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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Feb 20. 2019

살아갈 용기

마음수련 명상으로 얻은 다섯 가지

한 것도 없이 새로운 오늘을 선물 받았습니다. ^^ 요즘 스스로 용기 있는 제 모습을 기특해하는 중이에요. 저는 교사인데요. 몇 년 전, 극복한 줄 알았던 우울증이 스트레스로 인해 심해져서 신체적인 통증으로까지 나타났었어요. 살아갈 용기조차 잃은 상태에서 차마 사랑하는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을 리 없었죠. 휴직 기간을 보내는 방법은 많았겠지만, 저에게는 마음을 버릴 수 있는 명상 방법이 있었기에 세상에 살아남아 이렇게 글을 통해 당신을 만날 수도 있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저의 일상이 된 명상의 효과는 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용기 있는 이 된다는 사실이 가장 유용한 듯해요. 오늘은 '살아가는 일'을 포함해서, 저에게 용기가 생겨서 가능해진 다섯 가지를 적어보려 합니다.




1. 마주하다

 

나를 마주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명상을 통해 나를 돌아보다 보니 기억 저편에 있던 일들이 떠올라 뜬금없이 눈물짓는 일도 흔했다. 바꾸고 싶어도 쉽지 않았던 나의 생각과 행동 패턴들이 과거에 기억된 생각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무의식적인 마음이 찾아지고 버려진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버려지는 만큼 내가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아픈 일들을 겪었을 당시에는 오히려 괜찮았고, 빨리 극복했다고 여겼는데 사실은 의식했던 것보다 더 큰 상처를 받았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나 자신을 외면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나는 진작 놓아주었어야 하는 마음들을 하나둘씩 내려놓고 비로소 편안해졌다. 이제 나 자신을 오롯이 마주할 수가 있으니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일이 없다.



2. 인정하다


마주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것이 내 모습임을 인정해야 버릴 수가 있는데, 그게 어려워서 명상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욕먹지 않으려고 꽁꽁 싸매고 누가 부정적인 이야기라도 하면 항상 나를 방어하는 말을 찾아서 둘러대느라 바빴다. 이렇게 찌질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를 지키려 하니 스스로 더 피곤해졌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를 소중하다고 쥐고 있느라 고생이 많았다. 심지어 내가 잘못한 일에도 잘못했다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잘못을 지적당하면 자존심이 상해서 화만 났다. 조금씩 그런 모습들을 인정하고 버려보니 그런 속 좁은 '나'마저 사라졌다. 나의 입장을 내려놓자 상대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잘못한 일을 잘못했다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나를 지키며 목소리를 높이던 때보다 내 잘못을 인정하고 낮아지니 오히려 대접을 받는다.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용기가 있으니 한 걸음씩 내딛는 일도 무척 즐겁다.



3. 표현하다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화도 내 본 적이 없는 나는, 명상 덕분에 건강하게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전에는 화가 너무 많아서 화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고작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극에도 100만큼 화가 났었다. 그것을 그대로 표현했다면 다들 미쳤냐고 말했을 것이 뻔해서 '괜찮은 척'을 했던 것이다. 내 마음에 90이 쌓여 있으니, 10이 더해져 100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도 감당하기가 힘드니까 차마 표현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감정이란 '통제해야 할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았기에, 표현하지 않고 그대로 입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결국은 병이 되었지.


그것을 마주하여 인정하고 시원하게 비워낸 지금은 100 정도가 되는 자극에도 10만큼 침착하게 표현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도 남음이 없다. 담아두지 않는다. 가족들은 참고 삭히던 내가 참지 않고 표현하게 되자 마음수련을 해서 이상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지금이 정말 기적 같다.



4. 살아가다


살아 있어서 '사람'이다. 살아감이 '삶'이다. 사람이 곧 세상이기에, 나는 명상 덕분에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얻은 셈이다. 잘 살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된다고 습관처럼 죽음을 생각했던 내가 완전히 바뀌었다. 잘 사는 삶은 세상의 뜻대로 흐르는 삶이 잘 사는 삶이다. 내 마음이 탁 트여서 세상과 하나가 되니,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고통과 짐을 지고 있던 내가 없으니 죽니 마니 했던 시간도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내 마음이 만든 지옥에 있다가 세상으로 나온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이제껏 행복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다면, 진짜로 행복 그 자체가 되어버린 기분이랄까. 분명 살아갈 용기를 얻었는데, 얻었다는 마음도 없다. 원래부터 있던 것을 되찾았을 뿐이다.



5. 함께하다


나는 함께할 마음이 없었던 사람이다. 나 따로 세상 따로일 때는 타인은 항상 비교의 대상일 뿐이었다. 나의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을 무시하기도 하고,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기라도 하면 시기와 질투로 머릿속이 가득 차곤 했다. 누군가와 함께하려면 나를 오픈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내 모습을 알면 분명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까지 있었다. 차라리 혼자가 편하지만 막상 혼자가 되는 것은 또 두려웠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이런저런 생각과 두려움이 사라지니 자연스레 함께한다는 생각도 없이 함께하고 있다. 나 자신을 억압할 때는 타인의 감정도 이해해주지 못했지만,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니까 타인을 향해서도 진심 어린 애정을 쏟을 수가 있다. 함께한다는 것도 결국은 마음이 하는 일이구나. 마음이 하나가 되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음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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