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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Sep 24. 2024

27. 새벽 4시, 질주의 순간


“공항 가는 버스가 없다니?” 여행의 최대 위기는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터졌다. 출국 하루 전. 



한국에서 사전 예약해 둔 숙소는 단 두 곳. 하나는 도착 직후, 다른 하나는 출국 전날의 숙소였다. 다운타운에서 공항까지의 거리가 상당한 데다, 이른 출국이기 때문에, 공항에서 가까운 마을에 숙소를 잡아 두었다(예전에 비행기를 놓쳐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출국 이틀 전, 나는 마지막 숙소에서 다음 날 공항으로 갈 버스를 검색했다. 그런데... 가장 빠른 버스가 아침 7시 30분? 비행기를 타려면 아침 6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공항 가는 이른 버스가 없다니? 새벽같이 오가는 여행객들이 많을 텐데 그럼 나는 왜 여기에 숙소를 잡은 건데? 또 방심했다. 또 잊었다. 여기는 이른 새벽부터 버스가 오가는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걸. 나의 칠칠함이란! 반면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는 새벽에 공항을 오가는 버스가 많았다. 지금이라도 이 숙소를 취소하고 레이캬비크에 숙소를 잡아야 하나? 예약 사이트에 문의해 보니 기존의 숙박비에 취소 페널티까지 부과된다고 했다. 숙소에서 택시를 부르면 공항까지 약 8만 원. 젠장…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히치하이킹. 마지막 히치하이킹이 공항길이라니. 이번 건은 반드시 이루어내야 했다. 그동안 나의 행보에 응원만 해 주었던 릴랴가 이번에는 말렸다. 그러다 비행기를 놓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냐며, 그냥 다운타운에 다시 숙소를 잡을 것을 권했다. “괜찮아, 해볼게. 대신 좀 일찍 나오지 뭐. 한… 새벽 네 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동선을 짰다. 공항으로 가는 모든 사람이 지나가는 하이웨이. 내가 눈에 띌 것은 분명할 터였다. 다만 그들 또한 바쁜 마음으로 공항으로 가고 있을 것이고, 그렇게 질주할 차들이 나를 태워 줄지가 관건이었다.  



레이캬비크에서의 마지막 날, 같은 방의 일본인과 영국인에게 햇반과 고추참치를 나눠주었다. 릴랴가 숙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 안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최신 K-POP이 흘러나왔다. 창 밖으로 레이캬비크 시내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안녕, 레이캬비크. 잘 있어. 고마워. 또 올게. 우리는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렸다. “저거 봐봐!” 저 멀리 산이 뻘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화산이 폭발 중이었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 일상이었다.




“이제 집에 갈 마음의 준비 됐어?” 릴랴가 물었다. 목이 메었다.

‘아니, 그럴 리가. 그럴 수 없어. 그러지 않을 거야. 그런데 이제 가야 해. 하지만 반드시 다시 올 거야. 그때는 트레킹 할 준비를 제대로 하고 올 거야. 더 씩씩하게 걸을 거야.’

마지막 숙소 앞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포옹했다. 또 보자. 곧 보자. 



숙소는 아름다웠다. 개인 주택을 개조한 인테리어가 놀라웠는데, 특히 초록 식물들이 반기는 내 방과, 인센스와 입욕제가 놓인 아름다운 욕조에 나는 조용히 비명을 질렀다. 그 간의 피로를 보상받는 듯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지열 에너지로 전력을 공급받아 전기료와 수도세를 내지 않는다. 혼자뿐인 숙소에서 나는 오랫동안 탕 안에 몸을 담갔다. 그간 나쁜 일정이 없었고, 별로인 경험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도. 이 숙소를 놓쳤더라면 어쩔 뻔했는가. 단, 내일 공항에만 잘 도착한다면. 



그동안의 엄청난 짐을 두 개의 백팩에 나눠 담는 거사를 치러 냈다. 그 많은 물건을 어떻게 이고 지고 다닌 걸까. 결국 도서관 발표 때 신었던 부츠는 쓰레기통에 투척했다. 동부 끝에서부터 동행해 온 러브를 보고 나는 깊은 고심에 빠졌다. 가방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사실 반출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여정에서 나에게 특별했던 그녀를 그냥 버려둘 수 없다는, 그러니까 그 집착으로 나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한쪽 가지를 부러뜨릴 때 러브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정말 미안해. 이제 집에 가자. 나는 작아진 그녀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종이에 히치하이킹 글을 썼다.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마음으로. 하이웨이로 가려면 언덕 하나를 넘어야 하는데 만만치 않아 보였고,  나는 밤새 잠을 뒤척였다. 




누군가 다급하게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창문의 커튼을 확 치고 보니 한 남자가 급하게 트렁크에 캐리어를 싣고 있었다. 나는 한쪽 신발만 꿰찬 채 뛰쳐나갔다. “혹시 공항 가요?” “네.” “오 마이 갓! 저도 태워주세요!” 남자가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제가 늦었거든요. 준비할 시간 딱 3분 드릴 수 있어요!” 



나는 방 안을 다 수습하지도 못한 채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차에 탔다. 히치하이킹 문구가 쓰인 종이를 버려둔 채. 그를 얼싸안고 볼 키스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비행시간에 늦었다는 그의 운전에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숨을 골랐다. 창 밖은 어둡고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언덕을 가로질러 걸어갔더라면. 또한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도, 누군가가 나를 태워주는 것도 쉽지 않은 터였다. 현관문 바로 앞의 방에 머물지 않았더라면. 그가 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면. 빛의 속도로 뛰어나가 그를 잡지 못했다면. 



“차도 없이 히치하이킹과 버스로 여행을 했다고요? 공항 가는 날도? 당신 미쳤군요!” 그가 껄껄껄 웃었다. 그는 15년 전 비즈니스 차 서울에 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You saved my life!” 공항 주차장에서 헤어지며 나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No, God saved your life.” 씽긋 웃는 그의 손이 따뜻했다. 이름이라도 알아둘걸. 데이비드였던가? 이번 여행 중 나는 독일 여행객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끝도. 



긴장하고 있던 릴랴와 한국의 나의 다정한 벗은 ‘성공!’이라는 나의 메시지에 그제야 안도하였다. 여유롭게 둘러본 공항의 작은 면적은 오가는 여행객들로 분주했다. 18일 전, 공항 문을 박차고 아이슬란드로 들어섰던 그 지점에 나는 다시 한번 서 보았다. 피곤하고 달뜬 표정으로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새삼스러웠다. 나는 다운타운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여기, 이전의 나의 일부를 두고 갈게. 아주 조금일 수도 있고, 조금 더 많을지도 몰라. 그리고 왠지 좀 달라진 나를 데리고 갈게. 
고마워 아이슬란드. 모든 순간이 눈부셨어.
고마워요. 자연의 여신님. 그렇게 안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숨을 쉴 수 있었어요.
또 만나, 아이슬란드. 



이 여정에 함께 해 준 이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한국에서 준비 단계부터 함께 해 준 이들, 여행 중 만난 많은 사람들, 릴랴… 그들이 없었다면, 동행해 주지 않았더라면 결코 나아갈 수도, 완성될 수도 없는 여정이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You can call me a choo choo train. 
 It doesn’t matter. 
I know who I am.
나를 칙칙폭폭 기차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내가 누군지 내가 아니까. 

-     Tig Notaro, 미국 코미디언, 배우, 작가, 팟캐스터  





#덧. 핀란드 공항에서


“유기농 비누 하나 더 살걸. 핀란드 거가 좋잖아.” 

“집에 가서 또 밥 할 생각 하니까 아이고! 벌써 죽겠다.” 


핀란드 헬싱키 공항 환승 게이트 앞 대기 의자에는 한국인들이 바글바글했다. 우리는 모두 한국인이고, 한국으로 가는 환승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슬란드의 여행에서 한국인은커녕 동양인도 별로 본 적이 없었다. 인구밀도가 희소한 곳에서 20여 일을 있다가 너무 많은 사람들, 너무 많은 한국인, 너무 많은 한국말이 들이닥치자 왠지 어리둥절해졌다. 옆에 앉은 내 또래의 여성 넷은 패키지여행으로 북유럽을 왔다 가는 길인 듯했다. 그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고, 나도 자연스레 우리 애들이 떠 올랐다. 나도 밥 해야 하는데. 현실적인 생각들로 마음이 분주해지려는 차 덜컥 겁이 났다. 안돼, 내 영혼아, 영롱했던 감각들아, 나의 존재감아, 눈부신 기억아. 아직은 안 돼. 가지 마. 떠나지 마. 아직은 아니야! 나는 다급하게 뭔가를 붙들었다. 조용히 자리를 이동했다. 

 

이 연재가 이제 3회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슬픔이 몰려옵니다. 
브런치스토리에서는 연재 당 30개의 글을 쓸 수 있더라고요. 
여행은 이미 끝났지만 글을 쓰며 행복했습니다. 
아직 이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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