시간, 아파서 열이라도 나면 벌서듯 밤을 지새웠던 시간들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싶다. 


다만, 아이의 자아가 커지고 발달해 나가면서 마냥 주기만 하는 게 어려운 상황들이 생겨나고 자꾸만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아이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주고 싶다. 아이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무리 서투를지언정 그 서투름 때문에 '저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보통의 엄마들을 통해 아이는 완전한 사랑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엄마들의 시행착오 속에서 아이들은 쑥쑥 자라난다. 게다가 아이는 사랑을 받는 데에 능력자다. 엄마아빠의 눈빛과 말투, 손길에서 그런 애정을 쏙쏙 빨아들여 자신의 양분으로 삼는다. 아이의 그런 능력 덕택에 부족한 엄마의 사랑은 완벽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 과정에서 엄마라는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건 변함없이 존재자체로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 실수를 최소화하는 것. 계속해서 엄마 자신을 살피는 것일 테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주는 것.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보는 것이다. 


성숙하고 완전해서 줄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점차 성숙한 사랑을 줄 수 있다. 또한 그 사랑을 쏙쏙 흡수하고 다시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는 또다시 새롭게 힘을 낼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의 어려움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한 편, 오히려 엄마 자신을 다독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자책하거나 좌절하는 데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부족한 점에만 연연하느라 아이가 주는 사랑을 못 보고 지나치는 일은 없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에서


주면서 더 커지는 사랑


무엇보다 육아를 통해 나를 키워가는 '나'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면 의미 있는 경험이자 기회이자 과정이 되는 것 같다. 받는 데만 익숙했던 내가 넘치게 사랑을 줘보는, 서툴게나마 고민과 좌절을 거듭해 사랑을 애써본 경험은 나를 자라나게 하는 게 분명하니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추앙을 받은 구 씨보다 추앙을 결심하고 주기 시작한 미정이 더 크게 변화한 것처럼, 사랑은 받는 쪽만큼이나 주는 쪽이 훨씬 채워지고 변화되는 경험이 되고 만다는 게 의미가 있. 같은 맥락에서 엄마들도 매일이 어렵고 크고 작은 실수의 연속이지만 매 순간 새로 결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큰 사랑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믿는다.


아이는 내 품에 있는 한 여전히 '약자'임을 다시 곱씹어 본다. 성인이 되기까지는 어쩔 수 없이 나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나의 사랑을 먹고사는 작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맑은 사랑을 주기 위해 마음을 닦아 본다. 서투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도 모르게 돋친 가시들을 다듬어 본다. 그런 작은 노력이 내가 매일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기에.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 또한 오늘도 엄마로서의 자신의 부족함에 좌절하는 날이었을지 모르겠다.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를 미워하기도 했다가, 다 품어주지 못한 자신을 다그쳐보기도 했다가 밤이면 그마저도 지쳐버려 다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육아는 언제쯤 편해지는 걸까 정답 없는 질문에 기대를 걸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자책과 후회는 잠깐 접어두고 잠든 아이에게라도 마음을 전해보자.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애씀을 내려놓고 지금의 서투른 마음 그 자체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줄 수 있는 사랑은 그렇게 완벽할 수도 세련될 수도 없을 테니까. 확신하건대 수많은 실수들과 부족함 중에도 그 마음은 꼭 아이 마음에 가 닿으리라 믿는다. 아이는 사랑을 받는 데에 있어서 능력자니까. 



13화 끝.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도 글로 만나게 되어 반갑고 또 감사합니다.  연재는 13화에서 잠깐 멈추고 쉬어가려고 합니다. 이전에 말씀드렸듯 한국휴가를 다녀오고 재정비를(힘이 조금 딸립니..다..) 한 후 12월에 다시 이어가려고 해요. 14화부터 이어지게 될 글은 '엄마로서의 자기돌봄'에 포커스를 두고 자기돌봄의 방법들을 하나씩 소개할까 합니다. 명상을 비롯해 마음을 돌볼 수 있는 기술(?)들을 나누어 보고 싶어요. 그동안 건강하게 몸과 마음 잘 챙기면서 겨울을 맞이하고 계시기를 바랄게요. 연재는 쉬어가지만 다른 글과 소식을 통해서 또 만나요. 






글이 아닌 말로도 나눠요 - 유튜브 채널 소개


1. 김혜령 작가의 채널 [마음의 집]

https://www.youtube.com/@user-hx4mr8qk3s/featured



2. 심리, 명상채널 [마음숨]


마인드트립 이현정 대표님과 마음숨 선생님과 함께 마음과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여행자'의 대화를 기록되는 곳입니다. (제 채널은 아닙니다^^)


https://www.youtube.com/@heartsum/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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