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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작 Apr 19. 2024

[E] 엄마를 보러가려면 차를 여섯 번 갈아타야 했다

나만 없어

나만 엄마가 없어


서방이 밥상을 엎고 지게 작대기로 매타작을 해도 참고 살던 시절이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담을 넘으면 다음날 동네 어르신이 훈계하는 시골이었다

가족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혼'이란 말조차 생경하던 그 시절과 동네에서

탁구공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엄마는 떠났다

탁구공이 일곱 살 때였다


탁구공은 중학교에서 만났다

불거진 광대뼈, 날카로운 눈매, 억센 뼈대가 그대로 드러난 몸

다가서기 어려운 인상이었다

자신으로부터 1미터 반경에 결계를 쳐놓고 들어오는 먹잇감을 잘근잘근 씹어먹는 야수 같았다

실제로도 말투가 적대적이라서 상대의 말을 무조건 받아쳤다

그래서 별명이 탁구공이었다


탁구공의 엄마는 천리 떨어진 곳에 살았다

탁구공이 엄마가 사는 곳을 말해줬을 때 전혀 들어본 지명이 아니었다

탁구공도 그런 반응을 숫하게 보아와 아주 먼 곳이라고만 말했다

몇 번 엄마에게 가봤다고 했다

우리 동네에서 읍내로 버스를 타고 가서

읍내에서 역전까지 다시 버스를 타고

역에서 순천역으로 가는 기차를 탄 후

순천역에서 다시 부산으로 넘어가서

부산역에서 경상북도를 지나 충청도로 가는 기차를

제천에서 다시 태백으로 가는 기차를

정선역에서 내려 엄마가 있는 동네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첫 차를 타야 겨우 막차로 엄마에게 갈 수 있는 여정이었다


어려서는 할머니가 같이 가줬다

4학년 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장사를 시작하고서는 다시 가진 못했다

국민학교 졸업식에 맞춰 엄마가 내려왔지만

도려낸 과거의 사람들에게 얼굴 익히는 게 마땅치 않아 밥만 먹고 갔다고 한다

다시 졸업을 맞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너는 네 사정을 잘 아는 오랜 친구와 둘이서 길을 떠났다

남도의 끝에서 강원도 깊은 산 속으로,

네 머리 위 지리산의 탯줄인 태백산맥따라 야생화가 아름답게 핀다는 함백산으로 떠났다

6시 30분 첫차를 탔다가 부산역에서 점심으로 우동을 먹고

8시가 넘어서야 엄마에게 안겼다

3년을 참아왔는데 울지 않았다

배가 고파 엄마를 만났다는 걸 실감하기 어려웠다

너보다 더 배고플 친구에게 미안해 엄마에게 안겨 울 수도 없었다

탁구공은 상처의 크기만큼 더 일찍 어른이 되었다

함백산의 밤은 어둡고 추웠다


탁구공은 쉽게 마음을 여는 친구는 아니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학교가 작아 반 구분 없이 십여 명이 어울렸고 그 무리에 우리 둘도 있었지만 서로 원오브뎀이었다

3학년에 우린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너와 나는 성향이 달랐지만 싸움을 피하는 내 성격상 그럭저럭 어울리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우리 무리들은 가끔 밤에 모여 술을 마셨다

너는 가까이 살던 친구 몇과 담배도 피었다

나는 담배는 안 하고 술만 입에 댔는데 술을 곧잘 해서 너랑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언젠가 가을로 넘어가던 계절에

귀뚜라미가 시끄럽게 울던 밤에

마을을 변화시키는 공사장에 쌓인 철근 위에 앉아

오비맥주를 나눠먹던 그 밤에

너는 내게 이렇게 밤에 나와도 엄마가 뭐라 안 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 무리에서 비교적 선생님이 성적을 신경쓰던 학생이었기에,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도시로 고등학교를 가느냐 마느냐가 걸린 계절이었으므로 너는 궁금했던 것 같다

"엄마는 별로 뭐라 안 해. 집에 있어봤자 공부하는 것도 아닌 걸 뭐."

친구는 솔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나는 담배연기를 손부채로 날리며 물었다

"너네 엄마는 뭐라 안 하셔?"

-"......안 하셔."

"(웃으며) 포기하셨냐?"

-"......"

탁구공은 담배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눈이 따가운지 인상이 찌뿌려졌다

입에서 길고 긴 연기를 뿜더니 입을 동그랗게 말고 혀를 튕겨 도너츠를 만들어 올렸다

-"엄마 여기 없어."

탁구공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탁구공 엄마 얘기는 며칠 뒤 다른 친구에게 들었다


남자중학생은 짐승이다

예의와 인내는 그 시기에 접어둔다

탁구공에게 사과를 하지 못했지만 우린 예전처럼 지냈다

점심이면 같이 도시락 먹고

여전히 같이 축구하고

토요일 수업 끝나고는 분식집에 가서 계란라면 먹으며 한 주를 마감했다

탁구공을 보는 내 눈에 작은 동정심이 깃들었을 수는 있지만 

탁구공이 그걸 알아챘거나 설상 알았더라도 불편해 하지는 않았다

사람에게서 얻은 상처의 크기만큼 관계맺기에서 계산은 빠른 법이다

마침내,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던 친구집에서 터보네이터를 같이 보던 날, 

우린 더 가까워졌다




탁구공과 친구는 정선에서의 이튿날 뒷산을 올랐다고 한다

30분쯤 오르니 공터가 있었고 오래된 나무그루터기가 있었다

엄마는 거기 앉았다

점심 즈음이었기에 따사로운 햇살이 엄마의 머리와 가슴에 떨어지고 있었다

탁구공과 친구는 서서 마을을 내려다봤다

"엄마는 여길 자주 와

이 동네는 참 추워

해도 일찍 져서 답답해

그런데 여길 오면 가슴이 탁 트여

멀리 훤히 보이고 볕도 잘 들어서 따뜻해

여기 이렇게 앉아서 한참 가만히 내려봐

아무것도 안 해도 그렇게만 있어도 마음이 좋아져."

탁구공도 엄마의 눈이 닿는 곳을 바라봤다

엄마가 손을 들었다

"00아 저기가 남쪽이야."

탁구공의 눈도 따라갔다

산들이 겹쳐져 있고 멀어질 수록 색이 연했다

"저쪽에 네가 산다."

탁구공은 한참 남쪽을 바라봤다

엄마가 내 생각이 나면 보는 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에 담았다

춥다며 엄마가 일어서 길을 나섰다

탁구공은 엄마가 막 일어선 그루터기를 보았다

햇볕이 부딪히던 나무는 따뜻하면서 외로워보였다고 한다

잘린 나무 그루터기는 외로운 사람들의 상징 같다


탁구공은 나와 다른 도시로 고등학교를 갔다

산 하나 넘으면 되는 도시지만 친구 둘과 자취를 했다

정선을 같이 간 친구와 제일 많이 싸웠던 친구였다

토요일에 집에 왔다가

월요일 첫차로 다시 학교를 갔지만

그마저도 날씨가 안 좋으면 가지 않았다

공부에는 취미가 없어 학교는 수시로 빼먹었다

친구들하고 같이 지냈지만 탁구공은 늘 외로웠다

탁구공은 유전자에 외로움이 새겨진 아이였다

그래서 일찍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고1 겨울에 탁구공은 동네 후배를 만나게 됐다

2년 후배인데 딸부잣집 셋째였다

J도 부모님이 안 계셨다

두분 모두 J가 열 살 때 연이어 병으로 돌아가셨다

중2 J는 한창 친구들과 노는 게 좋을 때였다

친구집에 가서 노래 하고 춤추고 노는 게 전부였다

그날도 늘 같이 놀던 친구집에 갔는데

탁구공이 친구 언니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서로 얼굴과 이름은 아는 사이였지만

그 동네에서는 세살배기 아이 이름도 온 동네가 다 알기에 별 건 아니었다

또래보다 조금 더 크고 웃을 때 볼이 크게 부푸는 J가 귀여워

탁구공은 며칠 후 밤에 J방 창문에 쪽지를 찔러넣었다


J가 처음부터 탁구공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남자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좋다고 오는 선배가 부담스러웠다

마음을 주게 된 건 의외의 포인트였다

탁구공의 마음을 들었으면서도 모른척하고 몇 주 보낸 후

어느날 친구들하고 골목에서 얘기하는데

탁구공이 성큼성큼 오더니 커다란 곰인형을 안겨주고 갔다

얼굴이 불같이 달아올랐지만 가슴에도 작은 불씨가 남았다

둘은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탁구공 24, J가 22살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에 엄마가 오셨고 할머니와 같이 자리에 앉았다

부모님께 절을 할 때 장내는 침묵했다

한 타임 늦게 일어선 탁구공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지만 눈물은 없었다

친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걸 싫어하는 놈이었고

그런 탁구공의 성향을 알기에 우리가 대신 울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둘은 정선에 갔다

그땐 8년 전보다 좀 더 교통사정이 나아져서 네 번 갈아타면 갈 수 있었다

그래도 탁구공은 신부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다고 한다

신부의 고생은 결혼 하자마자 시작됐다

개발 붐이 일었던 동네에 관광객들이 밀려들어오면서

둘은 술장사를 시작했다

한 번도 장사를 해본 적도 술집에서 일해본 적도 없었지만

벼농사를 짓던 사람도 논을 팔고 노래방을 하던 때였기에 둘은 용기를 냈다

술집 이름은 <아지트>였다

탁구공의 외로움이 만든 이름이었지만 촌스러워서 우린 그냥 '탁구공네'라고 불렀다

어설펐지만 둘은 열심히 했다

그 시절은 우리동네의 르네상스였다

우리동네 사람들은 그랜저에 삽 실고 논일하러 간다는 말도 돌았다

관광객들이 버스로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몰려왔다

된장으로 골뱅이무침을 해도 팔릴 때였다

아지트는 날로 번성해 둘은 나이에 비해 큰 돈을 벌었고

경험에 비해 일찍 돈을 만진 탁구공은 생각보다 일찍 거만해졌다

탁구공은 근처 상인들하고 친했고 그 중에는 친구들도 있었다

가게가 끝나면 야식집에 가서 술 먹는 일이 잦았고

신부를 혼자 두고 친구들과 노는 날이 늘었다

둘이 길바닥에서 싸우는 걸 목격하는 이들이 늘고

친구들도 둘을 중재하는 걸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둘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날 결심을 한다




탁구공 엄마가 정선에서의 생활이 편했던 건 아니었다

이모가 있어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이씨가 있어서 불안을 줄일 수 있었다

정선살이 3년만에 만난 이씨는 남도의 강같은 남자였다

고향의 섬진강은 엄마처럼 모든 걸 보듬는다

너른 들판을 휘감으며 유유히 바다로 향한다

정선의 동강은 종유석처럼 솟은 산들을 겨우 비집고 흐른다

물살이 거세고 거칠게 흘러 또 다른 산으로 간다

3년 거친 산수에 시달렸더니 섬진강 같은 이씨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에게 인생을 실어 평화로운 바다로 가고 싶었다

그의 부력으로 고단한 삶에 무게감을 덜고 싶었다

밭일을 마치고 그루터기에서 볕을 쬐던 어느 봄에

이씨는 야생화 한다발을 꺾어 모아 들꽃처럼 소박하게 살아보자고 말했다

이후 어머니는 탁구공과 5살 차이의 아들을 낳았다


탁구공은 배다른 형제와 친하게 지냈다

떨어져 지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어렸을 땐 동생이 엄마를 빼앗아갔다는 마음도 들었지만

커서는 같은 혈육이고 '내 동생'이란 마음 뿐이었다

안산에 간 것도 동생이 있어서였다

동생은 그곳에서 공장에 다니고 있어서 동생에게 공장을 소개받았다

탁구공은 식칼을 쥐던 손에 공구를 쥐게 됐고

손님에게 주억거리던 고개를 사장님에게 숙여야했다

그래도 탁구공은 잘 버텼다

눈도 순해지고 말도 착해져서 도시에 적응하고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다세대주택에서 시작해

2년 후엔 빌라로 이사를 했고

4년 후엔 아파트로 옮겼다

빌라와 아파트로 이사할 때마다 딸을 낳았다

탁구공 성격에 5년 무사고면 직장인 다 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안심했더니 7년차에 사고를 쳤다

공장장과 안 맞아서 지방발령을 받았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경상도 김해였다

다시 탁구공은 

새로운 공구를 잡고

머리를 조아리고

쓴웃음을 지우고

속에서 올라오는 신물을 삼키며 적응했다

J 또한 

남편에게 관대하게 대했다

퇴근 후 쏟아내는 탁구공의 짜증을 맞받아치기에는 J도 늙었고 의지가 없었다

대신 J는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

작은 가게를 얻어 옷장사를 했다

옷도 잘 팔렸고

친한 언니들도 생겼다

낯선 동네에서 비교적 일찍 웃으며 살 수 있었다


김해로 이사한 지 일년쯤 됐을 때 찾아갔다

술자리에서 탁구공은 회사 불만을 늘어놓기 바빴는데

J는 장사하는 맛, 언니들과 노는 맛을 소개했다

우리 고향에 배타적인 그곳에서 잘 적응한 J가 대견했다

J와 달리 탁구공은 불안했고 7~8년 후 다시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


2020년 겨울, 탁구공이 홀로 다시 올라왔다

이번에는 지점장하고 싸우고 사표를 던졌다

가족은 이사 준비를 해야 해서 홀로 3개월여를 원룸에서 살았다

둘이 술을 마시는데 그 억센 탁구공이 많이 순해진 걸 느꼈다

우리가 늙은 것 같아 가슴 아래가 아려왔다

"이젠 정말 열심히 살 거야

J에게 너무 미안해. 애들에게도 미안하고."


2021년 가을, 우리의 친구가 암으로 죽었다

고둥학교 때 탁구공과 같이 자취하던 친구였다

3일 내내 우린 참 많이 울었다

장례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3일 동안의 우리를 되새겨보니

우리가 많이 약해진 것 같아 목이 따가웠다

이후 탁구공은 친구들에게 자주 전화를 했다

그때쯤 탁구공이 우리를 이름으로 불렀다

우린 마흔이 넘도록 서로를 별명으로 불러왔다

탁구공은 술을 마시면 나지막하게 

"명징아." 이름을 부르고

"우리 오래, 즐겁게 살자."라며 습습한 눈으로 말했다

처음엔 남사스러워 볼멘소리로 답했으나

이젠 "그래 행복하자."로 답한다

눈물이 차오른 탁구공의 눈을 보는 게 힘들다

많이 늙고 지쳐보인다

이젠 탁구공이 내 이름을 부를 때면 굽은 등을 하고 그루터기에 앉은 탁구공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상처로 키웠던 어른스러움이 절뚝거리고 있다



지난 여름, 탁구공이 회사를 그만뒀다

부품 납품을 하는 그쪽에서는 그렇게 자기 공장을 차리는 게 다반사라고 한다

사촌매형이 같은 사업으로 큰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탁구공은 매형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두 달 동안 준비해서 이제 공장문을 연다

불안했다

호프집 외 20년만에 하는 첫 사업이다

거래처가 많아야 하는데 매형의 하도급으로 시작한다

그 매형이란 사람은 수년 전 탁구공을 채용했다가 폐업하면서 임금도 떼먹었었다

내게 전화해서 메일계정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냐고 물어본다

거래명세서를 어떻게 끊어야 하냐고 물어본다

스캔을 어떻게 떠야 하냐고 물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구공은 해낼 것이다

할머니와 함께였지만 감당하기 버거운 외로움을 이겨왔다

안산, 김해 다시 시흥... 낯선 곳에 단단한 말뚝을 박고 섰었다

몸이 망가지얼정 맡은 일은 완수하는 성격이다

평생 만져온 기계처럼 단단하고 정밀한 놈이다

기계처럼 투박한 손으로 수시간 바둥거리며 메일계정도 만들고 그룹메일도 만들고 스캔도 뜰 수 있게 됐다

그러니 탁구공은 해낼 것이다


며칠 전 탁구공을 축하하러 배곧에 갔다

'배곧', '배우는 곳'이란 뜻이라고 한다

네가 여기 자리잡은 건 배울 운명이었나 보다

가을 해산물에 술잔을 나누면서 새로운 시작을 응원했다

남편의 사업을 지지해준 J에게도 위로와 응원을 보냈다

J는 속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탁구공이 이런 주변의 응원에 화답해 알아서 잘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그날 우리는 많이 먹었지만 취하지는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다

배곧의 노을도 유난히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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