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민기 May 24. 2020

베이글이 내게 가르쳐 준 것

오늘도 빵생각 - 김민기 쓰고 그림

  한 때, 빵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운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 번은 어떤 이웃님이 ‘ㄷㅋ의 크림치즈 블루베리 베이글과 커피’를 추천해주셨다.


  도넛 가게의 베이글이라니? 그 당시 나는 베이글을 먹어본 적이 없었고 커피는 전혀 먹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시도를 좋아했기에, 그 댓글이 달린 주말 아침 부리나케 도넛 가게로 달려가 블루베리 베이글 모닝세트를 주문했다.

  도넛 가게 직원은 오동통한 베이글을 반으로 잘라 토스트 한 뒤, 아직 열기가 남아있는 베이글 위에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포션 한 통을 꼼꼼히 발라주었다. 크림치즈는 베이글의 온기를 머금고 부드럽게 녹아 있었다.


  내 인생 첫 베이글. 겉은 바삭하면서 안은 쫄깃한 그 인상적인 맛을 잊을 수 없다. 고소하고 달콤한 블루베리 베이글이 크림치즈와 함께 입안 가득 들어왔다. 이웃님의 추천대로 이따금 커피도 한 모금씩 마셨다. 그 둘의 조화가 얼마나 완벽했는지, 그 날 처음으로 커피 한 잔을 다 비웠다. 베이글 덕분에 커피를 배웠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감동이 꽤 강렬해서 한동안 베이글을 찾아먹었다. 다른 도넛 가게는 물론이거니와, 파리 빵집과 매일 빵집의 베이글, 가성비 좋은 코스트코 베이글, 뉴욕 3대 베이글, 한참 후에 생겨난 서울의 유명 베이글까지 모조리 먹어봤지만, 그 블루베리 베이글만큼 커다란 감동은 다시 느낄 수 없었다.


  무엇이든 처음 겪는 경험은 아주 진하게 남는 것 같다. 첫사랑, 첫 키스, 첫 직장, 첫 해외여행... 첫 번째 것들은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강한 여운을 준다.

  30대가 되어 보니, 세상의 8할이 예상 가능한 것들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자극이 드물다. 만약 새롭고 강렬한 것을 매일 마주할 수 있다면, 삶이 지금보다 더 만족스러울까?

  행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고, 돈을 벌어 새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을 상비한다.


  코로나 19로 집콕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외부 자극에 의존하는 만족이 아닌 내 안의 본질적인 만족이 무엇인지 자꾸만 들여다본다.


  처음이 아닌 것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하는 시선, 대단하지 않은 것들에서도 진한 감동을 느낄 줄 아는 마음.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진정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닐까. 가능하면 이런 시선과 마음으로, 크고 작은 감동을 최대한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오늘도 빵생각>은 빵 먹기 좋은 일요일 아침에 연재됩니다.
쓰고 그린이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imminkiki/




이전 06화 샌드위치의 치명적인 매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