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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민기 May 03. 2020

크로와상은 배신하지 않는다

오늘도 빵생각 - 김민기 쓰고 그림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퇴근하고 싶은 날. 그런 날엔 집에서 15분 정도 일찍 나와, 회사 사무실 대신 근처 빵집으로 출근했다. 아토피염 때문에 빵을 먹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지만, 아토피염에 대한 걱정보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는 기운을 충전해야 했다.

  빵집에 들어서면 빵 굽는 냄새가 들숨 가득 들어왔다. 그 어떤 향수 냄새보다 기분이 좋다. 진열대 위에는 몇 안 되는 빵들이 이제 막 오븐에서 나와 열을 식히고 있었고, 그중 잘 익은 크로와상을 하나 골랐다.


  층층이 쌓여있는 크로와상의 결을 보면 제빵사의 정성이 느껴져 아침식사로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그 층마다 들어간 엄청난 양의 버터가 크로와상 맛의 비결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긴 했지만, 크로와상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이 버터 풍미가 가득한 크로와상을 어떻게 먹을지 고민한다. 한쪽 끝에서부터 베어 먹을까, 가운데부터 한 겹 한 겹 뜯어먹을까, 반으로 쪼개어 커피에 푹 적셔먹을까…


  그 자리에 앉아 크로와상 먹는 방법만 고민한 것은 아니다. 크로와상을 입에 넣으며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몇 번이나 크로와상을 먹으며 생각해도 사는 방법에 정답 따위 있을 리 없었다. 접시에 부스러기만 남을 때쯤이 되면, ‘크로와상은 어떻게 먹어도 행복의 맛’이라는 단순한 결론에 그칠 뿐이었다.

  삶은 언제나 불투명하지만, 그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확실한 행복들을 차곡차곡 쌓아 정성스러운 오늘을 사는 것이다.

  여전히 기운이 없는 날, 행복이 필요한 날이면 잘 익은 크로와상을 먹는다.
크로와상은 웬만하면 배신하지 않으니까!




<오늘도 빵생각>은 빵 먹기 좋은 일요일 아침에 연재됩니다.

쓰고 그린이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immink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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