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과 중경삼림

2021년 9월 18일

by Charlie Sung

나는 중학교 때 처음 극장에 갔었다. 1998년, 영화 타이타닉이 개봉했을 때였다. 어딘지 모르게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른의 공간에 마침내 초대받았다는 생각에 말할 수 없이 들떴다. 타이타닉은 당시 전 세계를 사로잡았고 내 고향 광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극장 측은 실제 좌석보다 많은 표를 팔았다. 지정 좌석제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표를 늦게 산 사람들은 계단이나 바닥에 앉아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타이타닉의 인기가 사람들을 관대하게 만들었는지 옛날 사람들이 대체로 무신경했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광주천 옆 제일극장 계단에 앉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케이트 윈슬렛 허리춤을 잡고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디카프리오의 위세 등등한 포효를 들었다. ‘I am the king of the world.’


이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화를 봤다.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나와는 달리 생긴 사람이 나와는 달리 생각하며 다른 시각으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에 매료됐다. 두 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의 몰입이 생활에 주는 활력은 중독성이 강했다. 그렇게 영화는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확고한 취미 중의 하나가 됐다. 그중에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깊이 좋아한 영화가 ‘왕가위 영화’다. 1980년 대 중후반 홍콩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소 타락한, 나태한, 몽롱한, 순진한 그래서 연민이 느껴지고 때로는 동질감을 갖게 하는 ‘왕가위 영화’ 속 배우들이 좋았다. 특히 장국영이, 양조위가 좋았다.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왕가위’ 영화를 본다. 얼마 전에 네 엄마와 왕가위의 대표작 ‘중경삼림’을 극장에서 다시 봤다 네 엄마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네 엄마에게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여 줄 수 있어서 좋았다. 너와 손잡고 영화를 보러 가는 날이 오면 나는 1998년 봄, 광주천 옆 제일극장의 계단을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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