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그린 초록
초록, 네가 나를 보고 있다면
너는 이미 바닥에 닿았거나
바닥을 향하고 있겠지
너만 나를 가진 것이 아닌데도
네가 마주한 어둠에 아마 놀랐을 거야
나를 미워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나는 말이야
빛이 너를 비추고 있어서 생기는
흔적 없는 흔적이란다
바닥이 없다면 나도 없고
네가 없다면 나도 없어
나는 빛이 그린 초록이지
바닥을 딛고 다시 일어서
네가 만든 그늘을 한 번 보렴
너는 얼마나 아름다운 초록인지
우리가 바닥을 딛고 서 있는 한, 살아 있는 한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것은 슬픔이면서도 슬픔이 아니다. 그림자 덕분에 우리는 서로에게 그늘을 내어주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내가 좋아하는 시,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난다). 세상을 비추는 빛에게는 우리의 삶이, 우리의 그림자가 한 폭의 그림이 될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