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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Apr 23. 2024

아이슬란드행을 준비하면서

브런치스토리에 글쓰기 연재를 진행하고 있다. 특별히 나는 아이슬란드로의 나 홀로 여행 이야기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각각 다른 요일의 연재로 구분해 두었다. 아들 이야기가 여행 이야기에 침범하는 사태를 좌시하지 않겠다,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내가 이래도? 이 정도여도 괜찮아? 버틸 수 있어? 웃을 수 있어?’라고 말하듯이 나를 몰아쳤다. 아이슬란드 그림책 프로젝트에 대한 후원을 받고 감동과 감사함에 취해 있던 나는 어느새 아들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중년의 엄마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아무 데나 찌그러져 있었다. 마음마저도 울상이었다. 



총 스물다섯 권의 책은 두 권이 추가되어 스물일곱 권이 되었다. 이 책들은 각 두 권씩 아이슬란드의 시립 도서관에 기증될 것이고, 나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각 페이지 별 영문 번역을 붙여 놓겠노라고 쉽게 이야기했다. 그림책이라서 몇 줄 안 되니까,라고 넘겨짚었다. 대단한 과오였다. 텍스트가 적은 책도 있었지만 매우 긴 분량도 있었다. 각 출판사로부터는 공식 영문 번역본이 있는지 사전에 문의했었고, 만일 없다면 내가 임의로 번역해 책에 달아놓겠다고 말해 놓은 상태였다. 혹시 모를 오역과 그로 인한 추후 컴플레인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립도서관에 기증되고 수년간 보관될 책을 아무렇게나 번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대략적인 줄거리만 요약해 제공하기에는 읽는 이에게 페이지 별 내용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그건 욕심이었다. 사실 그림책이니까 그냥 그림만 보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라고 해도 그만일 거였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게 더 정확하고 안전했다. 



쳇 gpt의 자동 번역만 돌려버리면 절대 안 될 노릇이었다. 한글은 문장에서 기본적으로 주어가 생략된 경우가 많았다. “어때요, 이만하면 다 컸지요?”에서 생략된 주어는 ‘나’이다. 그림책이기에 기본적으로 직역을 해서는 안 되는 내용도 많았다. 한국적인 내용은 더더욱 그랬다. ≪설빔≫의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 “할머니, 할아버지, 세배받으세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쳇 gpt의 자동 번역은 엉뚱하게 “Grandmother, grandfather, happy birthday!”였다. 번역가도 아니고 전문 번역가는 더더욱 아닌 나는 이 부분을 그냥 “Grandmother, grandfather, happy New Year!”라고 번역했다. “길을 비켜라. 도련님 나가신다!” 는 어떨까? ‘도련님’의 영어 뜻은 엉뚱하게도 ‘권력자’였다. 그래서 자동 해석도 ‘master’였다. 그냥 ‘Doryeonnim’이라고 두기에는 문장 앞뒤 설명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도련님을 그냥 ‘I’로 바꿨다. 그래서 그 문장은 “Back off! I’m leaving!”이 되었다. 한글에 관한 책은 더더욱 어려웠다. ‘훈민정음의 ㄱㄴㅁㅅㅇ은 사람의 발음 기관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어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훈민정음을 모르는 아이슬란드 인들이, 게다가 ㄱㄴㅁㅅㅇ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나는 ‘The Korean alphabet, Hangul, came from Hun-min-jeong-eum, and the letter ㄱ[gi-yeok]~’ 식으로 한글에 대한 설명과 발음 기호를 덧붙였다. 그러나 이것은 오지랖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주의해야 할 부분이었다. 저자가 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고 했지만 여러모로 신경이 많이 쓰였다.  



게다가 나는 손발이 느리고 실행력이 서툰 자이다. 번역뿐만이 아니라 책과 함께 전시할 한복용품 구매, 책 소개 후 독후활동에 쓸 용품들과 한국 간식거리 등 구매하고 포장해야 할 물건들이 많았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로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작업 속도는 더뎠다. 아니 제자리였다. 회사 업무와 가사 노동 후에는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역시 무리수였어. 나는 자승자박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불안해하다가 우울해했고 그러다 투덜댔다. 



피곤하다는 생각을 마치 주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곱씹고 있는데 스마트폰 알람이 떴다. ‘이**님, **만원’ 후원 모금 일자가 마감되었는데 누군가가 후원을 한 것이다. 이름이 낯익었다. 이미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지인. 그의 남편이었다. 갑자기 힘이 났다. 힘이 솟구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주저앉았다가 가만히 일어났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이번 주에 어떻게든 아이슬란드에 배송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한 준비사항을 점검했다. 아이슬란드에서 소개할 책 중 꿈을 찾아 떠나는 용감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 ≪노를 든 신부≫를 꺼내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갑자기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돈의 맛.' 후원을 받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도서 등 이것저것을 현지 도서관 사서인 릴랴한테 보내버리고 나면 출국일까지 남는 날 동안 숨을 고를 것이다. 아이슬란드에서 발표할 책을 공부하고, 아이슬란드행을 결심했던 초반의 이유를 곱씹어 볼 것이다. 지금은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도 없을 만큼 괜스레 조금 지쳐있다. 잠도 문제다. 도통 잠을 못 잔다. 생각이, 생각만 많다. 다음 주면 좀 나아질까? 



일단 택배부터 보내 버리자.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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