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추상 화가의 휴업 신고
이 한 묶음의 글을 쓰는 동안 참 많은 인연이 스쳐 지나갔다.
살아서는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소중한 존재들과, 누구보다 가까웠던, 이제는 멀어진 사람. 새 글뭉치의 둥지가 되어 줄 뻔했던 출판사, 기대를 걸었던 로펌, 잠시 연이 닿았던 협력사, 기대고 싶었던 사람들과 그들의 공간, 그네들의 친구들 모두.
사실 그 대상들은 어떤 시점마다 내가 도피하고자 했던 임시 거처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언제나 조금 더 먼발치에서 보아야만 알 수 있는 큰 그림, 관념의 영역을 좇았기 때문에 불균형하게 기울어진 삶. 그 현실적인 생활의 영역은 공갈빵 속처럼 빈 채로 딱딱한 표피 아래 남겨져 있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보려 애썼지만 지금은 다시 공갈빵 안에 무엇이라도 채워 한 겹밖에 남지 않은 표피가 바스러지기 전 수습을 해야 한다.
에필로그를 휴업 신고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3년 정도는 작품 활동을 쉴 생각이다. 현직장의 야근으로 인한 체력 고갈 때문만은 아니다. 하나같이 어려운 고비를 넘어가고 있는 가까운 이들에게 마음껏 베풀어도 되는 그런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은 시간을 갈아 넣는 수밖에는 찾지 못했다.
지금 갈아 넣고 있는 체력과 시간과 노력이 어떻게든, 이번에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통용되는 가치로 치환되기를 기대한다.
이 모든 것들이 고운 안료로 다시 내 안에 가득 쌓이고 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정제된 무언가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천체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현미경을 들여다볼 시간. 숨 가쁘게 삶을 버티다 이제야 천체망원경을 들여다보는 당신과 바통 터치를 하며, 나는 다시 전장으로 나간다.
'땡.'
상실이 만든 얼음은 이미 녹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