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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만다 Sep 18. 2024

2. 동글동글 미트볼 토마토 파스타

강남구 <유아왓유잇> 코엑스점

아주 어릴 적 나는 고기 마니아였다. 가족들이 모여 내 어릴 적 이야기를 할 때면 내가 고기를 아주 좋아했다는 것은 여전히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소재다. 내 고기 사랑에 대해 가족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에피소드가 여럿 있는데, 몇 가지는 ‘내가 그랬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중 한 가지는 꽤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가족 모두가 잠든 깊고 고요한 밤이었다. 저녁 식사 때 먹었던 김치찌개 속 야달 야들한 돼지고기가 또 먹고 싶었던 나는 쉬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짧은 고민 끝에 이불을 박차고 조용히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부모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잠귀가 밝은 엄마가 혹여나 깰까 봐 요동치는 심장을 살살 달래 가며 가스레인지 위 냄비 뚜껑을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열었다.


“달그-락”


얕은 수면 위로 돼지고기 한 조각이 빼꼼하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돼지고기가 더욱 간절해졌다. 휴대폰도 없던 시기, 의지할 불빛 하나 없던 나는 더듬더듬 손가락 감각을 따라 수저통 안 숟가락 하나를 꺼내 들었다. 한 손엔 냄비 뚜껑을, 한 손엔 숟가락을 들고선 나만의 만찬을 즐길 준비를 마쳤다. 숟가락으로 찌개를 휘휘 저어 가장 크고 맛있어 보이는 돼지고기 한 조각을 찾아 조심스럽게 건진 후 입속으로 쏘옥 넣었다.


‘맛있다.’


식다 못해 차디찼던 돼지고기가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맛있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마음 같아서는 찌개 속 고기를 남김없이 다 먹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엄마의 등짝 스매싱으로 아침을 맞이할 것이 뻔했다. 개중에서 크고 튼실한 놈들로 두, 세 개 더 골라 먹은 뒤 아쉬운 마음을 갖고 방에 돌아가 자리에 누웠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너 그때 밤에 몰래 일어나서 돼지고기 건져 먹고 그랬잖아.”


한 밤 중 나 홀로 만찬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줄 알았지만 엄마는 한 참 뒤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용한 숟가락까지 깨끗하게 세척했는데, 엄마는 어떻게 아셨을까? 엄마에게 물었지만 엄마는 아직까지 그 비밀에 대해 말씀해주지 않으셨다.






그렇게 고기를 사랑했던 내게도 ‘미트볼’이라는 것은 미지의 영역, 생소한 요리였다. 미트볼은 다진 소고기에 양파, 달걀 등을 넣고 동그랗게 빚어 만든 것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소스를 넣고 졸이거나 스파게티에 넣어 먹는다. 우리나라의 떡갈비와 비슷하지만 미트볼은 굴러갈 듯한 동그란 형태라는 점, 떡갈비는 달짝지근한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구워 낸다는 점 등에서 다르다. 내가 미트볼을 처음 만난 건 대학 시절 집 앞 편의점에서였다. 서울로 상경해 4평가량의 작은 자취방에서 지내던 나는 하루 삼시 세끼를 학식에서 때우거나 학교 주변의 음식점에서 사 먹곤 했다. 그러다 간혹 밥을 해먹기도 했는데, 대부분 계란 후라이와 스팸구이가 밥상에 올랐다.


그날도 평소처럼 편의점에서 스팸 통조림을 사려고 인스턴트와 레토르트 식품 코너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우연히 먹음직스러운 붉은 소스를 얹은 동글동글한 모습의 녀석을 발견했다. 녀석 위에는 진한 노란색 배경에 역시 붉은색 글씨로 ‘미트볼’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옆 선반의 스팸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노랗고 붉은 포장의 레토르트 미트볼 하나를 집어 들었다.


노랗고 붉은 포장의 레토르트 미트볼


자취방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했다. 집에서 엄마가 보내주신 쌀로 밥을 하고 역시 엄마가 담가 보내주신 김치를 덜어 전주 본가에서 가져온 주황색 접이식 테이블을 펴 상을 차렸다. 마지막으로 좀 전에 샀던 미트볼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심상치 않은 냄새에 내심 기대가 되었다. 진한 토마토소스의 자극적인 향이 코끝과 침샘을 자극하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뜨끈한 밥을 한 술 뜨고 그 위에 미트볼을 하나 올렸다. 그리고 한 입에 쏘옥 넣었다.


‘이게 미트볼이구나.’


전자레인지로 조리해서 겉 표면이 말라 윤기는 없었지만 달달하고 새콤한 토마토소스 덕분에 충분히 촉촉했다. 미트볼을 씹을 때마다 고기에서 나오는 짭조름한 육즙은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밥과 미트볼, 김치를 와구와구 먹으며 스팸 대신 미트볼을 선택한 나 자신을 칭찬하고 또 칭찬했다. 앞으로 미트볼은 계란후라이와 스팸구이에 이어 내 단골 반찬이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미트볼은 그 이후 내 밥상에 오르지 못했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고 미트볼은 내게서 점점 잊혀 갔다.






<유아왓유잇>을 방문한 건 ‘기후정의행진’이 있던 날 저녁이었다. 이번 기후정의행진은 추석 연휴 때문이었는지 원래보다 조금 이른 시기인 9월 초에 진행되었는데, 기후위기를 실감하듯 태양은 평소보다 더 높고 강렬했으며, 저마다의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열정은 태양 못지않게 뜨거웠다. 3, 4시쯤 강남역에서 시작한 행진은 7시가 거의 다 되어 삼성역 코엑스에서 끝이 났다. 오후 내내 걷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배도 고팠다.


‘오늘 같은 날은 채식을 해야지.’


마침 코엑스몰에 있는 채식 레스토랑 <유아왓유잇>을 찾았다.


행진을 끝낸 사람들 모두가 이 식당을 찾을 것만 같아 걸음을 서둘렀다. 가게 안은 몇몇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내가 앉을 테이블 하나는 사수할 수 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박스와 재활용 플랜카드로 만든 피켓을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방문했다.)


<유아왓유잇>은 뭐랄까, 좀 새로웠다. 주황색, 파란색, 초록색 등 알록달록한 벽화와 액자, 의자가 눈에 띄었고 귀여운 돼지 캐릭터가 가게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놀이동산 안 레스토랑에 와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자리에 앉아 10분 정도 지났을까?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한 박군이 도착했다.


놀이동산 속 레스토랑 같은 <유아왓유잇>, 사진: 업체 제공


‘식물성 미트볼 토마토 파스타..?‘


메뉴를 찬찬히 살펴보던 중 ‘미트볼’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대학 시절 맛본 레토르트 미트볼이 불현듯 떠올랐다. 스팸을 사러 간 편의점에서 노랗고 붉은 포장의 미트볼을 집었던 것처럼 무언가에 홀린 듯이 미트볼 파스타를 주문했다. 평소에 오일 파스타를 좋아하는 박군은 ‘알리오 에 올리오’를 주문했다.


알리오 에 올리오는 냄새부터 존재감이 가득했다. 테이블에 놓이기 전부터 올리브유와 마늘 향이 퍼져 기분이 좋아졌다. 평소 알고 있던 알리오 에 올리오보다 오일이 훨씬 많아 자작했고, 얇게 썬 마늘과 볶은 마늘쫑, 바삭한 식물성 민스가 가득 올라가 있었다. 한쪽에는 넓적한 바게트가 놓여 있었다. 음식은 눈으로 한 번, 코로 한 번, 입으로 한 번 맛을 본다고 했던가? 그런 점에서 알리오 에 올리오는 합격이었다. 올리브유와 마늘이 가득한 파스타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매콤한 마늘쫑과 바삭한 민스를 함께 먹으니 더욱 훌륭했다. 커다란 바게트는 조금씩 찢어 자작한 올리브유에 찍어 먹었는데, 먹다 보니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식물성 민스와 마늘쫑이 특징인 알리오 에 올리오


미트볼 파스타는 예전에 먹었던 것과 보기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짙은 붉은색의 소스가 밝은 색을 띠고 있었고, 스파게티 면과 약간의 치즈가 추가되었다는 점 정도였다. 처음 미트볼을 맛보았던 그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미트볼 하나를 포크로 콕 찍어 맛을 봤다. 꽤 맛있었다. 그때보다 촉촉한이 덜했지만 씹는 맛이 좋았다. 버섯 등을 사용한 대체육으로 만들었다는데, 모르고 먹었다면 고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 씹을 때 느껴지는 육즙은 없었지만 식감이 고기 같은 데다가 양파 등과 같은 채소의 식감과 맛이 모두 좋았다. 스파게티면과 소스를 듬뿍 얹어 먹을 때는 더 조화로운 맛이 느껴졌다. 자극적이지 않고 삼삼해서 마치 청국장이나 시래깃국처럼 어른의 맛 같기도 했다.


이름은 조금 긴 ‘식물성 미트볼 토마토 파스타’


10여 년 전 먹었던 미트볼이나 기후정의행진을 마치고 <유아왓유잇>에서 먹었던 미트볼은 맛에 있어 큰 차이는 없었지만 내게 와닿는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이름부터 직관적인 ‘미트볼’을 식물성 재료로도 충분히 맛을 낸다는 점이 내게 아주 큰 의미로 다가왔다. 반가웠고, 또 만나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고기를 사랑하지만 말이다. 아주 맛있고 건강한 미트볼을 만날 그날을 기대해 본다.






식당소개

상호: 유아왓유잇 코엑스점

식당 종류: 비건 & 채식 식당

주문 메뉴: 식물성 미트볼 토마토 파스타(13,800원), 알리오 에 올리오(15,800원), 라이스베이스드 말차 라떼(6,500원)

디카페인 커피: 없음

가격대: 10,800원 ~ 23,800원

영업시간: 매일 오전 11시 ~ 오후 9시

휴무: 없음

주소: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513 스타필드코엑스몰 지하 1층 H103B호



박군의 시식평


코엑스몰에는 다양한 음식점들이 있는데요. 그 다양한 음식점 중에서도 ‘식물성 대안식 레스토랑’을 표방한 흥미로운 음식점 <유아왓유잇>을 다녀왔어요. 신세계푸드에서 2023년에 론칭해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뿐만 아니라 집에 사가 맛볼 수 있는 간편식들과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컵과 그릇 등 유니크한 굿즈들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공간 자체가 재미있다고 느껴졌어요. 다만, 음식과 서비스에서 크게 감동을 받지는 못했는데요. 메뉴의 종류나 퀄리티가 높지 않았고, 비건 음식이 맛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손님들의 예상을 적중해버린 듯한 수준이었습니다. 아쉽지만 아마도 재방문은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코엑스에 입점한 수많은 식당들과 비교했을 때 ‘식물성 대안식 레스토랑’이라는 콘셉트 외에는 주목받지 못할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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