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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민기 Jun 07. 2020

식빵의 삶은 변화무쌍하다

오늘도 빵생각 - 김민기 쓰고 그림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간다. 연고가 없는 지역이지만, 그동안 구석구석 산책하면서 이젠 제법 동네와 친해졌다.


  가장 좋아하는 상점은 우유식빵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빵집이다. 식빵이 먹고 싶은 날이면, 꼭 이 빵집에 가서 식빵을 산다.



  폭식한 식빵을 사들고 돌아오는 길, 봉투 속에 들어있는 식빵을 보며 상상한다. 만약 식빵이 사람이라면, 그는 왠지 아주 착하고 친구가 많고 어디서든 필요한 존재일 것 같다고. 나만 해도 주기적으로 식빵이 필요하고, 세상엔 식빵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테니 말이다.


  세상에 빵이 딱 한 종류만 남아야 한다면 그것은 식빵이 아닐까?


  식빵은 사실 별다른 특징 없이 태어났지만, 먹는 사람에 따라 그의 삶은 변화무쌍하다. 어쩌면 식빵 한 봉지에 들어있는 모든 조각들은 각자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그가 흰 얼굴로 봉지 안에 있을 때만 해도, 그는 본인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삶이나 우리의 삶이나 알 수 없게 흘러가는 것은 매한가지다. 어쩐지 식빵의 삶을 근사하게 만들겠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힌다.

  식빵을 먹기 전엔 유난히 부지런을 떤다. 내가 얼마나 부지런하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식빵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의 삶이 나에게 달렸다.


  가령, 3분간 오븐 샤워를 해준다거나, 그 위에 버터를 바른다거나, 딸기잼이나 크림치즈를 바른다거나, 피넛버터와 바나나를 올린다거나, 미리 만들어둔 감자 샐러드를 곁들인다거나, 계란물에 적셔 프렌치토스트로 만든다거나 하는 부지런함이다.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식빵의 삶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나름대로 부지런을 떨어서 준비된 식빵 식사.

호화롭진 않더라도 충분히 근사하다.


  식빵의 삶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를 잘 다루다 보면, 왠지 이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보살피는 시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삶은 정말 알 수 없게 흐른다니까.





<오늘도 빵생각>은 빵 먹기 좋은 일요일 아침에 연재됩니다.
쓰고 그린이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immink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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