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도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 그중에서도 수도 레이캬비크에는 다인실 숙소가 흔하다. 나는 보통 이층 침대 세 개가 놓인 여성 전용 6인실 숙소에서 머물곤 했다. 그러던 중 42인실 남녀 혼숙룸이 있는 호스텔 켁스(KEX)를 알게 되었다. 과연 저곳에서 숙면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인생에 한 번밖에 없을 경험 차원에서 하루 시도해 봐? 이내 마음을 접었다. 42인실의 하루 숙박 비용은 4만 원 정도. 8~9만 원대의 여성 전용 6인실 숙소와 비교했을 때 굳이 불편, 모험 혹은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 생각을 바꾼 것은 레이캬비크로 되돌아오는 여정 중 만난 헤더였다. 귀국 전 남은 며칠 동안 머물 숙소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중 그녀는 켁스를 언급했다.
“거기 괜찮아. 공용 카페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볼 수도 있고 재미있어. 한번 지내봐.” 말이 42인실이지 십여 명 정도만 찰 수도 있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거의 꽉꽉 찬다는 것이 헤더의 말이었다. 릴랴도 반색했다. “나도 거기 좋아해. 재미있는 행사를 자주 하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전혀 확신이 없었다. 수많은 인종이, 그들 중 대부분 백인이고 상당수 남자이고 젊을, 한 공간에 모여 영어로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부담스러웠다.
아버스의 예술적 동기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촬영 대상을 어떻게 고르느냐는 질문의 답이었다. 이 질문에 아버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경에 거슬리는 대상을 선택해요."
≪예술하는 습관≫
아비스: 미국의 사진작가
나는 켁스의 42인실을 예약했다.
숙소 입구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마침 건물 주변이 공사 중이었고, 마침내 1층 입구에 섰을 때 나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나는 작고 낡은 켁스 간판을 바라보았다. 뭐야, 이 으스스한 분위기는? 간판에서 어둠의 아우라가 스멀스멀. 나도 모르게 기도를 중얼거리면서 눈을 질끈 감고 문을 열었다. 마침내 3층 메인 홀에 들어서니 프런트를 중심으로 바가 있고, 소파 중간중간에 여행객들이 자유롭게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은 한가롭지만 밤이 되면 꽉 찰 공간. “혼자 오셨어요?” 내 앞에서 체크인을 하기 기다리고 있는 백발의 중년 여성을 보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다. 남편과 여행 중이라는 독일인. 왠지 조금 긴장이 풀렸다.
42인실은 2층 침대 세 개, 즉 6인을 기준으로 임시 벽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조용했고, 멋스러운 액자들로 꾸며진 벽도 나쁘지 않았다. 방문과 제일 거리가 먼 창가 자리인 내 침대 앞에는 라운드 테이블과 여분의 공간까지 있었다. 마흔한 명의 낯선 자들과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혼숙할 생각을 했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뭐든지 경험해 봐야 해.
이층 침대의 위층을 쓰고 있는 남자와 인사를 나눴다. 현재 휴가 중인 프랑스인 루카스는 3년 전 아퀴레이리 인근 농장에서 3개월간 일을 하면서 여행했고, 그때의 기억이 너무 그리워서 다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간단하게 짐을 풀고 있는데 그가 다소 흥분된 표정으로 들어오더니 물었다. “그거 알아? 어제 공항 근처에서 화산 폭발했잖아. 내가 차가 있거든. 구경 갈 건데 같이 갈래? 지금 가야 돼.” “지금? 어… 그래.” 별다른 생각 없이 답했다. “남자 둘도 조인한다? 미국인이랑 이탈리아인이야.” 헙. 모르는 남자 셋과의 동행. 갑자기 부담감이 치밀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간다고 했고, 그렇게 우물쭈물 나섰다.
홀에는 여러 여행객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루카스는 그들에게도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지만, 그네들은 미소만 날릴 뿐이었다. 저리 젊은 자유 영혼들도 흔쾌히 따라나서지 않는 자리에 덜컥 가겠다고 가다니.
차가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누군가 한 명에게는 내가 이 밤에 낯선 이들과 동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았다. 도서관 사서 릴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Oh, no!
그녀의 첫 반응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 왈, 가지 말라고 안전 메시지가 뜰 때에는 정말 위험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당연한 말이지만). 게다가 새롭게 폭발이 일어난 곳이라 화산의 경로를 예측하기 어려운데, 한순간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화산 가스가 큰 문제라고 했다.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적기 때문에 자연재해가 나면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에 투입돼. 그런데 이렇게 화산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드는 여행객들 때문에 무고한 이들마저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어. 게다가 그들은 현장의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니까. 이건 관광 상품이 아니거든.” 그녀는 아이슬란드 단어 하나를 보내왔다. ‘virðing.’ 존중, 존경이라는 의미였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어느 여름, 태풍이 몰아쳤을 때 우리나라 동해에서 자랑스럽게 서핑을 하다 잡힌 외국인의 기사가 떠 올랐다. “항상 자연을 존중해야 해. 자연의 여신은 경이롭지만 때로는 아주 두려운 존재거든.” 여행 중 만난 지긋한 연세의 아이슬란드 아저씨의 조언이 떠 올랐다. 안전 불감증. 스무 살이나 어린 남자애들을 따라나선 철없는 코리안 아줌마. 나는 미친 듯이 손톱을 깨물었다. 당장 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한밤에, 차도 지나다니지 않는 고속도로 한 복판이었다.
“어제 티비에서 아이슬란드 화산 뉴스 나오던데, 지금 여행 중인 데와는 무관한 거지? 생존 소식 전하시오.” 때마침 단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해 단숨에 고백했고, 한국의 아줌마 셋은 패닉에 빠졌다. 내 기도가 부족했다는 자기반성부터, 화산보다도 그 남자들이 더 위험할 수 있다며 일단 그 차에서 탈출해라, 경찰차를 히치하이킹해서 도심으로 돌아오라는 현실적인(?) 팁을 주는 자, 화면을 켜고 영상 통화를 하자, 이 상황을 지켜보는 아줌마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남자들이 헛짓거리를 못한다, 나 방금 뛰어가서 화장하고 왔다며 놀라운 순발력을 보여준 이까지.
결국 아무런 시도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차는 40분을 달리고 멈췄다. 그토록 주의하라고 했는데도 화산을 보겠다고 꾸역꾸역 온 네 대의 차. 그중 한 대가 우리. 고속도로는 폐쇄되어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지만 육안으로도 화산이 터지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자.” 고속도로 쪽은 경찰차가 지키고 서 있었고, 남자 셋은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뒤늦게 찾은 이성과 죄책감. 하늘은 어둡고 미친 듯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들이 되돌아오길 기다리고 나는 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결국 그들은 1시간도 더 되어서야 나타났다. 남자애들 특유의 흥분된 톤으로 자신들보다 더 가까이 화산에 접근하려고 했던 남자 몇이 경찰에 잡혀가더라고 말했다. 하아…
(차에서 보이는 화산)
돌아오는 길, 알고 보니 그들은 엄청난 모험가들이었다. 그들에게는 히말라야의 험난한 산지를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마존이나 아시아의 오지를 여행한 사진을 공유하며 그들은 신나 했다. “레이캬비크의 아무 레스토랑에나 이메일을 보냈어. 내가 요리는 할 줄 모르지만 가르쳐 주면 할 수 있다고 했지. 오라고 하더라고. 세프한테 파스타와 리조트 만드는 법을 배워서 그것만 해. 주 3일 일하고, 나머지 날은 여행을 다녀.” 겨우 스무 살의 이탈리아인. 그가 여행한 여러 곳들과, 사진 속에서 기쁨으로 충만한 그의 얼굴을 보면서 부러움 이상의 감정이 올라왔다. 우리나라의 스무 살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는데도 가르쳐 주면 배우겠다, 라며 무턱대고 이메일을 보내는 용기, 그리고 그것에 응답한 레스토랑.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전개였다.
“부럽다. 나는 내가 20대 때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서른 살인 지금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면서 경험을 쌓고 있어.” 미국인 남자는 “I’m running from country to country now. (나라 지금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평범한 서른의 남자 상을 떠올려봤다. 아니, 그 어느 나이 대에서도 그들처럼 역동적일 수 있을까.
자정이 넘은 시간, 나의 안전 귀가를 확인한 여자 넷의 비상 대화방은 종료되었다. 그날 나는 화산 사진 및 영상을 SNS에 업로드하지 않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그대로 누웠다. 그 후 앞 침대 중국인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와 밤새 끊임없이 문을 여닫는 소리 때문에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아침에 숙소를 나왔다. 마치 무료 캔디 통처럼, 프런트에 비치된 무료 귀마개 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42인실에서의 하룻밤. 그 아찔한 일탈과 교훈. 귀국 이틀 전의 에피소드였다.
아이슬란드 전역에는 93개의 수색구조대가 있는데 모두 자원봉사자로 운영한다.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약 90퍼센트가 아이슬란드의 수색구조대를 신뢰하고 있는데 이는 아이슬란드의 어떤 공무원이나 기관보다도 높은 신뢰도를 자랑한다. 2위는 대통령실이다.
≪스프라카르≫
한편 아이슬란드에서는 지난 800년 동안 대규모 화산 활동이 없다가, 2021년을 시작으로 다시 화산 폭발이 잇따르고 있다. 2024년 5월에 난 화산 폭발은 2021년 이후 여덟 번째 분화였다. 분화지 주변에는 주거지가 없고, 아직까지 인명 피해는 없지만 그 경로를 예측할 수 없기에, 아이슬란드 정부는 이를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다.
기존에 연재를 완료한 '엄마 혼자 버스 타고 아이슬란드'의 수정 버전입니다.
다시 읽고, 기억을 되새기며 다듬고 있습니다.
회차에 따라 지난 연재와 내용이 동일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