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8일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문 건너로 분식집 두 개가 있었다. 한 집은 떡볶이를 기막히게 잘했고 다른 한 집은 김밥 장인의 집이었다. 떡볶이집 아주머니는 괄괄했고 김밥집 아주머니는 수줍음을 많이 탔다. 주인을 닮아가는지 떡볶이집은 항상 왁자지껄 했고 김밥집은 도서관처럼 차분했다. 내가 어릴 때는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서 분식집에 자주 갈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받는 용돈이 적었다. 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원망한 적은 없지만 아주 가끔만 분식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웠다. 차곡차곡 모은 용돈을 꾸깃꾸깃 쥐고 분식집에 가는 날이면 세상을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다시 김밥집에 들러서 김밥을 먹었다. 분식 2차를 한 셈이다. 나는 잘 먹는 나이였고 두 분식집 음식은 참을 수 없이 맛있었다.
몇 년 전에 네 할머니, 할아버지 댁 그러니까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집에 갔다가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들렀다. 산책하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학교로 향했다. 예전 분식집 자리에 꽤 규모가 큰 학원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떡볶이 냄새도 안 났고 김밥 파는 아주머니의 잔잔한 미소도 안 보였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빨려 들어가듯 학원 건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이제 분식을 먹지 않는 것일까. 학교 끝날 때 즈음에는 분명 배가 고플 텐데. 문득 분식집에 대한 내 기억이 허구처럼 느껴졌다. 나는 과연 떡볶이와 김밥을 먹은 적이 있었던 것일까. 세상은 무섭도록 빨리 변해간다. 그래도 어떤 것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고르라면 나는 ‘학교 앞 분식집’ 같은 것들을 말할 것이다. ‘학교 앞 분식집’은 그 자리에 영원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은 분식집에 가면 순대를 찾는다. 나이 서른이 넘어 본격적으로 순대 맛을 알게 됐는데 이제는 주기적으로 순대를 먹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 위가 비틀린다. 너도 아마 내 순대 사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