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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민기 May 10. 2020

엄마아빠의 최애빵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도 빵생각 - 김민기 쓰고 그림

1
  시장에 들어서면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난다. 그 냄새를 따라서 걷다 보면, 3분의 1의 확률로 찹쌀 꽈배기와 도넛을 튀기는 가게가 있다. 엄마는 그런 도넛 가게를 마주칠 때마다 찹쌀 꽈배기 한 봉투를 구입하고는 했다. 설탕이 고루 묻어있는 찹쌀 꽈배기. 빵집에서도 엄마는 찹쌀 꽈배기를 가장 먼저 골랐다.

  꽈배기가 담긴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두면, 누구도 탐내지 않았지만 하루가 채 가시지 않아 꽈배기가 사라졌다. 꽈배기의 범인을 긴 시간 동안 궁금해했는데, 엄마가 비밀스럽게 말해줬다.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빵이야.”


  아빠가 내게 좋아하는 빵을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런 아빠도 좋아하는 빵이 있다는 사실이 꽤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아직 세상이 내 중심이던 어린 나이였다.

2
  십 년 넘게 시간이 흘러 수능을 치른 고3 겨울방학, 태어나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했다. 백화점 꼭대기층에 있는 칼국수 식당에서 서빙을 돕는 하루짜리 아르바이트였다. 당시 시급이 4천 원이 채 안되었으므로, 종일 칼국수 그릇을 옮기고 난 후 내 손에 3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 주어졌다.


  엄마아빠를 위한 선물을 사고 싶었으나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많지 않았다. 내 딴에는 최선의 선택으로 빵집에 들렀다. 먼저 아빠의 최애빵 찹쌀 꽈배기를 골랐고, 다음은 엄마의 최애빵을 고르기 위해 진열대를 살펴봤다.


  아... 그 순간 알았다. 19살이나 먹도록 나는 엄마의 최애빵을 모른다는 것을. 이제껏 내가 고른 빵을 엄마도 함께 맛있게 먹었을 뿐, 그것이 결코 엄마의 최애빵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순간을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3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했다. 그들에게 받기만 하느라 그들의 작은 취향들을 알아차리는데 참 오래 걸렸다. 그들의 최애빵을 모른다고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할 수 없지만, 누군가의 ‘최애를 아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의 산출물’인 것 같다.

  또다시 십 년이 지나고, 나는 더 이상 엄마아빠와 한 지붕 아래 살지 않는다. 점점 더 엄마아빠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적고 대화할 시간이 줄었다. 그치만 전보다 더 많이 안부를 묻고 관찰하고 관심을 기울인다. 기억하려고. 잊지 않으려고.

  흘러간 세월이 무색하게 아빠는 여전히 찹쌀 꽈배기를 좋아하고, 엄마는 언제나 버터향이 가득한 데니쉬를 고른다. 찹쌀 꽈배기를 보면 아빠가 생각나고, 데니쉬를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사랑하는 사람의 최애를 아는 것은 이래저래 기분 좋은 일이다. 그들을 떠올리는 기회가 많아지니까.




<오늘도 빵생각>은 빵 먹기 좋은 일요일 아침에 연재됩니다.
쓰고 그린이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immink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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