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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Sep 20. 2024

24. 젊은 여행자들이 사는 법


레이캬비크의 다인실, 나는 앞 침대에 있던 일본 여자와 말을 텄다. 나는 이제 아들과의 갈등부터 시작해 아이슬란드에 온 이야기까지 단숨에 브리핑할 만큼 제법 내 소개에 익숙한 상태가 되었다. 나 또한 그녀에게 여행자들 사이에서 흔히 묻는 질문을 던졌다. 언제 아이슬란드에 왔고, 지금까지 어디를 다녀봤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나는 아이슬란드에서 살고 있어.”

호스텔에서 산다고? 그러고 보니 그녀의 커다란 캐리어가 심상치 않았다.

“살고 있다고?”
“응, 11개월째야.”
“왓?”
 


 그녀는 힘들었던 학창 시절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왕따를 당했고, 3학년 때 불현듯 미국에 가야겠다는 충동을 느꼈지만, 영어 실력은 중학교 1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졸업 후 잠시 일을 하다가 스물한 살에 3개월간 캐나다에 어학 연수를 다녀왔고,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영어를 배우며 일을 하고 싶었고, 안전한 나라를 찾다가 WORKAWAY라는 사이트를 통해 아이슬란드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어느새 자리를 잡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 6개월은 공항 근처 현지인의 집에서 하우스키핑*을 했어. 모르는 것은 물으면서 배웠지. 그렇게 주중에는 틈틈이 잔일을 하고 주말에는 관광을 다녔어. 그 대가로 음식과 숙소를 제공받았고. 따로 페이가 있었던 건 아니고. 아니면 지금처럼 머물 공간은 내가 개인적으로 마련하고, 카페 등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도 돼. 아이슬란드는 물가가 비싸지만 최저임금도 높아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아낄 수 있어. 처음에는 영어가 서툴러 카페 서빙 일을 얻기 어려웠지만, 이번 달부터 일하게 됐어.”



아는 만큼 본다고 했던가? 부끄럽지만 나는 그동안 ‘일본 여자’ 하면 왠지 발랄한 듯하면서도 다소 유약한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그녀의 웃음기 가득한 얼굴에는 당당함이 묻어났다.



그녀의 삶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음도 알게 되었다. 한 번은 머물던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경험을 말하며 그녀는 몇 번이나 “She’s insane! (그 주인 완전히 돌았다니까!)”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절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여기가 좋아. 지금처럼 계속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 거야. 나는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I think I can do whatever I want to do.)” 그녀는 쉬는 날이면 실내 암벽 등반을 배우고 있고, 기초에서 시작해서 어느덧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며 자랑스레 영상을 보여주었다.



“너 정말 너무 멋지다! 이 이야기 꼭 책으로 써. 네 이야기가 특히 일본의 젊은 여성들에게 큰 영감을 줄 거야.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해. 내가 감시할 거야!” 나는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실은 기록은 해 두고 있어. 언제쯤 책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할게. 고마워!”



“그리고 말이야, 아들 이야기. 실은 나도 고등학교 때 정말 게을렀거든? 언젠가 걔도 열정과 의욕이 생길 거야. 그게 언젠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기다려줘.” 겨우 스무 살 초반의 아가씨. 그러나 그녀의 충고는 경험에서 우러난 진짜 이야기였다.



이후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며 나는 아이슬란드에서 일하며 여행하는 것이 일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그러면 너는 무슨 돈으로 여행을 오는 거야?”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한 적도 있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외국인이 단기로 일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고, 안전하고, 외국인에 대해 편견 없는 문화도 이와 같은 고용 방식이 정착된 데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도심에서 머물고 싶은 사람은 카페나 음식점에서 일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비싼 주택과 식비를 감안해야 한다. 반면 수도 외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몇 년 전 매일 밤 오로라를 봤던 추억이 그리워 농장으로 다시 간다는 30대의 프랑스 청년도 있었다.



한국의 청년들, 그리고 큰아들이 떠 올랐다. 이렇게 살 수도 있는 건데. 물론 내가 만난 대부분의 청년들은 지역적으로 아이슬란드에 접근하기 쉬운 유럽인들이었다. 그러나 일본인도 왔다.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먹기 아닐까.



불현듯 어떤 생각이 쑥 올라왔다. 이 순간 나는 왜 우리 아이만, 청년들만 생각하고 있지? 내가 직접 해볼 수도 있잖아? 아이슬란드에 다시 오게 되면 단기로 일하며 여행을 해봐야겠다. 그때까지 관련 제도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영어도 공부하고. 그게 뭐든지 간에 미지의 경험이 되겠지만 아이슬란드에서라면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주저 없이 올라왔다. 내 아이가 하는 경험이 아니라 ‘내’가 하는, ‘나’를 위한 도전. 나는 어느새 미래를 보며 서 있었다.  



원하는 것에서 시작해 거꾸로 가라.
목표를 향해 가기보다 목표라는 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지금, 미래의 내가 돼라.
<퓨처 셀프>



* 하우스키핑(housekeeping): 일종의 가사도우미

WORKAWAY: 여행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으며 현지 호스트를 도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글로벌 플랫폼. 아이슬란드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한편 ‘visiticeland’를 포함하여 아이슬란드 여러 공식 사이트에서는 아이슬란드에서 일하면서 여행하는 것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임금은 유럽에서도 가장 높으며, 그만큼 높은 생활비를 동반하지만, 외식을  하지 않고 직접 장을 봐 요리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충분히 생활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인 미유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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