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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Sep 25. 2024

28. 아이슬란드 영부인에게서 온 메시지

그녀, 엘리자 리드 

여행 전, 나는 아이슬란드에 대한 책을 찾아보다가 영부인 엘리자 리드가 쓴 ≪스프라카르≫를 발견했다. 캐나다 시골 출신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만난 아이 딸린 이혼남과 사랑에 빠져 덜컥 아이슬란드로 이민온 여자. 그렇게 네 아이의 엄마로 살던 중, 정치 분석가인 자신의 남편이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소란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영부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활용하여 아이슬란드의 용감한 여성들을 세상에 알리고, 완전한 성평등을 위해 여성들과 연대하며 쓴 그 책.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아이슬란드의 이야기는 도무지 나와 같은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동시에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여자들과의 어떤 희미한 연결이 감지되었다. 나의 착각일까? 그러나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그들은 내게 신호를 보내왔을지도? SNS 계정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엘리자의 계정을 찾아 팔로잉하고, 여기 대한민국 아줌마 한 명도 당신의 책을 읽었노라고 댓글을 달았다. 
 


- 내 책을 읽어줘서 고마워요! 

“엘리자가 답글을 달았어!” 
“엘리자가 누군데?” 



남편은 요즘 세상에 정치인이든, 정치인의 아내든 누구나 관리 자원에서 SNS를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초 흥분 상태의 나를 내버려 두길. 그리고 아이슬란드를 여행 중이던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랍니다. 아이슬란드와 이런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답니다. 다음 주까지 머무를 건데 혹시 제가 잠깐 say hello 할 수 있을까요? 





아이슬란드의 광고판에 있는 얼굴들은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로, 보통 한두 단계만 거쳐도 인맥으로 연결된다. 
“나라가 작아서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몰라요. 식료품점이나 쇼핑몰에 가면 롤 모델을 실물로 직접 볼 수 있잖아요. 뭐랄까, 손을 뻗으면 꿈에 닿는다고나 할까요. 그것은 “나도 성취할 수 있다”라고 믿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마르그레트 라라,  아이슬란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수.
≪스프라카르≫



이틀 후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미안해요! 스케줄이 꽉 차서 시간을 낼 수가 없어요. 아이슬란드에서 좋은 추억 만들고 안전하게 귀국하길 바라요!” 나는 그녀의 다정한 메시지를 여러 번 어루만졌다. 아쉬웠다. 하지만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다. 대통령 구드니 요하네손은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10년의 임기를 마지막으로 재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렇게 아이슬란드는 일주일 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그녀의 SNS는 영부인이자 작가로서의 활동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으로 가득했다. 웃음이 나왔다. 단 한 번의 여행에서 영부인까지 만나고 돌아가는 스토리는 아니지. 사기 같잖아. '2년 후 다시 갈 거예요. 그때 뵈어요. 그때 다시 티타임 신청할게요.'




우리나라 충남 아산시 정도의 인구. 그러나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국가적 기부를 해온 아이슬란드 유엔 여성 지부. 여성들 간의 동지애, 신뢰, 지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역사적으로 강력한 여성 롤모델이 많은 나라. 누구나 ‘평등은 나의 권리이다’라고 말하는 나라, 아이슬란드. 내 책상에는 ≪스프라카르≫가 성경처럼 놓여있다. 그네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그렇게 내게는 아이슬란드로 다시 가야 할 구실이 하나 더 생겼다. 그동안 나는 여기, 내가 있는 곳에서 나의 권리를 성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으련다. 그것이 뭐든지 간에. 
  


그래서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새로운 사랑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도록 세상을 향한 감각을 늘 열어두자고.
어쩌면 늙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을 하나둘씩 닫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혼자 클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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