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빵생각 - 김민기 쓰고 그림
내 인생의 호시절을 꼽으라면 미국 교환학생 무렵일 것 같다. 그 시절엔 모든 것이 자유롭고 모든 하루가 여행자의 기분이었다.
그때에도 나는 영락없는 빵순이 었는데, 학교 내 카페테리아는 그런 내게 천국과도 같았다. 아침에는 팬케익과 베이글이, 점심에는 샌드위치가, 저녁에는 피자가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메인 메뉴들도 많이 있었지만, 하루 세끼 모두 빵을 양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다소 충격이었다.
내가 머물던 곳은 아주 작은 시골 도시라서 주변에는 놀거리가 없었다. 주변에는 커다란 호수와, 다운타운이라고 불리기엔 아주 소박한 읍내 같은 곳이 전부였다. 그곳에 가도 딱히 할 건 없었지만 일주일에 여러 번 읍내에 갔다.
그 작은 읍내에도 몇몇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그중 간판이 귀여운 샌드위치 가게가 있었다. 외관부터 인테리어까지, 전형적인 미국 분위기를 풍기는 가게였다. 카페테리아 메뉴가 지겹거나 기분전환이 필요한 날이면 종종 그 샌드위치 가게에 갔다.
선택할 수 있는 샌드위치 종류가 다양해서 질릴 틈이 없었다. 샌드위치와 함께하는 다이나믹한 빵 생활에 얼마나 적응을 잘했던지,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김치가 생각났다.
지금도 샌드위치를 무척 좋아한다. 특히 여행을 할 때면 샌드위치는 필수코스다. 국내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신선하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오죽하면, 파리 여행에서 버킷리스트 1위가 에펠탑도 아니고 쇼핑도 아니고, 센느강가에 앉아 폴(PAUL) 베이커리의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었다.
게다가 샌드위치를 먹을 때만큼은 아토피염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낸다. 오히려 신선한 채소가 듬뿍 들었으니 평소보다 건강하게 먹은 기분이다. 빵을 먹으며 죄책감을 덜 수 있다니, 나로썬 최고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샌드위치는 재료만 몇 가지 달리해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대단한데, 그것이 샌드위치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 다양한 조합을 하나씩 먹다 보면 어쩐지 내 삶도 한층 다채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인생의 8할은 먹는 즐거움이라던데, 삶이 무료하게 느껴질 땐 맛있는 즐거움을 찾는다. 수만 가지 샌드위치 중 어떤 선택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원치 않은 선택을 했다면, 다음엔 다른 선택을 하면 되니까.
생각이 많아 머릿속이 너무 복잡한 날에는,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된다.
<오늘도 빵생각>은 빵 먹기 좋은 일요일 아침에 연재됩니다.
쓰고 그린이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immink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