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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민기 Aug 16. 2020

오븐에서 빵을 꺼내듯

오늘도 빵생각 - 김민기 쓰고 그림


  ‘갓 구운 빵’에 꽂혀서 홈베이킹에 도전한 적이 있다. 시작은 아주 쉬웠다. 온라인으로 미니오븐과 베이킹 도구들을 구입하고, 파워 블로거님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마음에 드는 레시피를 고른다.


  블로그가 한창 유행할 때였으므로, 레시피는 넘쳐났다. 단계별로 사진까지 첨부되어, 레시피를 읽듯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시피를 고르며, 직접 만든 갓 구운 빵을 매주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처음엔 쿠키나 스콘처럼 발효가 필요 없는 제과류를 구웠다. 뽀얀 밀가루와 노란 버터, 그 외 필요한 가루와 액체를 넣는다. 주걱을 #모양으로 움직이거나 시계방향으로 휘휘 저어 반죽을 만든다.


  레시피를 차례로 따라 만든 그 반죽을 오븐에 넣으면 꽤 근사한 간식들이 나왔다.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에 익숙해졌을 때쯤, 빵을 구워보기로 했다. 빵을 만들려면 ‘발효’라는 단계가 더 필요했다.


  밀가루와 물과 소금, 이스트의 비율을 잘 맞추고 발효 시간과 온도를 맞춘다. 무엇 하나 부족하거나 과하다면 제대로 된 빵 반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흰 반죽을 부풀리고 가스를 빼고 둥글려서 다시 부풀리는 이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접 빵 반죽을 만져보기 전까지 전혀 몰랐다. 재료를 섞고 뭉개어 1차 발효, 2차 발효... 각 단계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시간과 마음을 쓰는 만큼 결과가 나왔다.


  딱 한 번, 하루 종일 공들여 반죽을 만들었던 날. 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빵을 먹을 수 있었다.

  빵을 먹기 위해 홈베이킹을 시작했지만, 홈베이킹은 재료를 시간과 함께 정성스레 섞어 나가는 ‘과정’이었다. 레시피를 차근차근 살피며 한 단계씩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느새)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


  살다 보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홈베이킹하듯 오늘만큼씩만 공들여해 나간다.


오븐에서 빵을 꺼내듯, 오늘이 빚어놓은 내일이 올 것이다.





<오늘도 빵생각>은 빵 먹기 좋은 일요일 아침에 연재됩니다.
쓰고 그린이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immink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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