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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아들 둘 엄마의 대한민국 탈출기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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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딴짓 Aug 28. 2024

13. 모르는 곳으로 가다

레이캬비크 너머로

아이슬란드에 온 지 6일 차. 그동안 수도 레이캬비크에 머물며 다운타운을 둘러보고, 도서관 행사에 참여하고, 근교로 버스 투어를 다녀왔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본격적인 배낭여행이 시작된다. 아이슬란드 제2의 도시이자 북쪽에 위치한 아퀴레이리(Akureyri)로 간다.

세세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아이슬란드의 숙소는 현장 가격과 인터넷 가격이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또 날씨 등에 따라 일정에 변동이 생길 수도 있으니 숙소 예약을 미리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그래서 총 기간 중 첫 3일과 마지막 날의 숙소만 예약해 두었다. 그 외에는 이동할 지역의 숙소를 이틀 전에 검색해 예약했다. 숙소의 위치, 가격, 고객 평가 점수를 기준으로 신속하게 결정했다. (아이슬란드 여행 성수기는 6월부터 8월까지이다. 나는 5월에 여행을 시작했으니 숙소 상황은 다를 수도 있다.)

여행 계획은 단순했다. ‘서쪽에서 북쪽을 거쳐 동쪽으로 이동한다’라는 러프한 계획만 세워놨다. 혼자 여행을 떠나면서 세세한 일정을 세우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때 나는 뭐 어떻게 되겠지, 싶었다. 혹시 도착지가 늦더라도 백야라 밤에 해가 지지 않는 계절이고, 며칠간 경험해 본 안전한 나라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미리 계획해 두는 것과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것, 어느 게 더 나은 선택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세심한 성격의 내 친구는 나의 무계획에 경악했다.

불과 얼음의 땅 아이슬란드. 지금도 종종 화산이 분출하고, 최북단에 위치한 지형적 특성으로 전 국토의 1퍼센트만이 농사에 적합하다고 하다. 달 표면이나 디스토피아적 풍경, 즉 어둡고 척박하고 동시에 경이롭고 과연 지구의 모습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모습은 영화, 음악 미술 등 수많은 예술 문화 종사자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었다. 제임스 본드, 스타워즈, 왕자의 게임, 톰 라이더, 베트맨 비긴즈, 오블리비언, 인터스텔라,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 수많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아퀴레이리까지의 여섯 시간은 시시각각 바뀌는 바깥 풍경 감상으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사실 논스톱으로 달리는 것은 아니고 5분에서 30분까지 중간중간 기사님께서 휴식 시간을 주셔서 더 좋았다. 장거리 운전자들은 피로와 스트레스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운행 시간 안에 정차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You are a teenager, aren’t you?”

십 대시죠?

마음의 여유 때문일까? 버스 기사 분은 노인 승객들에게 꼭 이렇게 물었다. 어르신에게 할인된 교통비를 적용하기 위해 나이를 확인하는 것인데, 표현에 센스가 돋보였다. 할머니 또한 시크하게 엄지를 치켜세웠고, 그 장면은 옆의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다. 아이슬란드인은 겉으로는 좀 표정이 없고 무뚝뚝해 보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선하고 친절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내가 여행 중 만난 이들은 모두 표정이 밝고 위트가 있었다.

레이캬비크에 머물 때는 그곳에서만 내내 지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벌써 그곳을 잊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대자연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여섯 시간 내내 창밖의 놀라운 풍경에 사로잡혔다. 그러면서 내 안의 뭔가가 스르륵 풀리는 듯한 느낌. 내가 놓은 건지, 외부에서 풀어버린 건지 모르겠다. 도서관 발표에 대한 아쉬움도, 다운타운을 오가던 수많은 타인과의 느슨한 연결고리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내 몸은 버스 안에 있었지만 내 마음을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은 이미 어디론가로 솔솔 날아가 버린 느낌. 그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뭔가가 가벼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다.

아퀴레이리(Akureyri): 아이슬란드 북부에 위치하며 흔히 '북방의 수도'로 불린다. 레이캬비크 지역을 제외하면 가장 큰 도시 중심지로, 산으로 둘러싸인 그림 같은 풍경과 문화적 번성으로 유명하다. 레이카비크에서 아퀴레이리까지는 약 400킬로미터 거리이며, 직행버스로 여섯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대중교통에 대한 정보는 구글맵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