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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만다 Sep 10. 2024

1. 세상에 이런 일이! 달걀 없는 달걀 샌드위치

용산구 <바이두부>

"엄마, 잠깐만!"


버스 정류장을 향해 공항 밖으로 나가려는 엄마를 나는 다급히 불러 세웠다. 그리곤 황급히 어디론가 뛰어갔다.


엄마와 처음으로 단 둘이 간 해외여행은 일본 후쿠오카의 작은 도시 유후인였다. 유후인은 일본에서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 중 한 곳인데, 대학 졸업 후 사회인이 되어 받은 월급으로 간, 조금 비싸지만 온천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정한 여행지였다. 아, 오해 마시길. 사회 초년생의 쥐꼬리만 한 월급으론 여행비를 모두 부담하기 어려워 엄마도 쌈짓돈을 보태셨다.

후쿠오카의 바깥공기를 쐬기도 전, 나는 무엇 때문에 엄마를 급하게 불러 세웠던 걸까? 화장실에 볼일이라도? 아니면 환전을 하려고? 모두 아니다. 내가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편의점이었다.


일본의 편의점은 편의점답지 않게(?) 맛있고 다양한 음식들을 파는 것으로 유명하다. 삼각김밥과 도시락처럼 일반적으로 편의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품목부터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술안주와 케이크, 푸딩 같은 디저트 메뉴도 무척이나 많다. 평소라면 하나하나 구경하면서 맛을 상상하느라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겠으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샌드위치를 하나 샀을 뿐이었다. 바로 달걀 샌드위치였다.


일본 편의점 달걀 샌드위치


"와...."


유후인행 버스 안에서 맛본 편의점 달걀 샌드위치는 그야말로 신세계라,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 달걀과 마요네즈의 조합은 아주 곱고 부드러웠으며, 맛은 진했다. 샌드위치의 식빵도 편의점 빵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보들보들했고, 안에 들어 있는 속과 결코 따로 놀지 않았다. 샌드위치 속은 얼마나 꽉 차 있던지 뭐랄까, 입안에서 빈틈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쩌면 평범한 맛이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맛이었다.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 편의점 음식도 정말 훌륭하지만 말이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일본에 갈 때면 편의점에서 달걀 샌드위치를 꼭 사서 먹곤 했다. 그렇지만 처음 먹었던 그때 그 감흥은 느낄 수 없었다. ‘여전히 맛있네’ 정도였달까? 이제 더 이상 처음 그때의 놀라움과 기쁨은 달걀 샌드위치에서 찾을 수 없을 거라고, 나는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 행운이 한 번 더 찾아왔다.






<바이 두부>는 해방촌 끝자락 높이 솟은 언덕길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곳을 찾아간 건 아주 길고 더운 여름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었지만 한낮에는 아주 더운, 그런 날이었다. 하필 길을 잘못 들어 언덕길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느라 등산이라고 한 것 마냥 뒷목과 등에 땀이 줄줄 났다.


가게 앞에 도착하니 가게 안은 이미 많은 손님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실내에 자리가 없어서인지, 햇빛만 피하면 간혹 부는 시원한 바람에 그럭저럭 괜찮아서인지 야외 테라스석도 만석이었다. ‘꽤 기다려야겠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운 좋게 막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손님들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등산에 힘이 들어 에너지가 필요해서였는지, 아니면 이런 위치라면 다시 못 올 것 같다는 성급한 판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나와 박군은 평소보다 메뉴를 좀 더 시켰다. 바이두부 랩, 브로콜리 두부강정볼, 그리고 달걀 없는 달걀 샌드위치 이렇게 세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아, 우리는 커피가 필요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물론 나는 디카페인으로. (몇 년째 디카페인 커피 위주로 마시고 있다.)


바이두부 랩은 루꼴라와 퀴노아 샐러드, 당근초절임 등 채소가 가득 들어가 있고 중앙에는 얇게 썬 두부가 여러 겹 포개져 있었다. 그렇게 층층이 쌓인 두부가 다시 루꼴라와 당근초절임으로 뒤덮인 후 또다시 두부가 등장. 이처럼 한 덩치 하는 바이 두부 랩을 어렵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채소가 많이 들어 있어 씹는 식감이 좋았다. 채소를 씹다 보면 기분마저 상쾌해진다. 박군이 고수를 잘 먹지 못해 고수는 따로 달라고 해서 먹었는데, 랩 안에 들어 있었다면 좀 더 새로운 맛이라고 느꼈을 것 같다. (나는 랩을 한 입 물고 씹다가 뒤늦게 고수를 입 안에 넣곤 해서 원래 의도한 맛으로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랩 안에 들어 있는 두부는 어디선가 맛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간장에 조린 두부 반찬 같다는 박군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부조림을 안 좋아하는 편이지만 많은 채소와 함께 랩으로 싸 먹는 것은 꽤 괜찮았다. 두부 부침을 좋아하는 박군은 한 입 먹을 때마다 연신 맛있다고 말했는데, 다음에 또 오자고 했을 땐 살짝 놀랐다. 내가 가자고 했던 식당을 박군이 또 오자고 하는 비중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채식 식당 투어를 하며 다닌 곳들은 거의 매번 박군이 재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두부 강정볼은 브로콜리와 퀴노아 샐러드, 구운 두부, 소이 마요, 라임 비네갈이 들어갔는데 채소와 두부가 가득 있어서 인지 둘이서 나눠 먹었는데도 배가 많이 불렀다. 여기 들어 있는 두부의 식감은 참 신기했는데, 우리가 평소에 먹는 잘 으깨지고 포슬포슬한 두부가 아니라 치즈처럼 매끈하고 단단하면서도 씹을 때 결이 느껴지는 그런 두부였다. 치즈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 맛이 좋고 재밌어서 계속 두부를 조금씩 베어 물어 속을 구경하고 씹으면서 그 탱글한 식감을 즐겼다.


세 가지 음식 중 가장 마지막으로 맛본 음식은 바로 ‘달걀 없는 달걀 샌드위치’였다. 무의식 중에도 가장 맛있어 보이는 요놈을 나는 가장 마지막에 먹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아니, 내가 좋아하는 달걀 샌드위치를 달걀 없이 만들었다고 하니,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장 마지막으로 미뤄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름부터 모순적인 이 샌드위치는 맨 아래 로메인 상추가 깔려 있고 그 위에 두툼한 달걀(처럼 보이지만 두부인)과 양파 플레이크, 얇게 썬 토마토와 오이가 차례로 올려져 있었다. 식빵에는 딸기잼도 발려 있었는데, 이때부터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샌드위치에 딸기잼이 발려 있다면 그야말로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않은가. (요즘 말로 맛없없이다.) 달걀, 아니 두부는 샌드위치 경계면을 넘어 툭 튀어나온 게, 꼭 크롭티를 입을 때면 볼 수 있는 내 뱃살 같아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 노란색 두부는 으깬 모양이 영락없는 달걀이었고 평소 사 먹는 달걀 샌드위치의 달걀 보다 더 잘게 다져 있어 일본에서 먹었던 그 편의점 샌드위치를 연상케 했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씹을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평소에 맛볼 수 있는 달걀 샌드위치였다. 아니, 달랐다. 그것보다 더 맛있었다. 다진 두부가 마치 알알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입에서 느껴지는 식감이 풍부하게 느껴졌고 적당히 진한 아보카도 마요네즈가 맛을 더 돋웠다. 집에서 달걀 샌드위치를 만들 때면 가끔 빵을 팽개쳐 놓고 양푼 한가득 만들어 놓은 소만 퍼 먹는 것처럼, 거추장스러운 건 모두 빼고 달걀만 오롯이 맛보고 싶기까지 했다.


"후두둑"


한창 이 매혹적인 샌드위치에 빠져 있었는데, 앞에서 샌드위치 반쪽을 맛보던 박군이 삐죽 튀어나온 두부(지만 생긴 건 영락없는 달걀)를 접시에 한 움큼 흘렸다.


“왜 그렇게 엄청 흘리면서 먹어~“


괜히 할 필요 없는 잔소리를 한마디 하고 나서 다시 먹는 데 집중하려는데 또 "후두둑"한다.


“희주도 마찬가지네~”


부부는 닮는다더니. 샌드위치 빵 사이로 튀어나온 댤걀은 흘리지 않고는 먹기가 어려웠지만 흘리는 것쯤 대수랴, 이렇게 맛있는데. 서로 접시에 흘린 두부, 아니 달걀을 포크로 싹싹 긁었다. 박군은 그것을 곧장 입으로, 나는 샌드위치 위에 올렸다.


샌드위치의 마지막 조각을 한 입에 털어놓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먹을 건 정말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달걀 샌드위치를 먹고 느꼈던 그 감동을 다시 맛보지 못할 거라고 쉽게 단정 지었던 내가 무척이나 한심스러웠다. 그리고 스스로 다짐했다. 다시는 세상을 얕보지 않으리라고.






유후인으로 가는 버스 안, 나는 감탄사를 남발하며 달걀 샌드위치를 먹었지만, 엄마는 나머지 한쪽을 한 입을 먹고는 나머지는 내게 넘겼다.


“별 맛도 아니네.”


그러곤 달걀 샌드위치를 감동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먹어대는 나를 신기해하셨다.


엄마와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지 몇 달 후, 전주에 있는 본가에 내려갔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앞치마를 매고 여느 때와 같이 요리 중이었다. 내 방에 짐을 풀고 부엌으로 갔다가 엄마가 한 요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달걀 샌드위치였다.


"네가 일본에서 맛있게 먹길래 만들어봤지."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엄마였다. 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선물에 속으론 뭉클한 마음이 들었지만 "오~ 대박인데"라는 말 밖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엄마가 만든 달걀 샌드위치는 식빵의 겉 부분이 다 잘라져 있었지만, 일본 편의점에서 맛보았던 샌드위치와는 많이 달랐다. 양파와 오이가 들어가 부드럽기보단 아삭했고, 마요네즈를 많이 넣지 않아 살짝 뻑뻑했다. 그렇지만 맛있었다. 편의점 샌드위치는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내게 엄마의 달걀 샌드위치는 다른 샌드위치들과 비교가 불가능한, ‘달걀 샌드위치’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카테고리가 되었다. 다른 샌드위치보다 맛있다거나, 또는 맛이 덜하다거나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대체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다소 거칠고 뻑뻑한 식감에, 레시피가 정해져 있지 않아 만들 때마다 똑같은 맛을 보장할 수도 없지만,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샌드위치. 바이두부의 달걀 없는 달걀 샌드위치도 내게 그렇다. 일본 편의점의 샌드위치, 우리 엄마가 집에서 만든 샌드위치와 비교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달걀 샌드위치하면 떠오르는, 그리고 언제든 맛보고 싶은 샌드위치로 내 머릿속 미식 사전에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식당 소개

상호: 바이두부

식당 종류: 비건 식당

주문 메뉴: 바이두부 랩(13,000원), 브로콜리 두부강정 볼(12,000원), 달걀 없는 달걀 샌드위치(12,000원)

디카페인 커피: 있음(+500원)

가격대: 12,000원 ~ 14,500원

영업시간: 월/목/금 오전 9시 ~ 오후 7시 30분, 토/일 오전 9시 ~ 오후 5시

휴무: 화요일, 수요일 (네이버 지도에서 영업일 확인 필요)

주소: 서울 용산구 소월로20길 10 바이두부



박군의 시식평


언덕 맨 꼭대기에 위치한 <바이두부>. 위치는 극악이지만 맛은 최상입니다. 외국인들도 많이 찾고, 반려동물도 함께 갈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식당이에요. 주문해서 맛본 음식 모두 맛있었는데요. 저는 특히 두부 반찬이 연상되었던 바이두부 랩이 가장 맛있었습니다. 두부에서 느껴지는 진한 양념 맛이 좋았달까요? 세 음식 모두 남녀노소 선호할 만한 맛이었어요. 부모님과 함께 가더라도 절대 '집밥이 낫다'는 말은 안 할 것 같은, 건강함과 맛 모두를 챙길 수 있는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외식을 할 때면 항상 '집밥이 낫다'라고 하시거든요.) 채식을 즐기지 않는 분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곳이에요. 단점이라면 공간이 좁은데 테이블 간격도 좁아서 이동하기에 불편하다는 점인 것 같아요. 물이나 식기류, 음식 픽업 등을 모두 셀프로 진행해야 해서 여러 번 자리에 일어나 이동해야 하는데, 혹여나 다른 사람과 부딪힐까, 다른 테이블의 음식을 실수로 건들지는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이런 작은 단점은 맛으로 충분히 보상이 가능합니다. 다음번에도 꼭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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