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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Dec 07. 2023

육아하는데 예민하지 않을 재간이 있나

14화. 엄마도 동물이다




#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던가?


남편과 7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고, 결혼 후에도 5년은 아이 없이 둘이서 알콩달콩(?) 살았다. 그 시간 동안 딱히 우리는 서로에게 크게 화를 낼 일이나,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일이 없었다. 물론 나는 호르몬의 노예인지라 시기에 따라 짜증이 차오르고 빠져나가기를 반복했지만 남편한테 표현할 만큼은 아니었다. 워낙에 어린 시절 부모님이 자주 다투시는 장면을 목격해 온 나로서는 나의 부부생활 또한 걱정되고 조심스러웠었다. 하지만 결혼한 지 3~4년이 지나면서는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며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 러... 나... 아이가 생긴 후로 달라졌다. 나는 내 안에서 뚫고 나오려는 맹수를 숨길 수가 없었다. 일과 살림과 육아 안에서 내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벅찼고, 때때로 속수무책으로 내 감정에 압도당해야 했다.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화와 짜증은 남편을 향하기도 했고, 그보다 더 높게 솟아오르는 불안감은 폭주하듯 나를 들쑤셔 놓았다. 


쉽게 예민해지는 나를 용납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나? 당황스러웠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고 나니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날카로운 말을 내뱉거나, 아이에게 내 감정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하기는 싫었다. 그런 나 자신을 보며 나와 내가 잘 지내기란 더더욱 어려웠다. 결국 나의 생각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로 나아갔다. 한동안 '나는 왜 이모양일까'에만 골몰하다가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을까?'로 나아가니 그 자체로 좀 나아지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스스로에 대해 

"얘는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 "왜 이런 걸로 짜증이 나는 거지?" 

->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면 나아질 수 있을까?"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찾아 읽고 선배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방법이든 단번에 나아지게 하는 건 없었다. 육아는 장기전이고 명확한 답이 있는 수학문제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엄마가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의 종류와 원인이 달랐다. 그래서 찬찬히 나를 살펴보며 조금씩 나아가기로 했다. 방법을 구하고 노력하고 고민하고 연습하는 만큼 더 나은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 엄마도 동물이다 

 

우선은 내 모든 감정과 행동들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이에게 버럭 하는 말과 행동을 긍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스트레스를 받거나 짜증이 나거나 아이에 관련한 걱정과 불안, 부담감 등 내면의 모든 감정들이 육아를 하면서 흔히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성적인 존재이기 이전에 감정을 가진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아이를 잘 관찰해 보라. 특히 아직 사회화가 덜 된 영유아 시기의 어린아이들은 잘 웃는 만큼 잘 울고 뜻대로 안 되면 짜증 내고 소리 지르고, 그러다가도 금세 또 해맑은 모습을 보인다. 어른이라고 다를까? 단지 겉으로 조금 더 다듬어졌을 뿐 마음은 다르지 않다. 어른은 '회피'와 '억압'과 같은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데에만 능할 뿐 아이와 다름없이 내면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널뛰기하듯 오르락내리락한다. 아직 필터를 갖추지 않은 딸아이를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아, 나도 아이와 똑같은 사람인데!  아이가 짜증 내고 화나는 만큼 나에게도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다. 아이와 나는 똑같은 생명체, 아니 동물이다. 아이가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떼를 쓰는 것처럼, 엄마들도 뜻대로 안 되는 일 앞에서 평온할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내 맘대로 안 되는 일 때문에, 내 뜻과 다른 타인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던가. (그중 제일 괴로운 건 마음처럼 안 되는 나 자신^^;; )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른이고 또 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꽤나 성숙하고 의연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는 것이다. 아이와 다르게 나는 고상하고 세련된 감정만 있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컨트롤되지 않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났던 것일 테다. 어른스럽지 못한 나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어른스러운'이라는 표현은 참 가혹한 표현이다.  모두가 마음 안에 철들지 않은 아이 한 명쯤은 데리고 사는 법인데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강박 속에 스스로를 다그치고 미워하게 되니까. "어른" "부모"라는 이름은 이상하게도 의무와 책임만 가득하게 만든다. 부모라는 이름표를 다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엄격해져 버린다. '넌 엄마라는 사람이 왜 이모양이야.' '애도 아니고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야.'라고 하면서. 


엄마의 상태를 조금만 더 이해해 보자. 우리 즉, 인간이라는 동물은 욕구를 가진 존재다. 기본적인 욕구 즉, 먹고 자는 건 매일매일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살아가려면 채워져야 할 기본적인 욕구. 이 것이 결핍되면 생존에 문제가 생긴다. 그렇기에 신체는 이 부분이 결핍되면 신호를 보낸다. "밥 줘!!" "재워줘" 하면서 배고픔과 졸림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이 것을 예민해지는 것으로 감각할 수 있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쉽게 짜증이 난다. 특히 아주 어린 아기를 돌보는 부모의 경우 이런 기본적인 욕구가 극도로 부족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잠이 부족하고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들다. 결핍이 쌓이면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린다. 그렇게 항상 예민한 상태로 육아와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다거나 해로운 것을 입에 넣지 못하도록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그런 상황을 빨리 포착하고 바로 대처할 수 있기도 하기에 각성상태가 지속된다. 


이러한 이유로 (기본적인 욕구 결핍 + 아이의 안전 살피기)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마음은 평화롭고 차분할 수가 없다. 느긋하고 나른한 상태로는 결코 기민하게 아이를 살필 수가 없지 않겠는가. 당연히 더욱 동물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를 돌보는 행위 자체가 몹시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것이다. 고차원적이고 우아한 학문 혹은 예술 같은 게 아니다. TV나 SNS 속에서 아름다운 육아의 장면들은 거의 허구에 가깝다. 때문에 결코 그런 것들을 보며 착각해선 안된다. 



# 예민한 뇌 이해하기


몹시 동물적인 상태가 되어있다는 것. 이 것은 우리 뇌에서 편도체가 몹시 활성화돼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편도체는 '포유류의 뇌'라고 불리는 변연계에 위치한 부위이며 위험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영역이다. 생명의 위협을 감지하여 경보를 울리는 경보체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편도체가 보내는 신호인 것이다. 불안감이라는 신호를 받으면 우리는 불안을 낮추기 위한 대처를 할 수 있다. 원시시대에는 그 불안을 통해서 맹수나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이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 벼락치기 공부를 한다거나, 발표준비를 열심히 한다거나, 취업준비를 열심히 해서 밥벌이를 하는 식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편도체 때문에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주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지만, 이 편도체가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계속 긴장 속에 있으니 몹시 피곤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뇌에는 불안을 잘 조절해 주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전두엽이 있지만, 피곤한 상태에서는 전두엽이 제대로 작동하기는 어렵다. 피곤할수록 우리는 더 원시적인 상태가 되어 편도체의 과활성화 상태에 끌려다닐 뿐인 것이다. 


그런데 그게 바로 육아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아직 스스로를 돌볼 힘이 없는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뇌는 편도체가 아주 적극적으로 작동을 한다. 뇌에서 계속 '위험해 위험해!!!! 정신 차려!!! 니 자식이 위험해!!!!' 이런 메시지를 계속 주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밥이 넘어갈 리가 없다. 잠이 올리가 없다. 얼마나 예민해져 있겠는가. 날카로워져 있으니 부부싸움도 더 쉽게 촉발될 것이다. 지속되다 보면 에너지는 지나치게 소진되어 우울증, 무기력이 스멀스멀 덮치기 좋은 상태가 된다. 


우리의 이런 예민해져 있는 상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문제는 '과도하게' 긴장하고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로 지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감정조절도 어렵고 자신을 건강하게 챙기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에 아이와 자신을 위협하는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린아이를 돌보는 엄마에게 필요한 건 과활성화된 편도체를 진정시키고, 편도체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전두엽을 활성화시키는 연습이다. 지나치게 두려움이 높아져 있는 상태에서 적절히 필요에 따라 긴장하고 충분히 이완하고 피로에서 회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너무 예민하고 너무 감정적이라고 자책하지 말자. 개와 고양이도 자기 새끼가 위험에 처하면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우리도 그저 내 자식을 건강하게 지켜내고 싶은 평범한 어미일 뿐이다. '나는 왜 이모양일까' '나는 왜 이렇게 감정컨트롤을 못할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비난은 나를 더 소진시키기만 한다. 육아만으로 충분히 힘든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 


돌이켜보면 나는 나 자신을 과대평가했던 것 같다. 아주 어른스럽게! 이성적으로! 모든 걸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과신했던 것이다. 숙제하듯 직장일하듯 그렇게 해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아이다. 아이와 똑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육아는 처음이고 살림도 능숙하지 않은 상태였다. 차츰 나는 스스로가 나약한 인간이고 동물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된다. 나를 채찍질하기보다는 강형욱 씨가 강아지를 조련하듯 나를 조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과신하는 대신 낮은 자세로 나를 돌보고 채워가기로 한다. 그렇게 적당히 힘이 빠지니 길이 보인다. 마음을 내려놓고 나에게 필요한 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연습들은 정말로 큰 도움이 되었다. 


다음화(15화)에서는 편도체를 진정시키고, 전두엽을 활성화하는 실질적인 방법들에 대해 나누어보려고 한다. 내가 실제로 연습하고 매일 사용하고 있는 방법들, 그리고 도움이 되었던 마음의 태도에 대해서. 아주 작지만 나의 (심리적) 육아난이도를 낮춰준 고마운 팁들을 다른 분들과도 나누어 보고 싶다.



14화 끝.




안녀엉~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모두들 잘 지내고 계셨지요?  연재를 8월쯤 시작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12월이 되었네요. 여기 폴란드는 온통 하얀 세상이 되었어요. 시간이 이리도 빠르게 흘러갑니다...(또륵) 앞으로 17화까지 나눌 글은 육아하는 엄마들의 마음 돌봄에 대한 얘기입니다. 육아를 하면서 예민해져 있는 엄마들의 몸과 마음을 이해해 보고 어떻게 돌볼 수 있을지, 불안하거나 욱하는 마음을 어떻게 가라앉힐 수 있는지 등을 나누어 보려고 해요. 그렇게 나누고 나면 이제 새해가 찾아오겠군요. 모두들 따뜻하고 건강한 12월 되시길 바라며.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



글이 아닌 말로도 나눠요 - 유튜브 채널 소개


1. 김혜령 작가의 채널 [마음의 집]

https://www.youtube.com/@user-hx4mr8qk3s/featured



2. 심리, 명상채널 [마음숨]


마인드트립 이현정 대표님과 마음숨 선생님과 함께 마음과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여행자'의 대화를 기록되는 곳입니다. (제 채널은 아닙니다^^)


https://www.youtube.com/@heartsum/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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