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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Dec 15. 2023

육아난이도를 낮추는 '알아차림'

15화. 더 편안한 육아를 위한 마음 연습



딸아이가 17개월 되던 즈음에 해외로 건너와 어느 정도 적응이 되기까지 1년 반정도가 내겐 꽤나 어려운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서툰 살림, 난이도가 높아진 육아, 차마 놓지 못해 병행하던 원고와 상담일까지.. 무지와 서투름 속에서 몸은 쉽게 지치고, 마음은 불안정하고 쉽게 날카로워지거나 혹은 너무 무기력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했던 것들이지만, 그때는 그걸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때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마도 이런 메시지들이 흘러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네가 아이를 망칠지도 몰라! 아이가 위험해! 너 제대로 해! 안 그럼 큰일 나!!!'와 같이 불안을 부추기는 목소리들.


무방비상태로 그런 목소리에 끌려다니다 보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뒤덮었다. 분명 아이를 사랑하는데도 아이가 너무 미워지기도 하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이 상황이 얼마나 축복인지 알면서도 작은 불편함이나 소소한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비관했다. 남편도 밉고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는 더 밉고. 그럴 때면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이 아이는 엄마를 잘못 만난 건 아닐까 하며 어둠의 늪 속으로 빠져들어 모든 의욕이 다 떨어져 버렸다.


어느 정도 정신이 들었을 때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정말 위험해지겠구나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을 다 동원했다. 관련 책을 찾아 읽고, 명상과 묵주기도, 백팔배와 운동, 상담을 받고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모든 게 한방에 효과적이진 않았지만 모든 게 조금씩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좌절하고 또 노력하며 시간은 흘렀고 세돌이 지나니 좀 할만해졌는지 둘째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인간이란....)


육아를 하는 누군가가 덜 예민하게 육아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방법을 얘기해 달라고 하면 '알아차림'을 가장 먼저 알려줄 것 같다.  이전화에서 이야기했듯 육아를 하며 지나치게 예민하고 신경이 곤두서있다는 것은 불안의 뇌인 편도체가 과하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이성의 뇌인 전두엽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그러니까 과활성화된 편도체를 진정시키고, 전두엽을 활성화시키면 내 몸은 위험신호를 끄고 안정된 상태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육아를 할 수 있다. 불필요하게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낮출 수 있다. 알아차림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해 보자.




# 등원준비하며 급발진하지 않기 - '알아차림'


등원준비는 매일 치르는 작은 전쟁이다. 집에서 나가야 할 시간은 정해져 있고, 챙겨야 할 생명체는 둘이다. 나와 아이. 2~4살경의 아이는 대체로 협조하지 않는다. 협조하지 않는 것이 그 시기의 아이들이 맡은 일일 것이다. 내 아이도 물론 맡은 바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 아이를 구슬려 세수를 시키고 양치를 시키고 옷을 입히고 머리를 묶어주고 그 와중에 나까지 챙기고 있노라면 마음은 마구 조급한 상태가 되고, 아이의 작은 일탈에 속이 터지려고 한다. (갑자기 다른 옷을 입겠다고 떼를 쓴다거나, 뜬금없이 텔레비전을 보겠다고 한다거나, 물감놀이를 하겠다고 하는 등) 시간에 맞춰 가까스로 준비했는데 신발을 신고 나가려다가 갑자기 응아가 마렵다고 하면....! 그저 웃는다. 하지만 마음은 몹시 동요된 상태.

여하튼 그런 정신없는 시간에 자칫하면 너무나 예민해지고 아이를 다그치기가 쉽다. 그럴 때 순간순간 나는 알아차린다. '아 내가 시간을 맞추려고 마음이 급하구나. 마음이 급해서 아이를 재촉하려고 하는구나' 알아차리며 호흡을 한다. 때때로 '아 내가 아이를 얼른 유치원에 보내버리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마음도 알아차린다. 후다닥 허둥지둥 우당탕탕 와중에 잠깐 내 마음과 이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급발진하려는 나를 조금 달랠 수 있다. '아 위험한 건 그저 내 마음뿐이구나.'  유치원에 조금 늦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아이가 늦장 부린데도 세상이 무너질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상황과 내 마음에 갇혀있으면 '신속하게 등원준비를 해야 한다'라는 규칙에 어긋나는 모든 상황과 일들을 미워하게 된다.


아주 잠깐이라도 탁! 멈추고. 내가 어떤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전부다. 그러니까 알아차림은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때 평가와 판단을 내려놓고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보통 상념이 쏟아질 때 우리는 그 상념 속에 휩쓸려가거나 헤매게 된다. 우울한 감정이 올라올 때 그 감정에 압도되면서 '우울함=나'인 상태가 된다. 분노는 또 어떤가? 순간적으로 화가 치솟아서 버럭 하는 순간 우리는 나 그 '분노'가 이끄는 대로  언성을 높이고, 행동이 거칠어진다.  그런데 알아차린다는 것은 '내가 지금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구나.' 하고 아는 것이다. '우울감이 올라오는구나' 하고 아는 것이다. '내면에 커다란 분노가 일어나고 있구나' 하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는 것이다. 내 내면에서 한걸음 물러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판단과 평가 없이, 단지 관찰하며 아는 것이다.


알아차리는 순간, 내가 경험하는 것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경험하는 나'와 '관찰하는 나' 사이의 거리이다. 이 거리는 안전거리이다. 이 거리를 유지하면 우리는 생각이나 감정에 휩쓸려 가지 않고 그저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또는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알아차림은 일상 속 언제나 할 수 있는 작은 명상법이다. 매 순간 할 수 있고 매 순간 도움이 되지만 등원준비시간과 같은 마음이 쉽게 조급해지고 감정에 휩쓸려가려고 할 때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소용돌이치고 있는 내면을 알아차리고 잠깐 호흡하면 아이가 다시 보인다. 등원준비를 방해하는 악동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진 한 존재일 뿐이다. 1~2분 정도 아이의 요구를 들어준다거나 조금 놀아주다가 등원해도 큰일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그게 등원 후의 내 마음이 더 가벼워지는 길이라는 것도.




# 아이를 재우며 나를 돌본다 - '바디스캔'


에너지가 넘치는 내 딸아이는 잠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조금만 더 놀겠다고 방에 들어가지 않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겨우 잠자리에 누우면 한바탕 이야기파티가 열린다. '서우랑 유빈이가 놀이터에 간 얘기 해줘.' '유빈이가 타요 타고 간 이야기 해줘.' '코끼리랑 기린 이야기 해줘' 등등의 이야기 요청을 어느 정도 받아주고 (텐션을 잠재울 수 있는 나른한 스토리 필수) 이제 잘 시간이라고 자는 척을 해도 아이의 텐션은 한참 후에야 진정이 되고 잠이 든다. 어떤 날은 30분 넘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잠들기도 한다.


네이버에 '잠이 잘 안 드는 아이'로 검색을 하다가 웃픈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들이 아이를 재우다가 버럭 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는 것. 나 또한 아이가 내 몸 위를 구르는 장난을 치다가 아랫배를 가격했을 때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던 기억이 났다.


아이를 재우면서도 알아차림의 힘을 빌릴 수 있다. 내 신체 곳곳을 알아차림 할 수 있는 '바디스캔'이다. 누워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어쩌면 훨씬 좋은 여건이라고 볼 수 있겠다. 편안한 자세로 누워 (물론 아이가 편안한 자세를 방해할 수 있겠지만^^) 심호흡을 하며 온몸에 긴장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다. 몇 번의 호흡을 하면서 신체 어딘가에 긴장이 남아있는 곳은 없는지 살펴본다. 호흡을 인위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이완이 되면 자연스럽게 들숨과 날숨이 길어질 것이다.


몸이 이완된 상태가 된 것 같다면 이제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내려오며 차근차근 몸의 감각을 느껴본다.


나의 주의를 정수리 -> 뒤통수 -> 이마 -> 눈-> 코-> 뺨 ->입술 ->턱 -> 목 -> 등 -> 가슴-> 배 -> 허벅지 -> 무릎 -> 종아리 ->발목 -> 발등 -> 발가락 -> 발바닥으로 천천히 옮겨가며 세심하게 감각해 본다. 눈을 감고 신체를 관찰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물론 주의를 옮겨가는 순서를 발바닥부터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도 방법이다. 주의를 옮겨가면서 그 신체부위에 긴장감이나 무게가 느껴진다면 날숨에 긴장을 내보낸다고 생각하면서 호흡을 하면 도움이 된다.  


이렇게 바디스캔을 하고 있으면 몸이 이완돼서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 나의 포커스가 아이한테 가서 '요 녀석 언제 자나!!'에만 몰두되어 있는 게 아닌, 나의 감각에 있으므로 그 자체로 좋다. 아이는 어떤 날은 일찍 잘 수도 있고, 어떤 날은 늦게 잠들 것이다. 졸리면 자고, 에너지가 남아있다면 좀 더 뒹굴거리다가 잘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얘가 얼른 자야 내가 육퇴를 하는데!!' 혹은 '얘는 잘 때까지도 힘들게 하는구나'로 가 있으면 잠들지 않는 아이를 미워하고, 내 몸은 더 피곤하게 느껴진다. 내 신체가 편안하게 누워있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생각 때문에 마음이 괴롭고 때로 화가 나니 얼마나 불필요한 감정소모인가.


아이를 재울 때마다 아이를 재우는 시간이 아닌 내 몸의 이완을 위한 시간이라 생각하며 바디스캔을 해보자. 하루종일 긴장해 있었던 몸을 진정시키고, 하루 중 마지막으로 아이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바디스캔을 세 번쯤 반복하다 보면 아이보다 내가 먼저 잠들기도 하고, 어느새 잠든 아이를 보게 되기도 한다. 그 또한 작은 행복이지 않을까.


핵심은 아이와 나 사이, 나와 나 사이의 거리두기  -  나 자신을 타인으로 대하기


우리는 보통 아이에게서 거리를 두지 못해 아이의 감정에 휩쓸리는 일이 잦다. 아이의 짜증에 같이 짜증 내는가 하면, 아이가 속상해할 땐 아이보다 더 속상해하기도 한다. 물론 그 또한 우리가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한 공감능력이겠지만 너무 밀착되어 있을 땐 아이의 경험에 따라 일희일비해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니 정도를 지키는 것은 아이와 나를 위해 꼭 필요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아이를 타인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아이에게 꼭 필요한 말과 행동을 해줄 수도 있다.


그런데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인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거나, 감정에 완전히 압도되어 '불안=나' '분노=나'상태가 되어있을 때 의도치 않은 선택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 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 그러니까 내 내면에 일어나는 일은 언제든지 관찰할 수 있다. 관찰할 수 있다는 건 '경험하는 나'와 '관찰하는 나'가 분리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나 자신을 타인으로 대할 수 있을 때 내 경험과 내면의 사건들로부터 나를 건강하게 지켜낼 수 있다. 아이를 타인으로 대하지 않을 때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똑같다는 것을 명심하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려보자. 이 글을 읽으며 이러저러한 감정을 느끼는 내가 있고, 그러한 자신을 알아차리는 '나'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와 나 자신 사이에 생기는 거리, 이 거리가 나를 덜 예민하게 해주는 안전거리다.



마치며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아이를 안전하게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일이 나를 너무 위험한 상태에 두지는 않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물론 육아에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돌보든 다 정답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아이가 편안하길 바라는 만큼 나 스스로에게도 그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조금 더 편안하게, 안정된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는 것이 결국 나와 아이, 또 다른 가족구성원들이 모두 편안해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늘 불안 속에서, 조급하게, 정신없이 하던 육아에서 조금이라도 이완된 상태로 육아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아이가 주는 기쁨과, 아이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 아이에게서 또 나 자신에게서 거리를 두고 '알아차림'을 습관화하며 틈틈이 나를 이완시키기.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꼭 기억하며 자신을 도울 수 있기를 바라며.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예정대로라면 목요일에 업로드가 되었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한국에도 폐렴이 유행이라고 들었는데 이 곳에도 비슷한 바이러스가 있는 건지 아이가 고열과 심상치 않은 기침으로 몇일동안 유치원을 못나갔네요. 오늘에야 복귀를 한 아이 덕분에(?) 이번주를 넘기지 않고 올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글에 나와있듯 아이를 키우면 새롭게 알게된 저의 연약함(?)을 돌보기 위해 이런저런 수행을 하게 되곤하는데요. 실험하듯 이런저런 방법을 적용해보며 마음의 변화를 살펴보다보면 참 재밌는 것 같습니다. 훨씬 다양한 내면의 경험을 하게 해준 아이에게 고맙기도 하고요. 여전히 초보인 저는 앞으로도 한계나 위기에 봉착하고 또 이 위기를 지혜롭게 넘겨보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되겠죠. 그러다가 아이가 훌쩍 커있을 때 꼭 저 자신도 많이 커있었으면 좋겠어요 ㅎㅎ

<아이라는 타인을 마주한 여자들에게> 연재는 20화 예정이었는데요. 많은 고민끝에 오늘 업로드하는 15화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감사하게도 하반기 이후에 여러가지 귀한 일들이 주어졌는데 공부가 많이 필요한 일이라 시간이 꽤나 필요하더라고요. 열심히 병행해보려 했지만 제 한계를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아이라는 타인을 마주한 여자들에게> 책 작업은 다시 쉬었다가 적절한 때에 진행하는 것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아.타.인> 연재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많이 느리지만 반드시 완성해서 소식 전할게요. 그럼 이제 연재가 아닌 다른 글로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글이 아닌 말로도 나눠요 - 유튜브 채널 소개


1. 김혜령 작가의 채널 [마음의 집]

https://www.youtube.com/@user-hx4mr8qk3s/featured



2. 심리, 명상채널 [마음숨]


마인드트립 이현정 대표님과 마음숨 선생님과 함께 마음과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여행자'의 대화를 기록되는 곳입니다. (제 채널은 아닙니다^^)


https://www.youtube.com/@heartsum/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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